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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플러스

이탈리아 영화, 천국의 속삭임

“남들에겐 없는 너만의 것, 그것을 꼭 지키렴.”

시력을 상실했다는 말은 어떤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르게 본다는 의미가 된다. 시력의 상실이 아니라 또 다른 감각의 발견이다. 여기 그것을 증명하는 한 소년이 있다. 소년 미르코. 그는 사고로 시력을 상실했지만,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깊고 풍부한 소리의 세계를 만난다. 2006년에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천국의 속삭임’이 그리는 이야기다.

글. 차미경 문화칼럼니스트

열 세 개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관객상·특별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영화, ‘천국의 속삭임
13개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관객상·특별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영화, ‘천국의 속삭임’
시력을 잃은 소년 미르코의 아름다운 성장기

공부보다 동네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 더 즐거운 여덟 살 소년 미르코. 책을 권하는 아빠에게 책보다 TV를 사달라고 말하는 해맑은 아이다. 아직 TV가 귀하던 시절이라 아들의 철없는 요구가 난감한 아빠지만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나중에 돈 벌면 꼭 사주겠다고 어린 아들과 약속한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
매사에 호기심 많은 미르코가 부모님 몰래 선반 위에 걸어둔 장총을 꺼내 만졌다가 실수로 발사된 총에 두 눈을 잃고 만 것이다. 다시는 TV를 볼 수 없게 된 것보다 더 슬픈 건 가족과도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 그 시절 이탈리아에서 장애아는 일반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에 멀리 기숙사가 있는 맹인학교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미르코는 부모님과 떨어진 낯선 환경이 영 서툴고 외롭다. 학교에서 받는 교육에도 영 흥미가 없다. 흥미는커녕 배우고 싶은 의지조차 없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잡게 된 낡은 녹음기 하나. 그것을 통해 미르코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하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소리들이 많은지. 녹음 버튼을 누르면 신기하게도 그 소리들이 담기고 녹음기를 통해 다시 재생돼 나오는 소리는 미르코를 아주 재미있는 상상 속의 세상으로 데려다준다. 미르코는 그 소리들을 귀로 듣고 마음껏 그 소리를 상상하고 표현하는 일이 너무너무 흥미롭다.
“파랑은 자전거를 탈 때, 네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같아.”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색을 전혀 알 수 없는 친구 펠리체에게 미르코는 파란색을 이렇게 설명한다. 또한 ‘빨강은 불, 하늘의 노을 같다’고 얘기해 주는데 이 영화의 원제(Red Like The Sky)는 그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다. 미르코에게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시각 대신 다른 모든 감각을 동원해 느끼고 표현하는 독창적인 능력이 있다.
미르코가 눈을 감고 얻은 세상은 훨씬 더 풍성하고 깊고 아름답다. 미르코가 밤에 몰래 기숙사를 빠져나와 여자친구 프란체스카와 함께 시각장애인 친구들을 데리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은 너무나 아름답다. 영화 속에서 들리는 수많은 소리와 프란체스카가 들려주는 화면해설만으로도 다른 그 어떤 관객들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영화를 느끼는 소년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시네마천국’의 어린 토토처럼 맑고 환하다.

영화 ‘천국의 속삭임’의 한 장면. 미르코가 사운드 시네마’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영화 ‘천국의 속삭임’의 한 장면. 미르코와 친구들이 ‘사운드 시네마’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영화 ‘천국의 속삭임’의 한 장면. 미르코와 친구들이 ‘사운드 시네마’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최고의 음향감독 미르코 멘카치의 실제 이야기

미르코는 소리로 이야기 만드는 이런 독창적인 재능으로 후에 뛰어난 음향감독이 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영화사에 최고의 음향감독으로 이름을 남긴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가 바탕이다. 직조 기술이나 전화 교환 같은 직업교육에만 치중하는 기존의 교육 방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소년의 독창적인 재능과 그것을 지켜주려는 따뜻한 선생님 그리고 아름다운 소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따뜻한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감독은 실제 시각장애인 아이들을 출연시켜 이야기에 질감을 더해 주었다.
미르코를 지켜내기 위해 선생님과 졸업생 시각장애인 선배들, 그리고 노동운동을 하던 노동자들까지 연대하여 잘못된 교육정책과 싸워내는 모습은 감동적이지만 결코 신파적이지 않다. 결국 이탈리아는 1975년 장애인도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법을 통과시킨다.
“네 안엔 뭔가 아주 특별한 게 있어. 아주 독창적인, 남들에겐 없는 너만이 가진 것. 나와 약속하렴. 여길 떠날 때 어느 누구에게도 그걸 뺏기지 않겠다고.”
선생님인 줄리아 신부님이 미르코가 학교를 떠날 위기에 있을 때 해준 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어야 할 말 아닐까. 특별함이란, 탁월한 재능이나 비범한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만의 독특함. 바로 그것이 ‘특별함’이다. 그것은 누군가와 겨루어 이겨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떠들썩한 성공을 거두어야만 빛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만이 가진 독특한 빛깔을 발견해 주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고 조화롭고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미르코가 친구 펠리체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학예회에서 학부모들이 눈가리개를 하고 시각장애인 소년 미르코와 친구들이 제작한 ‘사운드 시네마’를 감상하는 모습

학예회에서 학부모들이 눈가리개를 하고 시각장애인 소년 미르코와 친구들이 제작한 ‘사운드 시네마’를 감상하는 모습

* 2006년 제작된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2009년 개봉됐으며, 2013년 배리어프리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배리어프리 버전은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의 영화로 사랑받은 허진호 감독의 연출과 배우 한효주의 해설로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