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케냐에서 복지사가 되기까지
도전과 변화의 여정
글 김해영 국제사회복지사(지체장애)
자원봉사자로 시작한 도전의 결과들
‘국제사회복지사’ 필자의 직업 타이틀이다.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이 직업 명칭을 사용하는 이는 필자가 처음이다. 대학원에서 국제사회복지 및 프로그램 개발이 주 전공인 것도 있지만, 나고 자란 한국도 아니고 사회복지를 공부한 미국도 아닌 아프리카에서 일하니 마땅하게 국제사회복지사이다.
“아유, 그거 자격증 있는 거예요?” 하고 누가 묻는다면, “아니요. 아직 국제사회복지학 관련 자격시험이나 증을 주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라고 답한다. 국제사회복지사는 살아온 현장 경력이 자격증이란 뜻이다. 이 일을 하려면 기본은 제2, 혹은 제3의 외국어를 수준 이상으로 구사해야 하고, 여기에 일하고자 하는 나라의 문화와 다양한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 5년에서 7년 이상은 일하고자 하는 나라에서 살아보아야 가능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나는 1990년에 처음 남부 아프리카인 보츠와나로 자원봉사자로 갔다. 그곳에서 만 14년을 살면서 직업학교 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일했다. 이후, 7년간 미국 뉴욕에서 사회복지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2012년부터는 밀알복지재단 희망사업본부 본부장으로 케냐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국제개발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만 32년에 걸친 필자의 국제 개발 현장 경력을 요약하고 보니 필자가 생각해도 국제사회복지사의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아프리카권에서만 보낸 세월이 만 23년이니 이제 아프리카 대륙의 어디를 가도 겁나지 않는다. 자원봉사자로 시작한 도전이 가져온 국제사회복지사로의 변화의 결과는 나 자신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넓고, 길게 오랜 세월을 통해 천천히 드러났다.
“아유, 네가 어떻게 그걸 해?”
처음 아프리카로 떠날 때, ‘아, 나는 국제사회복지사가 되어야지’하는 생각은 없었다. 정말이지 아프리카에서 머물며 이토록 오래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 입시를 2년 연속 떨어지고 그 실패감을 씻기 위해 먼 나라로 무작정 도망간 것이 사실이었다. ‘일 년 정도 자원봉사하고 오자’했다. 그러나 십 대 시절의 나는 전국 장애인 기능대회와 세계 장애인 기능대회에 출전해 기계편물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러한 경력을 두고 20대 중반의 나이에 나라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로 떠난 것이다. 남들 눈에는 ‘하면 안 되는 일’이자 ‘잘못된 결정’ 혹은 ‘어리석고 미친 짓’으로 비췄다.
세월이 흐르자 그런 말들은 쏙 들어갔다. 나는 ‘만 14년 무보수 자원봉사’한 것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가 주는 ‘국민훈장목련장’을 받았고, 미국의 대학과 명문대학원에서 사회복지 공부할 기회도 얻었다. 그 결과로 현재 다양한 국제개발 현장을 누비고 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다른 말로는 수많은 도전을 무작정 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도전할 때마다 주변 반응은 늘 뻔했다. “아유, 네가 어떻게 그걸 해?” 열일곱 살 나이에 전국 장애인 기능대회에 첫 출전하고 그 후, 연속으로 7번의 대회를 치르는 동안에도 계속 들었던 말이다. “네 나이가 얼마인데?” 마흔을 앞둔 나이에 거의 무일푼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와 50대 초반 박사 공부를 위해 한국에 들어갔을 때도 들었던 말이다. 형편을 기준으로 인생을 재는 사람들의 쓴소리도 들었다. “네 형편에 그게 가당키나 해?”
나와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도전하다
필자는 도전과 변화라는 주제로 이번 글을 쓰면서 그동안 들었던 무수한 부정과 의심의 말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그 말들은 이상하게도 나를 현혹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답게 살아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맞아. 나는 무능력이 맞고 나이에 안 맞게 사는 것도 맞지 뭐. 형편 따질 것 없이 나대로 살자’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레이스에서 나 자신을 제외했다. 세상에서 열외가 된다는 게 때로는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더 자유로울 수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과감해질 수 있었다. 항상 ‘밑져야 본전’이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한다. 능력과 나이와 형편에 따라 사람을 보지 않는 세상.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지 않는 세상. 국제사회복지사로서 그러한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일에 보탬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