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자리가 멀어도 의지되는 그런 사이입니다.”
경북지사 기업지원부 김혜석 대리, 장윤지 주임, 취업지원부 심상훈 주임
서로 친하냐는 질문에 그저 웃던 세 사람. 그런데 의지가 되냐고 묻자, “네!” 하고 셋이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직장에서의 관계라면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많을 텐데. 의지가 된다는 건 서로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니 겉바속촉한 세 사람의 관계를 가죽공예를 하면서 알아봤다.
글 편집부 사진 정택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세 사람
공방 문을 열고 들어온 세 사람의 눈엔 낯선 곳에 왔다는 적신호가 작게 빛나는 것 같았다. 키링을 만들 거라는 선생님의 안내가 이어지고, 다양한 질감과 색을 띤 가죽들이 즐비한 선반 앞에 서고 나서야 긴장의 끈을 살짝 놓은 듯했다. 키링 형태가 무너지지 않도록 얇은 가죽은 배제하고 두꺼운 가죽을 고르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이어졌다. 고민 끝에 김혜석 대리는 하늘색, 심상훈 주임은 갈색, 장윤지 주임은 베이비핑크색 가죽을 골랐다. 각자 취향에 따라 골라온 것이었겠지만 어색해하는 세 사람의 관계와 섞이지 않는 가죽의 색들이 어쩐지 닮아 있다고 느껴졌다.
“가죽과 가죽 사이에 구겨지지 않도록 보강재 역할을 하는 종이를 넣어줄 거예요, 이 세 겹이 잘 붙을 수 있도록 사이사이 본드를 얇게 발라주세요.”
선생님의 설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헤라에 본드를 묻혀서 C자 형태로 눌러 바르는 세 사람. 본드가 뭉치지 않도록 잘 펴 바르는 게 미션이었다. 시원시원하게 바르는 심상훈 주임이 제일 먼저 끝내고, 그 다음엔 장윤지 주임, 가장 섬세하고 꼼꼼하게 바르느라 마지막을 장식한 건 김혜석 대리였다. 정말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라 느껴져 “세 분이 좀 안 친하죠?” 하고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대답 없이 그저 웃어넘기는 세 사람. 의지가 되는 사이냐는 질문에는 함께 ‘네’하고 한 목소리로 답했다.
“셋의 업무 영역이 서로 달라서 업무적으로 얽히거나 하는 일이 잘 없어요. 각자의 일을 묵묵히 하는 스타일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거 있잖아요. 오다가다 툭 쳐서 돌아보면 간식으로 힘을 주는 사람, 그리고 괜히 자리가 멀어도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 그냥 그런 존재들인 것 같아요.”
어느새 모든 공정의 마지막 순서를 담당하게 된 김혜석 대리가 본인들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뒤에선 탕탕, 망치질이 한창이다. 겹겹이 붙인 가죽 위에 동그란 커터를 올리고 망치로 쳐서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더 큰 동그라미 가죽을 찍어내는 공정이었다. 장윤지 주임과 심상훈 주임이 망치를 내리치면서 남은 긴장을 모두 훌훌 털어버린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벚꽃 보러 가는 트리오
김혜석 대리와 장윤지 주임은 입사 동기면서 같은 기업지원부 소속이고, 심상훈 주임은 취업지원부 소속이다. 같은 부서 내에서도 김혜석 대리는 보조공학기기 지원사업을, 장윤지 주임은 회계 및 구매 계약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심상훈 주임은 장애인 구직자들의 취업을 돕는 취업성공패키지 상담원 업무를 해나가고 있다. 세 사람이 친해진 계기는 특별히 ‘없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라 한두 번 점심을 먹고, 그 인연으로 저녁도 먹고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세 사람 중 가장 늦게 경북지사에 온 심상훈 주임은 그래서 두 사람이 고맙다. 먼저 말을 걸어주고 함께 뭘 하자고 제안한 것도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공통된 추억은 바로 ‘벚꽃 나들이’였다. 내년에도 같이 벚꽃을 보러 갈 예정이라고.
동그랗게 잘린 가죽 단면 3mm 안쪽에 바느질 안내선을 컴퍼스로 그려낸다. 두께감 있는 가죽 두 장이 붙어 있어 바느질할 수 있는 구멍을 미리 뚫어주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포크와 닮은 사선 그리프를 잡고 망치로 탕탕 내려치면 가죽에 사선 구멍이 남는다. 이제 진득하게 바느질 작업으로 돌입, 이제는 각자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바늘구멍에 각자 가죽에 맞는 색의 실을 꿰며 대화를 이어간다.
“기술 가정 시간에 한 땀씩 떠본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윤지 주임님도 기술 가정 시간이 있었어요?”
심상훈 주임이 장윤지 주임에게 물어본 이유는 교육과정이 다르기 때문. 올해 21세인 장윤지 주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지사의 실질적인 막내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막막해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하나씩 하나씩 정면 도전하며 업무를 익히고 있다고.
“심상훈 주임님은 제가 당이 떨어진다 싶으면 어떻게 아시고 달달한 간식을 주고 가는 간식 응원러고, 김혜석 대리님은 제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고민 해결사 역할을 해주고 계세요. 든든하고 감사한 두 분 덕분에 매일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바느질 구멍에 실이 점선을 그리며 두 가죽을 더 잘 그러잡는 형태가 완성됐다. 세 사람이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매일매일의 유대를 통해 오늘 바느질을 함께하게 된 것처럼. 한 땀 한 땀 의지가 쌓이고 추억이 쌓이는 시간이 무르익고 있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올해도 무사히
바늘구멍을 잘못 찾아 넣거나, 실이 엉키면 다시 차분하게 돌아가 해결한 세 사람. 장애인들이 공단을 찾을 때의 심정과 같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심상훈 주임은 시니어 장애인 구직자와 적합한 일자리 매칭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국가 사업과 연계시켜 장기 근속하는 결과를 만들어냈고, 김혜석 대리는 휠체어를 자동차에 실어주는 보조공학기기를 지원해드린 일을, 장윤지 주임은 고용장려금 업무를 담당하면서 이 사업이 장애인을 근속할 방법이 된다는 걸 깨달으며 보람을 느낀다고 답했다. 더 좋은 길을, 또 그 길이 아니라면 다른 좋은 길을 끊임없이 제시해줄 든든한 길잡이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다. 비록 돌아가는 일이지만, 엉킨 실은 풀고, 잘못된 한땀은 다시 꿰면 되듯이 장애인 구직자들이 더 좋은 스텝을 밟아나갈 수 있도록 세 사람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오늘도 해나가는 중이다.
재단을 하느라 가죽 보풀이 한껏 일어난 테두리에 사포질을 해 표면을 매끄럽게 정리한다. 가죽과 비슷한 색상의 염료를 붓으로 칠해 마무리하는 세 사람. 부자재인 은색 링을 가죽에 끼워 나사를 돌리니 아기자기한 가죽 키링이 완성됐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눈높이에 키링을 들고 딸랑딸랑 흔들어 보였다. 올해 고마웠던 사람,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용으로 줄 예정이라는 키링에 잠시 마음을 담아본다.
“저, 심상훈 주임님, 김혜석 대리님 모두 올해 업무적으로 잘 마무리하고 장애인 근로자분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제 슬슬 내년을 준비하는 시즌이니 각자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올해는 무사히, 내년은 힘차게! 파이팅!”
“열쇠 많으신 어머니께 선물 드릴 거예요.”
경북지사 기업지원부 김혜석 대리
가죽 상품을 그냥 봤을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이렇게 섬세한 공정들을 거쳐 완성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들도 바깥에선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일해야겠다, 그래야 느슨해 보이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저라는 사람에 대한 개성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한 저만의 개성을 발굴해서 끝까지 잘 다듬어 가는 것,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굽히지 않는 것. 그래서 잘 발현해 온전한 저를 완성해 나가고 싶습니다. 오늘 만든 키링은 어머니께 선물로 드리려고요.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도움 주신 옆자리 대리님께 선물하고 싶습니다.”
경북지사 기업지원부 장윤지 주임
제가 사실 키링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라서 어떤 분께 드려야 하나 고민했는데요. 옆자리 박지인 대리님이 생각나서 색도 대리님이 좋아하는 색으로 선택했습니다. 제가 힘들어 할 때마다 도움과 조언, 격려를 아끼지 않으셔서 제일 크게 의지하는 분이에요. 정성을 듬뿍 담았으니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평소에 레고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가죽공예는 또 다른 재미가 숨어 있다는 걸 느꼈어요. 앞에서 꼬이면 뒤에서도 꼬이니 신중하게, 하지만 실수해도 다시 만회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좋은 시간 마련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초등학생 조카에게 주고 싶어요.”
경북지사 취업지원부 심상훈 주임
늘 좋은 게 생기면 제게 나눠 주고 싶어 하는 우리 조카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지금 이 키링을 받기에는 너무 어릴 수 있지만 자라면서 아 우리 삼촌이 날 위해 이런 걸 손수 만들었구나, 하고 깨닫는다면, 그리고 제 마음이 전달된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습니다. 늘 긍정적인 윤지 주임님과 제가 배울 게 많은 혜석 대리님. 제가 회사에서 많이 의지하는 두 분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감사했어요. 제가 평소엔 부끄러워 내색을 잘 못하지만 두 분 덕분에 올해도 재미있게 잘 보냈다고, 늘 든든히 옆에 계셔서 고맙다고 지면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