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예산제 필요성과 지역사회 자립전환 대안을 찾아서
미국 장애인공동체 ‘캠프힐’에 가다
삶은 다른 누군가에게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이어야 한다. 미국의 ‘캠프힐’은 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며 비장애인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최근 우리나라는 ‘개인예산제’를 도입했는데, 장애인의 개인 욕구에 맞춰 복지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현금 등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장애인 스스로 필요한 서비스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다.
글 이정주 누림센터 센터장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경제 공동체, ‘캠프힐’
‘탈시설’ 즉, 지역사회 자립전환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탈시설 논쟁은 오래된 담론이기도 하며 자국의 실정에 맞춰 다양한 대안적 성격의 지역사회 자립 전환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중 캠프힐 공동체는 자기 결정권을 근간으로 자발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거주뿐만 아니라 고용과 일자리, 놀이와 치료가 유기적으로 순환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공동체이다.
캠프힐은 ‘빌리저’라고 불리는 장애인 당사자,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하우스코디네이터’와 자원봉사자 ‘코워커’, 그리고 주거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며 부모 역할을 대신해 가사 일을 지원하는 ‘하우스패어런츠’가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100여 개의 캠프힐이 있다. 독일인 칼쾨니히에 의해 독일에서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을 피해 스코틀랜드 애버딘으로 이주하여 뿌리가 내려졌다. 이후 독일, 영국, 미국 등에 산재해있고 도시에도 있으며,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도 있다. 도시와 농수산 지역사회의 어느 곳에서나 캠프힐은 존재한다.
미국에서도 캠프힐은 분명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의 미래 대안임이 틀림없다. 사진 속의 공간으로만 보아도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연과 먼저 친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러면서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만들어진 생산물을 팔아야만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으며 공동체의 장애인, 코디네이터, 패어런츠의 경제적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선 운명 공동체, ‘코팩 캠프힐’
미국에는 약 36여 개의 캠프힐이 존재한다. 오늘 소개할 코팩 캠프힐(Camp hill Village U.S.A., Copake, NY)은 그중 하나이며 농업을 통한 자급자족을 구현하는 공동체이다. 코팩 캠프힐 마을 공동체 전체에서 약 230명이 살고 있으며 이 중 95명이 발달장애인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코팩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캠프힐 공동체로서 뉴욕에서 북쪽으로 2시간여 걸리는 컬럼비아 카운티에 약 75만평 대지 위에 조성되어 있다. 법적 근거는 뉴욕 주 정부 소속 발달장애인과(The Office for People with Developmental Disabilities, OPWDD)로부터 인증을 받았으며, 자산 중 전체 50% 이상은 주 정부로부터 받고 있다. 나머지 50%는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분담하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각각의 수당을 내어놓거나, 자신의 자산을 공여하는 방식이다. 장애인 개인이 자신의 재정으로 주거와 서비스를 구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돈으로 선택한 거주 공간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시설과는 차이가 있다. 자발적이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발달장애인은 25세에서 80세까지 다양한 세대로 구성되어 20개의 하우스(가구)로 나뉘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하나의 하우스 내에는 약 5~8명의 발달장애인, 2~4명의 코워커, 2명 내외의 하우스패어런츠 등 약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캠프힐이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공동체 내 다양한 일자리 때문이다. 이곳 작업장은 주로 농업과 관련이 있다. 총 9개의 기본 작업장이 있고, 각 작업장마다 전문적인 교육과 트레이닝을 거친 숙련된 ‘워크마스터(Craft-masters 혹은 Work-leaders)’가 배치되어 발달장애인들, 코워커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각자의 희망과 역할에 따라 근로한다. 오전 10시부터 12시 30분, 오후 2시 30분부터 5시까지 진행하며 시간별로 쉬는 시간을 보낸다. 단, 아침 작업이 필요한 축산농장의 경우 7시부터 근로가 시작된다. 또한, 각 근로 작업장에서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은 9개 작업장 외 할 수 있는 역할을 준다. 예를 들어 각 가정에서 가사 일을 돕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다.
개인예산제, 장애인 복지의 미래 대안
캠프힐은 특성상 장애인보다는 코디네이터, 코워커(자원봉사자)의 활동이 활발하다. 때론 장애인을 중심으로 봉사자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마치 우리나라 직업재활시설의 한 장면 같았다. 장애인근로자보다 종사자가 더 많이 생산에 참여하고 분주히 움직이며 직업재활시설의 매출을 올리는 풍경이라고나 할까.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여기의 봉사자들은 어느 면에서 장애인으로 조성된 재정을 통해 봉사자 수당을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시설은 정부 재정을 통해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다. 정부에 고용된 종사자들에 의해 보호받는 사람이고, 장애인이 고용한 종사자들이라는 차이에서 그들의 근본적인 인권과 자기결정권은 당연히 존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탈시설은 도농산수의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성과 자기결정권이 어디에서부터 나오느냐로 인해 극명하게 갈라진다. 그러한 생각에 이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탈시설 논쟁에서도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진정한 탈시설은 요원하다.
특히 현대사회 자본주의, 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개인 스스로 재정을 운영할 수 없다면 즉, 자신의 돈으로 재화와 용역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다면 실질적인 자기 주도적 삶은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개인예산제의 도입이야말로 장애인의 주체적 삶과 자기 주도적 정체성을 확보, 탈시설의 논의에 있어 중요한 핵심과제라고 볼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이른바 개인예산제(유럽형), 자기주도예산(미국) 등 장애인이 스스로 서비스 구매자로서 다양한 용역(활동지원), 재화(필요한 물건), 다양한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사람중심의 복지서비스 체계로 혁명(Revolution of Service system) 중이다. 캠프힐은 그렇게 장애인이 자기에게 주어진 돈으로 자기결정권을 발현할 수 있는 주체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미래 대안으로서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된다. 더 이상 장애인의 주권이 에이전트를 통해 대행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스스로의 권리로 구현되어야 하며 종사자는 장애인의 권리를 지원하는 자리로 옮겨져야 한다. 그것이 지금 세계가 장애인 복지를 향해 움직이는 방향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에게 소득을 안겨주는 장애인 고용은 다른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한 사회적 기제로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