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두드리다
생각 더하기

‘간절한 소망’이 새 출발과 선택의 기준

글 비올리스트 김경석
* 시각장애인인 김경석 님의 구술을 토대로 편집부가 정리한 글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연주하는 그림

길지 않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은 음악을 계속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이고, 가장 의미 있었던 출발은 2019년에 23세의 늦은 나이로 숭실대 글로벌미래교육원 음악원 관현악과에 입학한 일이다. 23세가 왜 늦은 나이냐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내 나이와 장애인이라는 조건이 무겁게만 느껴졌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너무나 두려운 선택이었다.
나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고 비올라 연주자다. 인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에서 마쳤다. 현재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와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졸업 후에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이어가면서 연주자로서 새 길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이번에는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더 크다.
빛을 보지 못하는 전맹이라는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연주는 전혀 다른 도전이었다. 시각장애뿐만 아니라 손가락 장애도 갖고 태어나 더욱 그랬다. 네 번째 손가락과 다섯 번째 손가락이 붙어 있어 어릴 적 분리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에도 다섯 번째 손가락이 두 마디 가까이 짧아 악기를 다루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악기 중에서도 더욱 섬세한 조정이 필요한 현악기를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

바이올린 이미지와 선율이 느껴지는 악보 이미지

나를 구한 오케스트라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에서 진로전공과정을 선택하고 안마사가 되었을 때는 음악을 좋아한 것조차 후회됐을 정도로 힘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안마사로 생계를 이어갈 때 방황하던 나를 잡아준 것은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선배였다. 선배는 “이대로 포기할 거냐”며 오케스트라 단장님께 나를 소개했고 단장님은 대학교에 입학해서 오케스트라와 함께하자고 제안해 주셨다.
대학교 1~2학년 때는 이론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벅찼다. 시각장애인용 교재나 악보는 턱없이 부족했고 점자 악보가 있어도 교수님이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교수실과 과사무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상의하고 도움을 구했다. 3학년부터는 이론 과목이 줄고 실기가 늘었는데 갈수록 복잡해지는 기교를 연습하는 게 새로운 과제였다. 현악기는 전공자가 적어 대학교 오케스트라에도 반드시 참여해야 했다. 비장애인 전공자들과 나란히 경쟁하고 협력하며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다.
하루하루 전쟁 속에서도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나는 소망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내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두려웠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평생 사는 쪽이 더 두려웠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삶의 방향을 선택하기가 더 두렵고 시작하기가 주저되는 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다. 누군가에게 조언할 입장은 아니지만, 이제 시작하는 분들께 뜨거운 응원을 보내며 시작의 설렘과 기대를 나눌 곡들을 추천하고 싶다.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과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을 꼭 들어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