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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다큐멘터리 ‘스피드 큐브의 천재들’

누구나 한 번쯤은 알록달록 정육면체의 큐브를 만지작거리며 색깔 맞추기에 열중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내가 둔한 사람이어서일까? 나는 단 한 번도 큐브 맞추기에 성공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세계에서 가장 빨리 큐브를 맞추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스피드 큐브의 천재들’, 이 다큐멘터리가 나를 이끈 이유는 바로 그런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글. 차미경 문화칼럼니스트

다큐멘터리 '스피드 큐브의 천재들'의 맥스 파크(왼쪽)와 펠릭스 젬덱스(오른쪽)
다큐멘터리 ‘스피드 큐브의 천재들’의 맥스 파크(왼쪽)와 펠릭스 젬덱스(오른쪽)
천재 자폐인 ‘맥스 파크’의 우정과 성장 이야기

2년마다 열리는 WCA월드챔피언쉽은 스피드 큐브를 즐기는 전 세계 큐브 마니아들이 참가하는 세계적인 스피드 큐브 대회이다. 호주의 ‘펠릭스 젬덱스’는 수년간, 이 대회를 평정해 온 최고 스피드 큐브의 강자. 그러나 펠릭스가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챔피언의 자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으니, 그는 바로 ‘맥스 파크’.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놀라운 속도로 펠릭스의 자리를 위협해 오는 무서운 라이벌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두 라이벌 펠릭스와 맥스의 순수한 경쟁과 우정, 그리고 성장을 담은 이야기다.
“또 천재 자폐인 이야기야?”
호주 챔피언 펠릭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보다가 라이벌 맥스가 등장하는 순간 많은 이들이 이렇게 탄식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그동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천재 자폐인 이야기를 우린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그런 이야기에 식상해지고 심지어 우려까지 느끼는 사람들에게 ‘맥스도 천재 자폐인?’이란 사실은 초반에 시청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맥스의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보다 보면 단지 특출난 천재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물론 맥스가 큐브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천재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맥스에게 다양한 기회와 무엇보다 그를 성장시키는 좋은 관계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그는 과연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까.
두 살 때 자폐 진단을 받은 맥스, 엄마 미키 박 씨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혼자서만 노는 맥스의 모든 행동을 온종일 곁에서 따라 했다고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열 살 무렵 맥스가 집안에 굴러다니던 큐브에 관심을 보이자 혼자서 물병이라도 딸 수 있게 해 보자는 생각으로 소근육 발달을 위해 가르쳐 본 것이 큐브의 시작이었다.

자폐인이자 한국계 맥스 박(21)은 3X3X3 큐브 빨리 맞추기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자폐인이자 한국계 맥스 박(21)은 3X3X3 큐브 빨리 맞추기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3X3X3 큐브 빨리 맞추기 세계 신기록을 세운 자폐인이자 한국계인 ‘맥스 박’

편견 넘어 잠재력을 끌어내 주는 주변인이 필요

맥스가 처음으로 큐브를 완성하자 무작정 큐브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맥스가 큐브를 잘해서가 아니라 큐브를 통해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렇게 했다고 맥스 부모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부모의 바람대로 맥스는 수많은 큐브 대회에 참가하며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해 갔다. 무엇보다 맥스는 자신의 우상이면서 라이벌이자 롤모델이었던 펠릭스와의 관계를 통해 많은 성장을 했다. 그냥 “잠자기 전에 이 닦아”라는 부모의 말은 듣지 않아도 “펠릭스도 잠자기 전에 이를 닦는다”라고 하면 바로 들을 정도로 펠릭스는 맥스에게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런 펠릭스와의 경쟁과 우정을 통해 맥스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쿨하게 지는 법도 결국은 배우게 된다.
그것은 펠릭스도 마찬가지. 게임이 아니라 삶에서 진짜로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진정한 친구의 모습을 맥스와 펠릭스가 보여준다. 맥스가 가진 특별함을 누군가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그의 천재성은 끝내 발현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세상에 수많은 천재들이 그렇게 사라져 버렸을지도.
무엇보다 펠릭스라는 친구를 통해 아름다운 관계를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맥스는 그저 고립된 자폐인으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맥스의 천재성이 아니라 다양한 도전의 기회, 그리고 진정한 관계와 소통의 경험이 그를 어떻게 성장시켰는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장애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웅크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