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함께하다
KEAD 툰
함께 일하는 세상을 위한 장애 유형별 에티켓 – 정신장애 편
그림 권도연 글 편집부
대형버스 안, 현수가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이때 단발머리를 한 여자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 여러분! 이제 곧 복지관 도착입니다.
고속도로 위, 달리는 버스가 보이고 힘찬 목소리로 말하는 팀장. 오늘 봉사활동으로 좋은 일 하러 가는 거죠. 끝까지 좋은 마음으로 임해주고 보람도 얻어갑시다! 팀장의 말에 “네!”, “알겠습니다.” 직원들이 힘차게 대답한다. 현수도 넵, 알겠습니다! 하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00시 종합복지관 앞, 팀장이 서류를 들고 서서 봉사활동 역할을 분담하는 중이다. 그 앞에는 30대 초반의 안경을 쓴 조현민 대리와 현수가 연두색 봉사활동용 조끼를 입고 서 있다. 팀장이 현수와 조 대리를 번갈아보며 말한다. 경영기획팀 조현민 대리와 홍보팀 현수 씨는 복지관 층별 계단과 남자 화장실 청소 맡아주세요. 현수는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표정으로 속엣말을 한다. 이런, 조 대리님이랑 파트너구나.
복지관 계단 아래, 빗자루를 들고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 대리와 대걸레를 잡고 서 있는 현수. 그가 조 대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저기요, 대리님. 먼저 계단 맨 위층부터 쓸고 내려오시면 제가 뒤따라서 걸레질하겠습니다.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조 대리. 하, 그러시죠.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웬 봉사활동인지, 에휴….
조 대리가 빗자루를 들고 계단으로 터덜터덜 올라간다. 그의 무기력한 뒷모습을 보고 당황하는 현수. 작게 한숨을 쉬며 마음속으로 말한다. 유 대리님 말이 사실이었네. 되게 우울하시다.
이어 조금 전 00시 복지관 앞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현수.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유 대리가 현수에게 귀띔해준다. 현수 씨, 오늘 고생 좀 하겠다. 조현민 대리가 예전에 안 그랬는데, 요즘 감정 기복이 엄청 심하거든요. 현수가 궁금한 표정으로 왜요? 하고 묻는다. 유 대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한다. 글쎄요, 프라이버시라 못 물어봤어요.
얼마 후, 조 대리를 뒤따라서 걸레질하던 현수가 계단참에서 쪼그려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를 발견한다. 현수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한숨을 쉰다. 하아, 깨울 수도 없고 어쩌지. 빨리 청소 마쳐야 하는데 일단 혼자 하자.
계단 청소를 마친 현수가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 이때 조 대리가 다가와 현수에게 음료를 권하며 밝은 표정을 말한다. 현수 씨, 아깐 미안! 화장실 청소는 내가 진짜 진짜 열심히 할게요. 자, 이거 마셔요~ 현수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네, 감사합니다.
남자 화장실 안, 조 대리가 콧노래를 부르며 대걸레로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다. 그런 조 대리를 보고 현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같은 사람 맞나? 종잡을 수가 없네.
식당 안, 벽면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앵커가 진지한 표정으로 뉴스를 전하고 있다. 요즘 정신건강 문제로 힘들어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 통계에서 자살률 1위를 하고 있어 우려가 큰데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나 우울감을 느낄 때 상담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있습니다.
현수와 조 대리, 팀장과 유 대리, 네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TV 뉴스를 경청하고 있다. 이때 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먼저 말하는데. 흠, 요즘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건 확실해요, 그죠? 팀장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유 대리. 맞아요, 요즘 조현병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유 대리의 말에 현수는 마주 앉아 있는 조 대리의 눈치를 슬며시 보며 그러게요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오고 가는 대화 중에 유난히 말이 없는 조 대리.
잠시 침묵하던 조 대리가 유 대리를 보며 차분한 어조로 말한다. 유 대리님, 정신분열증은 이제 쓰지 않는 말에게요. 인격이나 정신이 분열됐다는 무서운 인식을 줘서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라는 뜻의 조현병으로 한참 전에 바뀌었어요. 조 대리의 설명에 조금 무안해진 유 대리는 아… 네…하고 작게 대답한다. 왠지 가라앉는 공기를 캐치하며, 재빠르게 분위기를 바꾸려는 여자 팀장. 아아, 그렇군요. 몰랐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조 대리. 일단, 우리 같이 달달한 거 먹고 기분전환 어때요? 내가 쏠게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현수 옆자리에 앉은 조 대리가 그에게 말을 건다. 현수 씨, 오전에 계단 청소할 때 고마웠어요. 내가 양극성 정동장애 약을 먹으면 말도 못 하게 졸리거든요. 감정 기복도 심하고요. 사실 작년에 가까운 분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최근에는 장애 등록까지 했고요. 솔직한 얘기에 조금 놀란 표정이 되는 현수. 아, 그런 큰일이…. 오해 안 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얼른 호전되시길 바라요라며 그를 응원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런 현수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조 대리.
조 대리는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동안 휴식 시간을 많이 배려해 주고, 치료를 위한 근무 시간을 조정해 줘서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또 회사에서 내년부터는 직원의 정신건강을 위해 정신건강 사회복지사님을 배치한다고 하니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아보려고요. 조 대리의 이야기를 들은 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 잘됐네요~
며칠 후, 점심시간 회사복도에서 조 대리를 마주친 현수. 대리님, 식사하셨어요? 날씨도 좋은데 저랑 잠깐 산책하실래요? 어제 축구 경기 보셨어요? 선수 누구 좋아하세요? 현수의 폭풍 질문에 조 대리가 환하게 웃는다. 현수 씨, 질문 요정이구나? 하나씩 물어봐요, 하하. 밝은 표정의 조 대리를 보며 속마음으로 생각하는 현수. 그래, 마음의 병은 누구나 찾아올 수 있으니까, 그때 곁에서 혼자가 아니란 걸 알려주고 살펴주는 마음이 중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