로봇 다리 소년의 뜨거운 성장기
“거울은 미래를 비추지 않는다.”
글 김세진(지체장애)
불운의 종합선물세트로 불리던 나
세상 ‘세(世)’, 참 ‘진(眞)’. 내 이름은 2살 무렵, 고아였던 내게 처음 가족이 생겼을 때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외할아버지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 주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를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렀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니었으리라. 두 다리 대신 로봇 다리를 가진 장애아동, 입양아동, 이혼가정, 가난 등…. 나는 남들 눈에 흔치 않은 배경을 가진, ‘1+1 패키지’의 유행을 뛰어넘은 ‘1+α 패키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3월(입학 시즌), 4월(장애인의 날), 5월(가정의 달)이 되면 우리 가족은 수많은 기자로부터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가족들은 이 전화를 피하고자 휴대전화를 꺼두고 살다시피 한다. 그러나 내가 27살이 된 이번 3월에 기고문 요청에 응하게 된 것은 개학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거울은 미래를 비추지 않는다. 지금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판단하려 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사실 이 말을 전하는 나로서는 모순적일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사회에서 불운의 ‘종합선물세트’였기 때문이다. 유치원 때는 학부모님들의 강력한 반대로 유치원을 열세 군데나 옮겨 다녔고, 초등학교도 3번이나 전학해야 했다. 중학교 때는 불합리한 여러 이유로 자퇴를 선택해야 했을 정도였다. 학창시절의 기억이라곤 6학년 형들이 화장실에서 교구용 망치로 나의 의족을 깬 것, 체육 시간에 축구 드리블을 못 한다는 이유로 체육 점수가 0점 처리된 것, 9살에 시작하여 수영으로 꽤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였음에도 장애인은 특기생이 될 수 없다는 것, 결석일수가 많다는 이유로 졸업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등. 세상은 내게 하고 싶은 것들보다 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로만 가득 찬 것 같았다.
그 시절 거울에 비친 나는 그저 꿈 많은 10대 장애인이었으나, 내가 꾸는 모든 꿈은 허황한 망상일 뿐이라고 여겨지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더는 비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극단적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나 자신을 스스로 더 깊은 어둠의 구렁텅이 속으로 끌어내렸던 시절이었다.
내 안의 열정을 깨우자 일어난 기적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내게 주어진 환경에 눈을 감고 목표에 눈을 떠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가보자는 마음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선택했다. 밤낮없이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다. 중학교 과정을 4개월 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3개월 만에 졸업하게 되었다. 멀리 돌아서라도 목표에만 가닿자 했으나 어느새 지름길로 가고 있었다. 만 15살의 나이에 성균관대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2016년에는 ‘장애인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비장애인과 경쟁해보자!’라는 새로운 도전을 가지게 됐다. 지옥 같은 훈련들을 통과해 브라질 리우패럴림픽이 아닌 올림픽 10km 수영 부문에서 한국 국가대표로 최종예선전까지 출전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 경험은 내 안의 열정을 깨우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나는 브라질 리우올림픽을 마지막으로 11년 동안 내 이름 앞에 붙어있던 ‘수영선수’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공부하고 싶어졌다.
뉴욕주립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영어를 못하던 시기에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학생들 속에서 살아남기란 수영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누구는 “이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했는데 나는 죽기 살기로 해야만 했다. 매일 같이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고된 수영 훈련을 해왔어도 코피 한번 안 났던 나였으나 입학 4개월 만에 쌍코피가 터졌으니…. 모든 수험생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던 순간이었다. 더욱이 나는 어렵게 받은 장학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 같이 울기 직전까지 공부했고, 그토록 원하던 뉴욕주립대학교 학위를 받았다.
이처럼 꿈 많았던 장애아동은 많은 꿈을 이룬 성인이 되었고, 지금의 난 사회인이 되어 또 다른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시간을 되돌려 그날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왔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현재에 실망하지 않기를, 앞으로 거울에 비칠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원하는 일들에 뜨거운 열정을 다해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