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장애인고용 정책에 도전하다
한국식 ‘장애인 근로능력 평가제’ 도입
1992년에 몽골은 사회주의 ‘몽골 인민공화국’에서 민주주의 ‘몽골국’으로 국명을 변경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국가로 변화했다. 몽골의 인구는 우리나라의 7% 수준인 340만 명이지만 국토면적은 우리나라의 7배로, 세계 10대 지하자원 보유국 중 하나다. 반도체 주요 소재인 희토류의 세계 2위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철, 구리, 금, 석탄, 몰리브덴, 텅스텐 등 다양한 지하자원 또한 풍부하다. 이러한 자원을 바탕으로 몽골은 미국, 러시아, 중국과 자원 교역을 통해 지난 30년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글. 이정주 누림센터 센터장
급속히 경제성장 중인 몽골의 장애인고용 정책
코로나19 시기 주춤했지만, 몽골은 2022년과 같이 세계 경제가 불황인 시기에도 5%의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 올해도 주요 수출품인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어 세계은행은 몽골의 경제 성장률을 6%대로 예측하고 있다. 1인당 GDP 성장도 아래 그림과 같이 가파르다. 2023년은 5,400달러 수준을 예상한다.
이처럼 높은 경제 성장세를 보이는 몽골은 그에 걸맞게 국민 복리를 위한 선진국형 사회정책 도입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장애인고용 정책이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최소한이기는 하지만 몽골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 높은 편이다. 자본주의를 도입하기 시작한 1996년부터 사회복지종합법을 제정하여 부족한 재원에도 불구하고 현금지원의 기틀을 마련해 두었다. 그 후 경제 성장률이 오름세를 보이던 2005년 11월 사회복지법을 대폭 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무기여 장애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때 영구적으로 보호와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정의하며 3개월에 한 번씩 생계지원 조건부 현금 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았다. 일종의 수급권인데 특이하게도 장애인 당사자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돌보느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는 가족에게 지급한다는 점이다. 다소 의아할 수 있지만 1차 집단 중심의 유목 사회라는 몽골의 특성을 염두에 두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할 권리가 있는 개인으로 보지 않고, 장애인 한 명으로 인한 가족의 어려움을 덜어주려는 공동체 지원 개념이 크다는 점이 이채롭다.
농경과 유목의 다른 생산 기반이라 하더라도 아시아에서는 가족 공동체가 곧 경제 공동체인 문화적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현대 장애인복지의 중요한 요소인 장애인복지의 당사자성을 위협하는 모습은 분명하다. 하지만 장애인을 돌보는 데 필요한 비용을 그 가족들에게 현금 이체하는 방식을 고안한 사회주의적 발상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비록 국가는 가난할지라도 나름대로 장애인복지를 구현하려는 후발 개도국의 노력에 애틋한 지지를 보내게 되는 이유다.
장애인 인권법 제정, 여덟 가지 목표 설정
몽골의 장애인고용 정책이 전환을 맞은 것은 2017년부터다. 당시 민주당의 ‘할트마 바툴가’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현금성 소득지원 방식보다는 고용을 통한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장애인 정책 역시 장애인고용 정책을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아시아개발은행(ADB, Asia Development Bank)’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장애인 직업훈련과 고용지원 제도 마련에 나섰다. 이후 2021년부터 ADB 기금에서 40만 달러를 지원받았으며 지금까지 장애인고용정책 컨설팅을 받고 있다.
몽골은 1999년부터 근로기준법에 형식적이지만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정의하고 있었다. 1999년 개정 몽골 근로기준법 제111조는 장애인 노동을 정의했는데, 제111조 1항은 50인 이상의 근로자가 있는 사업체나 기관은 정원의 3% 이상 장애인고용 의무를 정하고 있다. 2항은 미고용 시 매달 과징금(고용부담금)을, 3항은 과징금의 액수를 정부가 정하고 이를 기금화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상응하는 시행 체계는 마련하지 못했다. 그나마 구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동기는 역시 민주당 정권이 2008년 발의된 UN CRPD 비준하면서다.
관련하여 2016년 장애인 인권법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세부 준칙으로 ‘장애인 인권증진 및 개발에 관한 정부 프로그램(National program on promoting human rights and development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을 계획하면서 몽골의 장애인고용정책은 본격화됐다. 내용은 장애인이 평등하게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장애인이 유리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스스로를 발전시킬 기회를 늘리며 장애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바꿔 장애 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여덟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① 장애인의 능력 재활의 최대치 달성 ② 동등한 교육 수준에 접근 ③ 장애인고용 촉진 ④ 장애 친화적인 서비스 제공 ⑤정보 및 인프라 접근성 개선 ⑥ 장애인을 위한 일반 데이터베이스 구축 ⑦ 장애인의 사회적 의사결정 참여 보장 ⑧잠재적 자연재해로부터의 안전 보장이다.
이러한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몽골은 기존의 ‘사회복지노동부(MSWL, Ministry of Social Welfare and Labour)’를 ‘고용사회보호부(MLSP, Ministry of Labour and Social Protection)’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고용 중심의 사회복지를 구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를 기점으로 앞서 ADB의 지원을 받은 약 40만 달러를 가지고 장애인고용, 접근성, ICF 기반 근로능력평가, 사회복지서비스 등 4개 영역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벤치마킹한 몽골, 이행경제 국가들에 본보기
장애인고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애인의 생산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진단 도구가 필요하다. 근로능력평가표와 직무 배치가 중요한 과제인데 이를 위해 WHO, ‘ICF(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를 준거로 근로능력판정도구를 개발하고, 개인별직업재활계획(IEP)을 수립해 대상자에게 적합한 서비스가 제공되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여기에 활용되고 있는 척도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개발한 ‘장애인 고용서비스 판정도구 개발 연구(홍성두 외)’를 기본 텍스트로 참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몽골은 장애인고용보다는 장애연금, 보조도구지원, 휠체어 등 복지서비스 제공이 주류를 이뤘다. 이는 지역사회 의사의 판정에 준하여 제공받는 사회복지서비스가 주류를 이룬 것인데 앞으로는 ICF 기반의 근로능력판정도구를 통해 장애인 일자리와 고용영역을 강조하는 정책을 구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책의 방향이 장애연금이나 보조도구지원을 넘어 장애인 개개인의 근로능력 평가를 통해 양질의 고용을 유도하는 정책으로 전환을 모색 중이다.
또한 몽골은 ADB와 일본 JICA로 지원을 받아 2019년부터 시공하여 2023년 몽골의 ‘다르함(Darkhan)’, ‘둔드고비(Dundgovi)’ 등 6개 지역에 장애인 직업재활센터를 완공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전문인력 양성 및 직업재활 프로그램 구축 등은 미비한 상황이다. 현재는 필자를 비롯한 장애인고용전문가, 현지 교수진들은 직업재활센터를 운영할 전문인력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지 전문가 채용과 관련 인원 채용이 미진한 상황이지만 몽골의 경제성장과 사회정책에 관한 관심에 힘입어 곧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렇듯 몽골을 비롯한 사회주의 경제체계에서 자본주의 경제체계로 전환을 꿈꾸는 이른바 ‘이행경제(Transitional Economy)’ 국가들에 몽골의 발 빠른 전환 정책은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 정치체계는 그대로 둔 채 경제체제만 바꾸는 단일전환 이행경제보다는 몽골과 같이 정치체계(다당제 민주주의로 전환)와 경제체계(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 모두를 바꾸는 ‘이중전환 이행경제체제’를 추진하는 국가인 베트남, 미얀마, 쿠바, 캄보디아 등에 몽골은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마치 몽골이 참고한 우리나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