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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1.5배속으로 보기, 메시지보다 중요한 욕망의 실현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 보는 OTT 서비스는 콘텐츠 이용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용자는 보고 싶은 장면을 선택하고, 더 빨리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재생속도를 높인다. 작품의 미학이나 메시지보다 서사를 중시하고, 욕망 충족을 콘텐츠의 미덕으로 여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에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그 경향과 어긋났기 때문 아니었을까.

편집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출연진 단체 모습
2022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 / 사진.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에 분노한 사람들

<재벌집 막내아들>은 2022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다. 재벌 일가에 충성하다가 배신당해 살해된 주인공 윤현우가 재벌가 막내 진도준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사는 내용을 그렸다. 윤현우의 기억을 그대로 가진 진도준은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기에 계속 투자에 성공하며 그룹 내 자기 지분을 늘린다.
드라마는 시청자가 익히 아는 역사적 사건들을 마치 <응답하라 1997> 시리즈처럼 적재적소에 선보이며 재미를 선사했다. 탐욕스러운 재벌가 자녀들이 그룹 총수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지만, 그들이 당연히 가졌다고 여기는 것을 주인공이 하나하나 빼앗는 과정도 통쾌했다. 이제 주인공이 그룹 지주회사의 최대 지분을 차지하고 회장에 등극하는 클라이맥스만 남았는데, 드라마는 다른 결말을 선택했다. 허무하다는 소감이 쏟아졌고, 많은 사람이 화를 냈다.
실망하는 사람들은 결말의 개연성을 지적했다. 드라마는 전개되는 내내 여러 허점을 노출했는데 부족한 개연성이 마지막에 극대화됐다는 지적이었다. 개연성이 부족한 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주인공 윤현우가 과거에 죄를 지었고 결국 그룹 회장이 되지 못한 채 죄를 참회한다는 마무리는 주인공의 성공을 응원하던 시청자들에게 배신감을 안겼다.

부의 선망이 ‘사이다’로 포장될 때

마지막회의 갑작스러운 반전은 자연스럽지도 않았고 시청자가 기대한 사이다를 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시청자가 기대한 결말이 정의에 부합하는지는 좀 더 따져 볼 문제다. 주인공은 재벌가의 탐욕에 희생된 피해자였고, 피해자가 복수를 꿈꾸는 것은 정당하게 여겨졌다. 주인공의 복수라는 서사에 집중하면 주인공이 그룹을 차지하는 것은 정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영혼이 서민 출신 피해자라는 점을 배제하고 보면, 그 역시 재벌가의 일원이다. 기업 경영 능력을 입증한 적 없이 물려받은 종잣돈을 늘려 부를 형성한 똑똑한 인물일 뿐이다.
드라마는 재벌가가 부의 상속을 넘어 경영권까지 세습하는 것이 정당하냐고 질문했지만, 스쳐 지나간 장면 중 하나일 뿐이었다.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담아내지 못한 드라마의 완성도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해서 시청자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의무가 없는 것일까.
드라마를 1.5배속으로 보면 감상의 초점이 달라진다. 영상미나 음악은 스쳐 지나가고 장면이나 대사 사이 행간을 읽을 시간이 없어진다. 시청자는 의미를 곱씹기보다 빠른 이야기 전개와 사이다 결말을 기다리게 된다. 모든 시청자가 드라마를 1.5배속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은 드라마의 메시지나 미학보다 빠른 전개와 욕망 충족이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빠른 전개와 사이다는 이제 작품의 흥행을 위한 필수 요소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 요소를 활용해 인기를 얻었고, 이 드라마의 시청자가 원한 사이다는 주인공이 완벽하게 부와 지위를 얻는 것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부의 선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미디어는 그 적나라한 욕망을 ‘쿨’하다고 포장한다. <재벌집 막내아들>도 그 욕망을 자극했지만, 그 모든 것이 정당하냐고 질문하며 마지막 욕망 실현을 거부했다. 결말의 어설픈 반전에 화가 나면서도 마냥 화만 내기는 머뭇거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