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의 정성이라면 삐뚤빼뚤해도 괜찮아요.”
전북지사 기업지원부 민희재 대리·전북발달훈련센터 최희정 주임
연초라 각각 바쁜 상담 업무 와중에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된 민희재 대리와 최희정 주임. 한 상가 건물 4층에 위치한 가죽공방을 걸어 올라오는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경쾌하다. 간만에 운동이라고 숨을 몰아쉬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모두 웃음이 터져버린, 시작부터 유쾌한 만남이었다. 이런 시간이 꼭 필요했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 편집부 사진 김덕창
손때 탈수록 멋으로 빛나는 가죽지갑
오늘 두 사람이 만들게 될 오브제는 가죽 카드지갑이다. 사전에 어떤 색을 선호하는지 물었을 때 시원시원한 성정의 민희재 대리는 그에 걸맞은 짙은 파란색을,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최희정 주임은 다홍색을 골랐다. 취향저격 색상의 가죽들이 조각조각 재단되어 테이블 위에서 두 사람을 반기고 있었다. 오늘 사용할 메인 재료는 베지터블 가죽. 식물에서 채취한 원료로 무두질해서 시간이 지나 손때를 타면 중후한 색으로 바뀌는 멋이 매력인 가죽이다.
공방 선생님의 설명을 시작으로 가죽과 가죽 사이의 테두리 면을 본드로 붙이자 익숙한 카드지갑의 형태가 나타났다. 카드를 가로로 눕혀 넣고 다닐 수 있는 납작한 3단 카드지갑의 형태다. 외곽 면에서 2mm 안쪽으로 여유를 두고 선을 긋는다. 그 선에 맞춰 포크와 같이 생긴 그리프를 대고 망치질을 하면 일정한 간격으로 바늘구멍이 뚫렸다.
“자, 이제부터 가죽공예의 하이라이트 시작입니다”하는 공방 선생님의 선언과 함께 두 사람의 손엔 바늘이 쥐어졌다. 실 양 끝에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바늘은 가죽 공예에서 자주 쓰이는 ‘새들 스치티’ 손바느질을 위한 준비물이었다. 구멍 하나에 두 개의 바늘이 교차하고 통과해 내구성을 높이는 손바느질. 최근에 떨어진 단추를 다느라 잡았던 경우를 제외하고 정말 오랜만에 바느질해본다는 두 사람. 서투른 마음에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지만, 금세 안정을 되찾고 ‘바느질 멍’을 누렸다.
한 땀의 정성, 한 땀의 깨달음
민희재 대리는 기업지원부에 근무한 지 7개월 차, 최희정 주임은 입사한 지 1년 4개월이 지났다. 차근차근 업력을 쌓고 있는 단계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바느질하는 시간 동안 서로의 업무 이야기를 하고 듣는 시간을 자연스레 가졌다.
민희재 대리는 보조공학기기 지원사업을 하면서 360여 가지가 넘는 보조공학기기 상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공부에 여념이 없다. 대상자에게 맞는 보조공학기기를 연결해주는 일이 백사장에서 모래알 찾는 일처럼 어렵게 느껴지던 시기를 이제 갓 벗어났다. 최희정 주임은 연초라 발달장애인 보호자들로부터 직업체험 입학 문의를 자주 받는다. 입학 상담뿐만 아니라 정서 상담까지 진행하는 등 보호자의 입장에서 늘 고심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뻑뻑한 가죽 구멍에 바늘을 넣으면서는 수월치 않았던 시간을, 시원하게 바늘을 빼면서는 성장한 나 자신을 돌아본다. 지나가던 선생님이 “이제 손에 익으셨네요!” 하며 칭찬하자 두 사람 얼굴에 흐뭇함이 가득하다.
“바느질이 이 두 가죽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것처럼, 우리 일도 장애인과 사회를 단단히 잇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더디게 성장한다고 걱정할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한 땀 한 땀 자신의 몫을 해나가다 보면 조금씩 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 같다는 위안을 얻어가네요.”
실을 양손으로 팽팽히 당기면서, 업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힌트를 얻은 듯 민희재 대리가 말했다. 최희정 주임도 공감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느질을 마친 두 사람이 서로의 솜씨를 평가해보는 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빵, 터진 두 사람은 삐뚤빼뚤한 손바느질에 남모를 동질감을 느껴본다. “이게 손바느질의 매력이죠”, “우리가 쓸 건데 뭐 어때요!”하며 쿨하게 웃음 지어 보이는 두 사람 사이로 업무의 긴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고민도 큐티클도 날려버리는 마무리 작업
손바느질이 끝난 이후엔 외곽면을 다듬는 마무리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전동사포로 테두리의 거친 표면을 정리하자 가죽 본래의 밝은색이 조금씩 드러났다. 단면이 한층 부드럽게 정돈된 후에는 끝이 살짝 갈라진 날카로운 칼로 외곽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카드지갑을 쓰다가 손이 베일 수도 있어서 날카로운 모서리를 부드럽게 깎아주는 작업이다. 마치 손톱의 큐티클을 정리하는 칼처럼 지나가는 구간마다 가죽이 얇은 실처럼 잘려져 나온다. 두 사람은 한층 부드러워진 외곽 면을 손으로 훑으며 놀라움을 공유했다. 이후엔 식물성 마감재인 ‘토코놀’을 손으로 고루 펴 바른다. 버터 같기도, 코코넛 기름 같기도 한 토코놀이 가죽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표면이 깨끗하게 코팅되었다.
가장 마지막 작업은 각자의 카드지갑에 이니셜을 새기는 일이다. 각자의 영어이름 이니셜을 찾으려 눈과 손가락이 분주하다. 각인 기계에 활자를 넣고 꾹 찍어내자 가죽 카드지갑이 비로소 주인을 찾은 것처럼 훤해졌다. 본인 것을 들여다보다, 서로의 것을 바꿔 들여다보며 잘 만들었다 칭찬하는 두 사람은 각각 명함과 법인카드를 넣어두고 다니겠다고 용도를 밝혔다.
베지터블 가죽은 사용자의 유수분을 흡수하며 색상이 짙어지고, 깊어지길 반복한다고 한다. 광택과 색의 대비가 깊어지는 고색(Patina)을 경험할 수 있어 매일 새로운 카드지갑이 된다고. 오늘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슬기로운 직장 생활도 더 깊이, 더 짙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비록 삐뚤빼뚤하더라도 한 땀 한 땀의 정성으로 임한다면 두 사람의 내일은 완성도 있고 풍부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바느질하듯 꼼꼼히, 꾸준히 나아갈게요!
민희재 대리
오늘 가죽 공예를 하면서 일에 대한 마음가짐과 시야를 다른 각도로 바꿔 볼 수 있어 좋았어요. 바느질하듯이 꾸준히 공부하고 묵묵히 해나가면 목표한 바가 선물처럼 얻어질 거란 교훈을 얻었습니다. 조바심보다는 1인분을 해내는 사람으로서 올해 성장하고 싶어요! 그리고 전북지사에서 최희정 주임님과 좋은 추억 만들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완성을 돕는 안내자이길!
최희정 주임
업무적으로나 일상적인 모든 일들이 원하고 계획하는 대로 마무리하는 게 쉽지 않아 답답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요. 저 못지않게 직업체험을 하는 장애인들과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보호자분들도 비슷한 부분을 느끼는 경우가 있겠다고 오늘 느꼈습니다. 곁에서 지치지 않고 한 땀 한 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하는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