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제안이나 바느질이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고용컨설팅부 대기업전담팀 이기송 팀장, 박보영 과장, 신성식 과장
가죽에 가이드라인 선을 긋고, 선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는다. 구멍과 구멍 사이를 바늘이 통과하며 모두를 엮고 잇는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일이 장애인과 대기업 사이를 오가면서 유대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여기며, 서툰 바느질 솜씨로 명함 지갑을 진득하게 만든 한 팀의 이야기를 담았다. 때로는 점으로, 때로는 선으로, 때로는 면이 되어 큰 그림을 그리고 설득하고 끝내 벽을 허무는 그들의 업무와 닮고, 닿아 있는 ‘중꺾마’의 시간이었다.
글 편집부 사진 김덕창
저희가 또 시작하면 제대로 하거든요
고용컨설팅부 대기업전담팀의 이기송 팀장, 박보영 과장, 신성식 과장은 미리 재단된 명함지갑 도안을 각자 만지작거린다. 이 팀장과 박 과장은 밝은 카키색의 틸그린 색상의 가죽을, 신 과장은 무게감 있는 에토프 색상의 가죽을 미리 골라놓은 터였다. “조금 있다가 각자 명함지갑이 될 가죽에 바느질을 할 거예요. 먼저 가장자리 부분에서 2mm 안쪽에 바느질 가이드라인이 될 선을 그려볼게요.” 공방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사람은 짐짓 놀란 눈치였다.
“바느질을 해야 한다고요?”
두려움과 얼떨떨함이 서린 눈빛들이 오갔다. 선 위에 포크처럼 생긴 그리프를 대고 바느질 구멍을 10개씩 뚫으면서도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눈치들이었다. ‘나는 재봉틀이 있는 줄 알았지’, ‘오늘 안에 우리 집에 갈 수 있을까’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여러 색의 실 중에서 가죽과 어울리는 색을 골라 자리로 돌아왔다. 이 팀장은 틸그린과 어울리는 쨍한 라임색 실을, 박 과장은 그보다는 연한 녹색을, 신 과장은 에토프와 어울리는 밝은 실을 골랐다. 실에 왁스를 먹이고 양쪽 끝에 바늘을 하나씩 달아 새들스티치 할 준비를 완료했다. 마치 대업을 앞에 둔 사람들처럼 크게 숨을 쉬고 각자 집도를 시작했다. 당혹감에 머리를 긁적이던 손을 부지런히 놀리기까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희가 또 시작하면 제대로 하거든요.”
뭐든 제대로 하는 팀인 대기업전담팀은 올해 2월에 조직된 신생팀이다. 23년 근속의 베테랑 이기송 팀장을 필두로, 공단의 핵인싸 박보영 과장, 제너럴리스트인 신성식 과장이 든든한 양 날개가 되었다. 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기업’을 전담으로 장애인 일자리를 컨설팅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 업무다. 이 팀장은 팀이 조직된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시작했다.
“장애인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자립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고, 그 일자리가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기업을 지원하는 것, 저는 이게 공단이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특히, 대기업전담팀은 장애인근로자를 위한 대기업 중심의 좋은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확대하고, 대기업이 장애인고용을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경영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만들어 진 것이죠. 물론, 기존에 지역본부와 지사에서 수행하시던 내용들이지만, 조금 더 몰입해서 사업을 추진해보라고 만들어 진 거라 생각합니다.”
기업을 공략하듯이 한 땀 한 땀 정진!
바느질 시간은 전체 공예 작업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지구력을 요하는 작업. 구멍에 두 개의 바늘을 교차시키며 내구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엔 바늘구멍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얼굴을 했던 세 사람은 어느새 “나 어쩌면 바느질에 소질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며 점차 속도를 올렸다. 한 땀 한 땀 기업을 공략하던 사람들답게 바느질하는 손놀림도 눈빛도 날카롭고 뚝심이 엿보였다. 바느질에 공들이는 시간, 자연스레 최근에 공들여 보람을 느꼈던 업무들에 대해서 썰이 풀린다. 박보영 과장은 1년간의 컨설팅 끝에 게임회사에 발달장애인 첼로 앙상블 연주단을 창단한 사례를 예로 들며 아침마다 하는 생각에 대해서 말했다.
“‘내가 일하는 한 시간이 온전히 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거라면 이건 사명이다’라고 생각하거든요. 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게 가끔 아득한 일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리고 막막한 마음이 들 때가 있지만 제가 들인 시간이 결국엔 스스로나 장애인분들에게 보상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이기송 팀장은 보험업 최초로 장애인 3.1% 의무고용을 달성한 기업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업체 담당자와 끈끈한 파트너쉽으로 1년만에 이룬 성과이고, 무엇보다 바리스타와 사서보조 등의 직무로 취업된 장애인들이 좋은 근무조건에서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 63빌딩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장애인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의 인기가 아주 높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제가 다 뿌듯한 마음이에요.”
신성식 과장은 철옹성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힘든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단순히 연결할 수 있는 직무가 없거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 부족, 경영진 의지 부족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만들 건 만들고 깰 건 깰 수 있어요. 씨앗을 뿌리면 언젠가는 거둬들일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오히려 막막할 때는 법의 제약 때문에 대기업도 저희도 길을 잃을 때예요. 올해 제6차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기본계획으로 그 부분이 많이 완화될 것 같아 업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시선은 바늘 끝에 가 있지만 세 사람이 같이 주억거리는 고갯짓에서 업무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점과 점을 잇는 선, 선 위에 바느질하는 손들, 그리고 바느질이 이은 면들이 결국은 입체적인 명함지갑으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세 사람은 묘하게 업무와 닿아 있는 부분들을 포착해낸다.
틸그린, 에토프 색상으로 완성된 세 사람의 명함 카드지갑
장애인고용에 길 잃은 대기업, 우리에게 오라!
“다했다!!!” 박 과장이 제일 먼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뒤로 이 팀장과 신 과장이 순서대로 바느질 결승 지점을 통과한다. 여러 면을 붙여 만든 가죽지갑의 외곽 부분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엣지코트를 바르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바느질에 비할 바가 못 된다며 다음 작업을 수월히 해낸 세 사람. 베이스 코트가 마르는 시간 동안 신 과장이 진리의 말을 내뱉는다.
“우린 여기에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어요. ‘모든 일엔 끝이 있다. 하하’”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는 세 사람은 완성된 명함지갑을 손 위에 두고 감상 시간을 가졌다. “아 그럼 우리 인터뷰의 타이틀은 이렇게 올라가는 건가요? ‘장애인 고용에 길 잃은 대기업, 우리에게 오라!’” 이 팀장이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한 마디 하자, ‘우리 팀장님 감성 터지셨네’ 하는 팀원들의 개구진 감상이 이어진다. 투덜투덜하다가도 몰입하면 제대로 해내는 사람들. 호락호락하지 않을 대기업 인사팀을 상대로 진심의 제안을 건네는 사람들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만도 50개의 대기업에 컨설팅을 제안하는 대기업전담팀. 그들이 뿌린 씨앗이 든든한 미래를 만들 것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타성에 쉬이 젖지 않고 업무에 열정적인 이 팀장과 뛰어난 감각으로 반짝이는 기획을 제안하는 박 과장, 높은 감수성으로 공감력을 이끌어내는 섬세한 신 과장의 조합은 그야말로 완벽하니까.
“기업에 다가갔던 한걸음과 비슷했던 바느질이었어요.”
이기송 팀장
올해로 23년 차 직장인이지만 제겐 ‘엄마’라는 타이틀도 있잖아요. 딸과도 이런 시간을 마련해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함지갑이나 가죽가방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을 때, 손잡고 와서 취향에 맞게 골라 만들면 좋겠다, 하면서요. ‘세상에 쉬운 일 없지?’라고 말해주기도 하고요(웃음). 앞으로 우리 팀이 열정을 유지하면서도 정도를 잃지 않고 정확한 길을 가는 팀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단 식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의 시간은 오롯이 아내를 위해서 썼어요.”
박보영 과장
사실 아내에게 선물할 명함지갑이었어요. 가죽색도 아내가 골라준 거거든요. 잘 만들어 오라고(웃음). 그래서인지 바느질이 잘못되면 다시 풀어서 돌아가고, 돌아가고를 반복했던 것 같아요. 제가 들인 시간이 오롯이 보이는 명함지갑이라 아내가 들고 다니면 엄청 뿌듯할 것 같습니다. 가죽 공예가 저희가 대기업에 다가갔던 한 걸음 한 걸음과 많이 닮아 있더라고요. 힘든 제안이 있을 때마다 이 바느질을 생각해야겠어요. 언젠간 결실을 맺을 거니까! 라고요.
“포기하지 않은 나를 기억하고 싶어요.”
신성식 과장
솔직히 바느질이 쉽지 않아서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는데 결국 완주했습니다. 업무에서도 선호하는 업무가 있는 반면 어렵게 느껴지는 업무들이 있는데 결국엔 끝이 있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실을 맺겠구나’라는 생각을 오늘의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여러분도 저희팀을 통해서 지사에서도 만나기 어렵거나 추진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면 시도해 보시길 바라요. 최대한 많은 도움 드리고 고민하시는 부분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