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장애인고용 의무고용제도를 선도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독일을 더욱 주목하는 이유
현대사회에서 장애인고용 정책의 꽃은 단연코 ‘의무고용제도(Quota System)’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1919년 독일에서 처음 제정되어 현재까지 105년이라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부터 의무고용제도의 본고장, 독일의 장애인고용 역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글. 이정주 누림센터 센터장
독일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의 독특한 성장 배경
1914년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1918년에 패전을 선언했다. 이듬해 독일은 부상으로 장애를 가진 패전국 패잔병의 생계를 위해 의무고용제도를 고안했다. 이는 보훈적 일자리 대책으로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독일의 장애 판정은 ‘원호청(국가보훈처, Versorgungsamt)’에서 담당하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줄곧 16인 이상의 사업체에 중증장애인의 의무고용을 적용해오다, 2001년이 되어서야 상시근로자 20인 이상 사업체로 대상을 소폭 축소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강한 장애인고용 효과를 담보하고 있다. 의무고용 기준은 사업체 규모에 따라 다르다. 상시근로자 20인 이상부터 40인 미만 사업장은 1명, 40인 이상부터 60인 미만 사업장은 2명을 고용해야 한다. 60인 이상부터는 민간기관 5%, 연방정부 기관은 6%이다. 2021년 현재 독일의 민간기관 장애인고용률은 의무율 5%에 못 미치지만, 평균 4.1%이며 연방정부 기관은 의무율 6%를 넘어선 상태다.
의무고용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조정부담금(Ausgleichsabgabe)’을 내야 한다. 상시근로자가 60인 이상 고용된 사업체가 장애인을 3%~5% 사이에서 고용했다면 사업주는 부족한 인원 1인당 월 125유로(17만 원)를, 2%~3% 사이에서 고용했다면 월 220유로(32만 원)를 납부해야 한다. 2%도 채우지 못한 사업체는 더 많은 금액을 내야 하는 것이다. 올해까지는 월 320유로(46만 원)이고, 2024년부터 760유로(1백 5만 원)를 납부해야 하므로 대폭 상향했다. 이렇게 징수되는 연간 조정부담금은 약 7억 유로(원화 1조)에 가까운 금액이다. 꽤 세세한 징수체계를 갖춰서인지 독일의 중증장애인 고용성과는 적지 않다.
중증장애인 고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
독일은 무엇보다 중증장애인의 고용률이 높다. 의무고용제도 취지가 중증장애인1)을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독일의 중증장애인 고용률은 다른 국가의 중증장애인 고용률에 비해 훨씬 높다. 독일의 중증장애인 고용률은 53.3%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증·경증을 포함한 전체 장애인 고용률은 34.6%이다. 단순하게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독일의 중증장애인 고용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연코 정부 지원으로 운영하는 장애인고용사업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전역에 우리나라의 표준사업장과 유사한 통합회사 919개 사에서 중증장애인 약 1만 3천여 명이 일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직업재활시설과 유사한 ‘장애인 작업장(WfbM:Warkstatt fur behinderte Menschen)’, 688개 회사에 있는 2,764개 사업장에서 약 31만 7천여 명의 중증장애인이 일한다.2) 이 중 2만 6천여 명은 보호 고용영역에 있는 훈련생이다.
1) 독일의 ‘중증장애인’의 정의는 사회법전 제9권 제2조에 따라 장애 정도(GdB)가 50 이상의 장애인을 말한다. 장애 정도의 판단은 2009년부터 시행된 연방원호법의 시행령에 따라 이뤄진다. 장애의 존부 및 정도는 당사자의 신청으로 원호청(국가보훈처, Versorgungsamt)에서 확정한다. 수치로 명시된 장애 정도는 20 이상부터 장애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며, 10에서 100까지 10단위로 판단이 이루어진다.
2) 독일의 ‘장애인작업장’ https://www.bagwfbm.de/publications ☜ (클릭해보세요)
그리고 또 다른 성과는 중증장애인 고용을 성공시키기 위해 중증장애인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에 진심이라는 것이다. ‘직업훈련 없는 장애인고용은 없다’라고 할 만큼 장애인고용을 위해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장애, 비장애를 떠나 독일의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이 직업기술을 배우는 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직업교육에 관한 한 독일은 가히 세계 최고이다. 우리나라 고도의 산업화를 이끈 직업훈련기관 역시 독일에서 그대로 배워온 제도인 것만 봐도 독일이 얼마나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을 열심히 교육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독일의 중증장애인 고용은 ‘일과 훈련 병행 프로그램’을 선호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도 고용에 이르지 못하면 보호 고용(최저임금 적용제외)에 머물도록 한다. 물론 직무역량이 높아진다면 장애인작업장 또는 일반사업장으로 전이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독일 남부 ‘게셔(Gescher)’에 있는 ‘하우스 할(House hall)’ 장애인공동체에 무려 1천 5백 여명의 장애인이 훈련과 고용을 병행하며 독일의 장애인고용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일 정부의 꾸준한 노력과 새로운 고민거리
2018년, 독일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보완 독립적 참여 상담센터(EUTB)’를 500여 개소 설치했다. 이곳에서는 장애인과 가족에게 직업재활, 의료재활, 직장생활 지원 등 구체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전국 50개 지역에 있는 ‘직업훈련원(Berufsbildungswerk)’ 250개 소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해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로 이어가며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훈련하는 발달장애인 청소년과 청년은 1천 5백여 명에 달한다. 이렇듯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며 개정을 거듭해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는 자폐성 장애인을 위해 연방자폐증협회(Autismus Deutschland e.v)와 협력하여 전국 30개소에 자폐성 장애인 직업훈련원을 별도로 설치했다. 2019년부터는 연방자폐증협회에서 ‘자폐성 장애인 친화적 직업훈련원’ 인증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직업훈련원 11개소가 운영 중이다. 이처럼 독일은 강력한 의무고용제도 기반 위에 장애인고용 환경에 적극 대응하며 끊임없이 장애인고용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자타공인 장애인고용 선진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100년 전통을 가진 세계 최고 장애인고용정책 선진 국가, 독일이 위기에 빠졌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며 장애인고용의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한 이는 독일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2016년, 그는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Davos)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이미 독일은 제조업 기술 강국 탈산업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정보기술, 인공지능, 로봇공학, 바이오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혁신과 융합이 대세가 되어 기존의 산업과 경제 구조, 사회적 관습 등이 크게 변화할 것3)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2011년 독일은 ‘산업 4.0(Industrie 4.0)’이라는 개념을 설정해 산업영역을 발전시켰다. 이어 ‘노동 4.0(Arbeit 4.0)’을 통해 변화될 노동시장을 대비해왔다.
3) 클라우스 슈밥의 저서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에서 이 개념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장애인고용 해결책을 찾아서
현재 독일의 산업은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담당하는 연방교육연구부(BMBF)와 실무적인 측면에서 시범단지를 운영했다. 이어서 관련 기업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연방경제에너지부(BMWi)를 두 축으로, 4차 산업혁명에 산업적 영역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산업 4.0 프로젝트 어디에도 4차 산업혁명과 장애인고용, 직업교육, 직업훈련에 대한 정책적 관점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문제는 연방노동사회부(BMAS)가 주관하고 있는 노동 4.0에도 장애인고용, 직업교육, 직업훈련과 관련된 정책이 언급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 내 많은 장애인고용 관련 전문가들이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장애인에게 기회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환경을 조성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노동 4.0에 담아야 한다는 요구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장애인고용이 감소, 축소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함께 내놓고 있다. 일종의 정부 정책 마스터플랜(BLUE PRINT)이자, 백서(WHITE PAPERS)에 가까운 산업 4.0과 노동 4.0에 장애인고용에 관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즉 정부 주도의 국가경영에 익숙한 독일로서는 매우 위기인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국 상황에서도 장애인고용을 위한 의무고용제도를 고안했다. 탈산업화 사회, 정보 디지털 사회를 넘어가는 4차 산업혁명의 산업적 위기 또한 가장 먼저 간파하고 있다. 얼핏 장애인고용의 위기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자부심 넘치는 선도적 면모를 살려 곧 ‘4차 산업혁명과 장애인고용’이라는 해법도, 새로운 이정표도 역시 이들을 통해 세워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