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와 장애인
지금도 무심코 사용되는 ‘장애자’는 오랜 논의를 거쳐 ‘장애인’으로 바뀐 말이다. 장애자의 ‘자(者)’는 ‘놈’이라는 뜻이고, 비하 의미가 있는 한자이기 때문에 ‘사람 인(人)’을 쓰는 장애인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은 1988년 서울패럴림픽을 치르면서였다.
글 편집부
1989년 ‘장애인’ 용어 공식화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바꿔 부르자는 주장은 적잖은 반론을 맞닥뜨렸다. 반대하는 쪽은 과학자, 노동자, 당선자 같은 예시를 들어 ‘-자’가 비하의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물론 앞의 예시 단어들은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이거나 행위의 결과로 규정된 사람이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이 논란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장애자라는 단어가 쓰이는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단어가 가진 부정적 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언어적 의미를 해석하는 것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계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나란히 개최된 서울패럴림픽이었다. 당시에는 패럴림픽이 아니라 장애자올림픽이라는 명칭이 사용됐는데, 이 국제행사를 계기로 우리도 장애인 인권과 복지에 있어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결국 1989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고 장애가 있는 사람을 뜻하는 공식 명칭이 장애자에서 장애인으로 바뀌었다.
영어권에서는 장애인과 관련된 표현이 더 민감하게 다뤄진다. 과거에는 ‘장애가 있는’을 의미하는 단어로 ‘handicapped’가 사용됐으나 지금은 차별 용어로 받아들여진다. ‘handicapped’는 불리한 여건에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장애가 있어도 휠체어를 타거나 해서 보정을 하면 handicapped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신 어떤 능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disabled’가 더 가치중립적인 표현이고, 장애인을 지칭할 때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영문명칭에도 있는 ‘Persons with Disabilities’가 통용된다.
장애인을 친근하게 불러야 할까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고쳐 부르는 것, 장애인과 관련된 표현을 바로잡는 것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인격권을 가진 존재로 여기는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장애인을 위한 법과 제도,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해서 인격이 다르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를 생각하면 지금도 종종 쓰이는 ‘장애우’ 같은 말 역시 부적절하다.
어떤 이는 ‘벗 우(友)’를 사용해 장애인을 친근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왜 문제냐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 혹은 약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어떤가. 출신 국가, 경제 능력, 성적 지향 등 여러 이유로 소수자 혹은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을 ‘친구’라고 규정하는 용어는 없다. 사적 개념인 친구를 공적으로 사용할 때는 ‘우방국(友邦國)’처럼 사실상 친구가 아닌 대상을 친구로 지칭할 때뿐이다. 장애인과의 친구 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장애인의 인격권을 존중하는 태도와 거리가 멀다. 친구가 아니어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차별과 혐오를 하지 않는 게 마땅하지, 친구니까 돕는다는 식의 감정적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