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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 3향, 저희가 만든 향기 맡아보실래요?”

대구지역본부 판정평가팀 장원주, 이은택 전임평가사, 김재동 평가사

사람은 저마다 고유의 체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같은 향수를 뿌려도 체취, 체온, 습관에 따라 향은 천차만별의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각자 다른 체취를 가진 세 사람, 대구지역본부 판정평가팀의 김재동 평가사와 이은택 전임평가사, 장원주 전임평가사가 자신만의 향을 만들기 위해 향수 공방을 찾았다. 고유한 향이 어울릴지, 누구에게나 편안한 향이 어울릴지 알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향수 원액이 담긴 여러 유리병 앞에 세 사람이 앉았다.

편집부 사진 김덕창

왼쪽부터 장원주 전임평가사, 김재동 평가사, 이은택 전임평가사가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모습
향수를 만들기 위해 조향 공방을 찾은 장원주 전임평가사, 김재동 평가사, 이은택 전임평가사(왼쪽부터)
향이 남는 순서 탑, 미들, 베이스

김재동 평가사와 이은택 전임평가사는 경북지사에서부터 옆자리 동료였고, 장원주 전임평가사와 이은택 전임평가사는 같은 대학 동문 출신이다. 인연의 공통분모인 이은택 전임평가사를 두고 여러모로 편안하고 유쾌한 사람이라며 두 사람이 칭찬을 늘어놓는다. 이에 질세라 이은택 전임평가사도 두 사람을 장난스레 추켜세운다. “김재동 평가사는 묵직하니, 사람이 참 진중하고요. 장원주 전임평가사님은 처진 분위기도 금방 업 시켜주시는 분위기 메이커세요.” 요즘 흔히들 말하는 ‘칭찬감옥’에 서로를 가둔 세 사람. 평소엔 하지 못했던 칭찬을 하려니 겸연쩍어 얼굴이 발그레해지자 향수 만드는 작업에 급히 몰두해본다.
선생님이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면서 ‘나만의 향수를 찾는 여정’이 비로소 시작됐다. 각자 선호하는 향에 대해 들어보고, 향수에 대한 기본 설명이 이어졌다. 향수의 향은 탑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인상을 결정하는 향은 탑, 다음에 남는 향은 미들, 잔향으로 은은하게 남는 향은 베이스다. 이 세 가지 노트에 맞는 단일향료를 탐구해보는 시간, 여러 가지 시향지가 세 사람의 코 밑을 훑고 지나간다.
“향이 너무 섞여서 구분이 안 되면, 유리병에 담긴 원두향을 맡으면 정화가 될 거예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손엔 시향지를, 한 손엔 커피 원두가 담긴 유리병을 들고 번갈아가며 냄새를 맡는 세 사람. 오늘 이들이 맡은 향료는 30가지 이상으로 다행히 모든 향료가 안전확인대상 생활화학제품 인증을 받은 제품들이라 머리 아픔을 호소하는 직원은 없었다. 오히려 더 다양한 시향지를 찾고, 추천받으면서 향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갔다.

작은 플라스틱 통에 향료를 떨어뜨리는 모습
작은 플라스틱 통에 향료를 떨어뜨리는 모습
장원주 전임평가사가 시향지를 들고 향을 테스트하는 모습
시향지를 들고 향을 테스트하는 모습
세상에 같은 향, 같은 장애는 없다

선호하는 탑, 미들, 베이스 노트의 향을 종이에 적어 내려가는 와중에도 장원주 전임평가사는 업무 전화를 놓지 못한다. 세 사람이 속한 판정평가팀은 장애인 대상자들이 사업체에 잘 취업하고 고용유지가 될 수 있도록 장애인들의 직업적 능력을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직업적인 목표도 세우고 가장 적합한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평가사의 역할이다. 그러다 보니 개별 장애인 근로자의 역량을 파악하고 사업체와의 연결을 매끄럽게 해나가는 게 주된 미션으로 꼽힌다.
“이제 선호하는 향들을 조합해 샘플 향수를 만들어볼 텐데요. 신기하게도 비슷한 배합으로 만들어도 뿌리는 사람의 온도와 체취에 따라 천차만별로 발향됩니다. 저 또한 한 번도 같은 향의 향수가 완성된 적은 없으니까요.”
선생님의 안내를 들은 세 사람은 향을 제조하는 일이 판정평가를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장애에 따라, 장애인에 따라 역량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체 환경, 직무 분석은 언제나 신중히 하고, 장애인 근로자와 역량이 맞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오늘도 관심의 안테나를 그들에게 다정히 드리우고 있다.

분홍색의 튤립과 잡지위에 투명 용기에 담긴 세 개의 향수가 놓여있는 모습
나만의 향으로 완성한 세 사람의 향수
향수 넘버 ‘대명동’, ‘선한영향’, ‘Love yourself’

작은 플라스틱 통에 탑, 미들, 베이스 향료를 방울로 떨어뜨려 섞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은택 전임평가사가 “한 방울 잘못 넣었다가 향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지면 어떡하죠?” 하며 걱정스러움을 표했다. 선생님은 “망치는 건 없어요. 다 각자의 향으로 탄생하는 거니까요” 하는 명언으로 세 사람이 보내는 감탄의 박수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었을까. 선호도에 맞게 방울로 배합한 플라스틱 통을 흔들어 섞는 세 사람. 시향지에 떨어뜨려 서로의 향을 돌아가면서 확인하는데 “이건 목욕탕 향 아닙니까?”, “자기 거는 아무 향도 안 나는데?” 하며 잠시 웃음의 디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두 번째 배합 때는 인상을 결정짓는 향료를 더 넣고 나머지 향의 양을 줄여 넣으며 선명한 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은택 전임평가사는 월계수잎, 스파, 화이트 머스크가 들어간 ‘묵직하면서도 시원한 향’을, 장원주 전임평가사는 그린, 월계수잎, 튤립 등이 섞인 ‘풀향 가득한 꽃시장의 향’을, 김재동 평가사는 샌달우드, 오스만투스, 튤립 등이 섞인 ‘달달한 들판의 향’을 완성했다.
오늘 완성한 향수는 어둡고 서늘한 곳에서 2주일간 숙성을 마친 후 사용해야 알싸한 알코올 향이 사라지고 안정화되면서 향이 더욱 풍부해진다는 선생님의 조언에 세 사람은 당장 내일 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마침 사무실 자리 배치도 나란히 앉는 터라 오늘 완성한 향으로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싶었다는 세 사람. 2주 뒤를 기약하자며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예쁜 유리병에 담긴 향수에 각자 이름을 부여하고 스티커까지 붙이자 시중에 판매하는 향수 못지않은 고급스러움이 전해진다.
올해의 목표를 묻자 장원주 전임평가사는 고민 없이 ‘즐겁게 사는 것’을 꼽으며 응원하는 야구팀의 시즌 경기를 최대한 많이 보고 싶다고 했다. 김재동 평가사는 취미인 피아노 연주를 계속해 영화 <라라랜드>의 OST인 ‘Mia & Sebastian’s Theme’를 완곡하는 것을 꼽았다. 이은택 전임평가사는 내년에 학교에 입학할 자녀와 함께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빠로서 충실한 한 해를 계획했다. 세 사람의 2023년은 저마다의 목표에 가닿으며 아마도 ‘Love Yourself’, ‘선한영향’, ‘대명동’의 향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나만의 향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동료의 향을 기억한다는 것만큼 오래 기억될 낭만적인 감각은 없을 테니 말이다. 더 나아가 장애인 근로자들에게도 편안하고 다정한 향으로 세 사람이 기억되기를 바라본다.

체험 소감 한마디

장원주 전임평가사가 정면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
장원주 전임평가사
“Love Yourself, Love Myself 하는 내가 될래요.”
장원주 전임평가사
저스틴 비버의 ‘Love Yourself’라는 곡을 좋아해서 향수에도 이름 붙여봤습니다. 피곤하고 우울할 때 제가 만든 이 향수를 뿌리면서 어두운 감정을 훌훌 털어내고 싶어요. 그래서 가족이나 동료들에게도 햇살 같은 느낌, 포용력 넘치는 이미지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기쁜 에너지와 향으로 기억되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오늘 딱, 제가 원하는 향을 손수 완성할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선한영향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 되렵니다.”
이은택 전임평가사
향수 이름만 보고 샀던 지난 향수들이 생각났던 하루였습니다. 고유의 향들을 맡아보고, 배합했을 때의 오묘한 향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오늘 제가 만든 향수에는 ‘선한영향’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요. 선한영향력이 있는, 선한영‘향’을 뿌린다는 게 재치 있고 의미 있어보여서 작명해봤습니다. 이 향을 뿌릴 때마다 그 다짐과 의미를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가족 향수를 만들러 오고 싶어요.
이은택 전임평가사가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모습
이은택 전임평가사

김재동 평가사가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모습
김재동 평가사
“대명동의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겠습니다.”
김재동 평가사
저는 요즘 ‘좋은 어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성장한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는 우리 회사의 주소, ‘대명동’을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장애인 근로자, 장애인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 향수를 꼭 뿌리고 나가려고 합니다. 제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길 바라는지 잊지 않으려고요. 그리고 누군가가 ‘어? 그 향 너무 좋은데요? 무슨 향이에요?’하고 물어보면 제가 손수 만든 향수라고 자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