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하나, 함께 금빛 레이스 펼칠 겁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휠체어 배드민턴 선수단
네트 위를 가르는 셔틀콕을 따라 선수들의 손과 눈이 바쁘다. 상체를 뒤로 힘껏 젖혔다가 반동으로 셔틀콕을 쳐내곤 바퀴를 역방향으로 굴려 재빨리 이동하는 선수들은 이미 휠체어와 한 몸이다. 올해 3월 창단 후, 숨 가쁘게 달려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휠체어 배드민턴 선수단. 그 구슬땀 가득한 연습 현장에 함께했다.
글 편집부 사진 김덕창
성우가 녹음한 음성을 듣고싶으시면
오른쪽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내일이 더 기대되는 신인 선수들의 반란
라켓에 셔틀콕이 정타로 맞을 때마다 체육관이 쩌렁쩌렁 울린다. 혼합복식 연습경기를 진행하면서 독려의 기합, 아쉬움의 탄성이 오간다. 그러다가도 서브 직전 숨죽이는 찰나, 네 선수의 눈빛이 가장 날카롭게 빛난다. 지금은 짧게는 10월 말에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길게는 2024 파리 패럴림픽을 향해 숨을 고르며 선수들이 가장 날카롭게 벼려지는 시기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휠체어 배드민턴 선수단은 고용노동부 산하 최초의 휠체어 배드민턴팀으로 지난 4월에 창단식을 거행했다. 총 4명의 선수로 구성된 선수단은 창단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바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등급별 1위를 차지한 선수들이 영입된 팀이기 때문이다. 여자 단식 1위를 각각 거머쥔 권현아, 정겨울 선수와 남자 단식 1위의 유수영 선수, 이들이 있기에 미래 휠체어 배드민턴계의 주도권을 거머쥘 날이 머지않았다고 심재열 감독은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평균 연령대 20대 초반으로 구성되어 내일이 기대되는 선수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에요. 게다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선수로서 안정된 일과 삶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롯이 배드민턴에 정진할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이 마련된 것 같습니다.”
권현아 선수, 유수영 선수, 정겨울 선수는 지역은 다르지만 대한장애인체육회 ‘신인 선수 육성 사업’을 통해 4년 전부터 함께한 사이다. 심재열 감독이 휠체어 배드민턴 전임지도자 자리에 있으면서 운영했던 신인 육성 사업에 세 선수가 함께했고, 진기범 선수는 신인선수 선발을 통해 합류했다. 손발을 맞춰온 사이에다가 개인 기량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의 선수들은 올해 거침없이 국제대회 도장 깨기를 해나가는 중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휠체어 배드민턴 선수들
휠체어 배드민턴의 매력과 묘미
장애인 배드민턴은 일반 배드민턴과는 다른 룰이 적용된다. 큰 구분으로는 ‘휠체어 배드민턴’, ‘스탠딩 배드민턴’, ‘좌식 배드민턴’으로 나뉜다. 장애유형과 정도에 따라 출전할 수 있는 종목이 결정되는데 선수단은 모두 휠체어 배드민턴 종목 선수로 구성되어 있다.
휠체어 부문 안에서도 WH1, WH2 두 등급으로 나눠 경기가 치러진다. WH1은 양하지 완전 마비, 뚜렷한 강직 등 장애가 심한 휠체어 선수들, WH2는 한쪽 혹은 양하지 마비, 심각한 강직 등의 비교적 경한 휠체어 선수들이 출전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휠체어 배드민턴 선수단은 성별, 등급, 레벨이 다양한 4명의 선수로 구성되어 경쟁력 부분에서도 한걸음 더 나아간 상태다. 권현아 선수와 진기범 선수가 WH1 등급이고 유수영 선수와 정겨울 선수가 WH2 등급으로 각 등급에 맞게 남자 혹은 여자 복식, 혼합 복식으로 구성해서 대회를 나가고 있다.
개별의 기량도 남다르지만 복식조에서의 기량은 배가 된다. 날렵함과 유연성을 두루 갖춘 유수영 선수, 독보적인 파워를 가진 권현아 선수, 섬세한 플레이를 펼치는 정겨울 선수, 미래가 유망한 왼손잡이 진기범 선수의 영입은 심재열 감독의 큰 그림에서 결정됐다.
“각 선수의 장점이 뚜렷한 팀이에요. 반면에 보완해야 할 단점도 뚜렷해, 그걸 극복하고 정리해 나가는 게 저희에게 주어진 과제죠. 이 선수들이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파리 패럴림픽까지
올해 창단했지만 선수단에게 가장 바쁘고 긴장되는 해가 올해다. 내년에 있을 2024 파리 패럴림픽 출전 자격 획득을 위한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때문. 올해 1월부터 내년 3월까지 파리 패럴림픽 출전 포인트 획득을 위한 대회들이 준비되어 있다. 이미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휠체어 배드민턴 선수단은 2월부터 6개의 국제대회에 나가 모두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지난 경기들에 아쉬움이 많다. 은메달과 동메달은 모두 목에 걸고 돌아왔지만 금메달은 아직 거머쥐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재열 감독은 선수들이 느끼는 아쉬움에 공감한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분명 쉽게 얻은 결과는 아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대회를 끝내고 돌아와 풀에 죽어 있지 않고 매 경기를 복기하곤 합니다. 각 경기에서 선수가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넘어섰다면 이를 교훈 삼아 바로 훈련으로 보강해요. 이 경험들이 쌓이면 금메달에 가닿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선수들의 일상은 훈련 후 대회 출전,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훈련하는 생활이 루틴처럼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이틀 전인 8월 중순, 영국에서 귀국한 선수들의 일상은 10월 말에 열릴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향한 훈련으로 점철된다. 지칠 법도 하지만 모두 같은 목표를 품고 있기에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동의 목표는 바로 파리 패럴림픽 금메달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좋은 팀을 창단해 주신 만큼, 또 성원해 주시는 장애인분들에게, 국민들에게 힘이 되는 결과를 가져다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선수들 개개인을 위해서도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휠체어 배드민턴 선배이자 팀의 감독으로서 잘 지도하겠습니다.”
파리 패럴림픽으로 가는 또 하나의 티켓인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위해 10월 16일 출국하는 선수단. 그들이 흘린 값진 땀이 당장의 금빛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휠체어 배드민턴계의 중심을 잡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열렬히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일이 아닐까.
“큰언니, 큰누나로서 중심 잡아야죠.”
권현아 선수
16년도에 정립회관에 갔다가 만난 심재열 감독님 덕분에 오늘날까지 휠체어 배드민턴을 하고 있습니다. 전공을 살려서 디자인 일을 했었는데 휠체어 배드민턴 선수로 전향하면서 ‘나는 이걸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았습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소속된 만큼, 장애인분들을 대표한다는 사명감도 왠지 가지게 됩니다. 스스로를 뛰어넘는 노력으로 올해도 내년도 좋은 성과를 보이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승부욕은 저의 원동력이자 힘이에요.”
유수영 선수
경기에 지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승부욕이 강한 편입니다. 저의 가장 큰 원동력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껏 치열하고 우직하게 걸어왔는데 올해와 내년, 이 모든 수고와 노력의 결과가 꽃필 수 있는 시기라 열렬히 달려 나가는 중입니다. 일단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좋은 성과를 얻고, 내년 파리 패럴림픽에 나가서 제 이름과 대한민국,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요. 무조건 열심히 할 겁니다.
“배드민턴에 올인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아요.”
정겨울 선수
초등학생 때 장애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부모님은 제게 공부를 시키려고 하셨어요. 전 좀 활동적인 사람이라 휠체어 배드민턴에 정진하게 되면서 선수가 되었고요. 지금은 기량도 펼치고, 선수로서 경제활동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나갑니다. 아직 저희를 모르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입상을 꼭 해서 돌아오고 싶어요.
“끈기 있게 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진기범 선수
장애를 갖기 전엔 합기도를 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휠체어 배드민턴을 접했고, 본격적으로 2022년 1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제 모든 걸 쏟아부을 대상이 배드민턴이라 좋고, 코트 안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가장 경력이 짧은 만큼 팀 선수들에게 많은 걸 보고 배우고 있어요. 저는 5년 뒤 아시안 게임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그때까지 우리 팀 이름에 걸맞은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