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첼로 연주로 모두에게 평화가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홍보대사 배범준 첼리스트
여섯 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해 현재는 세계적인 ‘평화 첼리스트’가 되었다. 지적장애인인 배범준 첼리스트는 크고 작은 난관 속에서도 첼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끝없는 노력과 최선을 향한 그의 집념은 다양한 수상 실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홍보대사로 위촉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 편집부 사진 김덕창
* 배범준 첼리스트의 어머니인 김태영 님이 인터뷰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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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공단의 홍보대사가 되신 걸 축하합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홍보대사가 되어 진심으로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앞으로 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어떻게 첼로를 시작했고 첼로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3살 때 외부 충격으로 뇌가 손상됐어요. 그래서 뇌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바이올린을 6살부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 날, 연습실 앞을 지나가는데 그곳에서 흘러나온 첼로 소리에 반했어요. 매일 첼로 연습실 앞에 서 있게 됐고요.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첼로를 사주셨습니다. 첼로를 처음 만난 날은 너무 좋아서 첼로를 끌어안고 잠들었어요. 첼로랑 있으면 행복해지고 마음도 평온해져요.
수상 경력이 참 많은데요, 이러한 성과의 비결이 있나요?
사실 형편상 가끔 받는 레슨이 전부였어요. 그래서 수상 욕심은 없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비장애인들과 함께한 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 해외 연주 기회가 왔던 적도 있었는데 참가비용 때문에 포기했었고요. 그 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콩쿠르를 나갈 때마다 수상 목적보다는 가족소풍을 가듯이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갔어요. 그럼에도 많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가끔 받는 레슨이지만 항상 최선을 다해 지도해주신 선생님들 덕분인 것 같아요. 열성으로 가르쳐주시기에 저도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래서 기적 같은 행운들이 자주 따랐던 것 같아요.
첼로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는지요.
저 스스로 첼로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때로는 장애인이 무슨 첼로를 연주하느냐고 외면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연습했어요. 연주에 몰입하면 배도 고프지 않고 물 한 모금도 생각나지 않아요. 그만큼 열심히 연습해요. 물론 한계를 느낄 때는 많아요. 그럴 때는 ‘손가락이 길을 잃었어.’ ‘첼로야 미안해. 다시 해볼까?’하고 첼로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마음을 다잡아요.
만약 청각장애인분들이 들을 수 있다면 어떤 곡을 연주해주고 싶은가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인 바흐의 프렐류드를 들려주고 싶어요. 프렐류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어서 가장 좋아해요. 예전에 청각장애인에 관해 관심을 뒀던 때가 있었어요. 수어를 검색해서 연습하기도 했어요. 또 청각장애인분들을 만났던 적이 있었는데, 첼로 연주를 어떻게 들려줄까 고민하다가 제가 첼로를 연주할 때 옆에서 손을 대보면 되겠다 싶었어요. 악기에서 나는 울림만으로도 음악은 전달될 수 있다고 믿어요.
배우 오정세 님과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연인가요?
몇 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오정세 형이 발달장애인 역할을 하셨어요. 동화작가 사인회에서 주변의 시선에 괴로워하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봤어요. 저는 그때 형을 달래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놀이동산에 같이 가서 그 형과 놀아줄 거라고 계속 말하고 다녔죠. 오정세 형에게 그 말이 전달돼서 진짜 만나게 되었어요. 이후 오정세 형이 수상소감에서 “범준아, 놀이동산에 또 가자”라고 말했고 다시 만나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형은 제 개인적인 일에도 직접 찾아올 만큼 저를 아낌없이 응원해주세요.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인연이에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님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그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세 살 터울의 동생이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어요. 책 내용 중에 ‘선로에 다섯 명의 사람이 묶여있다. 기차가 이대로 달린다면 다섯 명의 사람이 죽는다. 오른쪽 선로에는 한 명의 사람이 묶여있다. 기차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한 명이 죽는다. 당신 앞에 선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레버가 있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어요. 저는 망설임 없이 “안 돼! 119에 신고해야 해!”라고 답했어요. 이 대답이 교수님께 전달됐는데, 굉장히 흥미롭다고 하시면서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만나게 되었어요.
첼리스트 님의 인생에서 가장 도움이 된 사람은 누구인가요?
부모님이세요. 어느 곳이든 항상 같이 다녀주시고 아무리 힘들어도 늘 응원해주시거든요. 또, 저의 강력한 지원자는 세 살 터울의 동생입니다. 항상 제 눈높이에 맞게 함께해줘요. 그리고 러시아 첼리스트 로스트포비치도 있어요. 평소에 그의 연주 영상을 보며 연습을 해서 그런지 스승님 같아요. 마지막으로 첼로 지도 선생님들이세요. 지도요청을 드릴 때마다 기꺼이 도와주시거든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각오는 무엇인가요?
올해 목표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홍보대사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싶어요. 장애인 연주가로서 장애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넓히는 데 열심히 활동할 겁니다. 또 2020년부터 ‘코로나 19 함께 극복을 위한 음악회’를 주최하고 연주비 일부를 모아 매년 국내외 소외 계층 아동들에게 행복나눔실천 및 장학금 선물을 했습니다. 그 활동도 계속 할 거예요. 그리고 ‘평화를 위한 버스킹’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에요. 작년에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버스킹을 했는데 연주를 마치고 굉장히 뿌듯했거든요. 기회가 닿는다면 그동안 코로나로 하지 못했던 국외활동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