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장애인직업훈련 현장을 가다
WKC(웨스트민스터 킹스웨이 칼리지) 부설기관
영국은 장애인복지에 있어 앞선 국가로 유명하다. 장애인고용사업장(Remploy.ltd), 장애인사회적기업(Social Firms), 장애인 주거 공동체(Camphill community), 장애가족 휴양시설(Revitalise House), 개인예산제(Personal budget scheme) 등 그리니치대학교 사회과학스쿨 장애학 담당인 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 교수의 사회모델은 모두 영국이 만든 장애인복지의 걸작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직업훈련에 대해서는 딱히 알려진 바 없고 쉽게 찾을 수도 없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만난 ‘WKC(웨스트민스터 킹스웨이 칼리지)’ 부설, 중증장애인훈련센터(Alexandra center)를 소개하고자 한다.
글. 이정주 누림센터 센터장
CCCG(Capital City College Group)1) 산하 ‘WKC’는 웬만한 미식가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세계적인 요리전문학교이다.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강레오 등 최고 요리사들이 이곳의 출신이다. 필자는 런던 시내 여러 전문대학을 총괄하는 CCCG의 ‘로이(Roy Oshaughnessy) 총장’과의 인연으로 명문 WKC를 방문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곳에 중중장애인직업훈련을 위한 ‘중증장애인훈련센터’가 있었는데 WKC 부설기관이었다. 로이 총장에게 그동안 영국 장애인직업훈련 기관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하자, 로이 총장 역시도 그동안 한국 장애인 직업훈련에 관심이 많았는데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는 ‘장애인’ 중심, 그는 ‘직업교육’ 중심으로 검색해 생긴 웃기고도 슬픈 결과였다.
영국의 훈련생 중증도에 따른 맞춤형 센터운영
이곳의 중증장애인훈련센터의 교육대상 자격은 ‘배우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Learning difficult persons)’, ‘도전적 행동을 하는 사람(Behavior that may challenge)’, ‘극심하지 않은 정도의 자폐(Autism spectrum disorder)’이다. 어디에도 장애인(Disabled)을 직접 호명하는 법이 없다. 기능향상을 위해 직업훈련을 시킨다는 정보만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 ‘장애인’을 검색어로 삼아온 내게 이들 기관이 보일 리가 없었다. WKC 산하에는 중증장애인훈련센터 이외에도 두 개의 장애인직업훈련센터가 더 있다. ‘케네트 웨스트 스킬 센터(Kennett west skill center)’, ‘킹 크로스 센터(Kings cross center)’이다. 세 개의 센터는 장애가 있는 이용자 중 중증도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심한 장애가 있는 훈련생은 중증장애인훈련센터, 다음으로 케네트 웨스트 스킬 센터, 심하지 않으면 킹 크로스 센터에서 훈련을 받는다.
장애 중증도에 따라 훈련하는 커리큘럼과 훈련교사, 사회복지사, 사회서비스 인력의 배치가 다르다. 당연히 훈련 목표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훈련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취업실적의 비율도 다르다. 킹 크로스 센터 85% 이상, 케네트 웨스트 스킬 센터 60%, 중증장애인훈련센터는 40%이다. 정확한 비율은 공과에 따르지만 굳이 설명을 하자면 중증도에 따른 취업실적에 차등을 두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름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은 11년 의무교육 학제를 초등 6년, 중등 5년으로 구분한다. 이후 학업(대학)과 직업(취업) 중 하나를 선택해 후기 중등과정(A-Level)에 입학한다. 직업 교육과 대입 준비 과정으로 2년제 과정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나라 12년제와는 다르다. 고등교육(FE)에 해당하는 중증장애인훈련센터와 유사한 기관이라면 한국의 폴리텍대학 또는 전문대학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별도의 훈련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본인이 희망한다면, 정규교육과정 안에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중증장애인훈련센터와 같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장애로 인해 고등교육 기관 이용이 어렵다면 그것은 정부와 지역사회의 몫이다. 학교는 중증장애인의 케어를 위해 지역사회 사회복지법인 또는 활동지원 단체와 협력해 사회서비스 인력을 지원한다. 중증장애인훈련센터는 매킨타이어(MacIntyre)라는 지역사회단체와 협력해 사회서비스(활동지원, 학업지원, 이동지원 등)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영국과 우리나라, 장애인 직업훈련 차이점
이와 같이 영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영국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적 정규교육체계 안에서 누구나 동일하게 전문적 직업훈련의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나라는 관련 부처를 달리하여 전문 직업훈련기관을 운영하고 장애인은 별도의 장애인 직업훈련기관을 설립하고 있다.
둘째, 중증장애인훈련센터에서 알 수 있듯이 단일의 교육체계에서 전문적인 직업교사가 배치되어 있다. 또한 중증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돌봄(Social care)을 위해 별도의 사회서비스 인력이 배치되어 직업훈련을 보조하고 있다. 중증도에 따라 한명의 장애인을 위해 적게는 1인, 많게는 4인까지 배정된다. 우리나라는 전문 직업 훈련을 위해 부처를 달리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직업교사를 배치하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직업훈련기관(공단 능력개발원)에 활동지원사, 직무지도원 등 사회서비스 인력이 장애인 훈련생에게 개별적으로 배치되는 시스템은 아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중증장애인 직업훈련을 위해 영국과 같이 사회서비스 인력을 배치한다면 중증장애인의 훈련 기회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많은 이들이 장애인이라는 용어로 장애인직업훈련기관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영국의 강력한 장애인차별금지법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구분해 대상화하는 것은 대표적인 장애인 차별 행위이다. 영국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직업훈련기관을 알고 싶다면, 먼저 직업훈련기관을 찾고, 그 기관의 직업훈련프로그램 중 ‘특정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직업훈련 프로그램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차별금지법이 있고 원칙적으로 장애인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이미 공단도 ‘장애인직업능력개발원’이 아닌 ‘직업능력개발원’이라고 한다. 다만, 영국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학교에서 함께 직업훈련을 하는 직업능력개발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나 우리나라 모두 미미한 차이는 있지만 가는 방향은 같다. 영국의 장애인정책에 비해 늦게 출발한 우리로서는 이만하면 잘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마침 지난 3월 9일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년)이 발표되었다.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에 맞게 사회서비스를 대폭 늘리고, 스스로 예산을 관리하는 개인예산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다. ‘사회서비스 고도화’, ‘글로벌 스탠다드 준수’가 핵심이다.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영국을 비롯하여 세계는 지금,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휴먼서비스 혁명이 급속히 진행 중이다. 장애인직업훈련도 예외는 아니다.
1) 런던에 소재한 영국 교육기관 중 후기중등과정(전문대학)인 고등교육(FE)의 학교로 런던시내 여러 곳에 캠퍼스가 소재하고 있고 학교명칭도 각각 다르다. 그 학교들의 총괄하고 있는 기관이다. 우리나라의 폴리텍대학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