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는 여자라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바꾸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글 박혜정(지체장애)
불행을 희망으로 바꾸는 마음가짐
감사할 줄 모르던 내가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된 건 사고 후부터였다. 꿈 많은 여고 시절의 어느 날 아침, 등교하던 중 건물 6층에서 180kg의 커다란 간판이 나를 덮쳤다. 이 사건으로 척추 신경이 다친 나는 지금까지 겨드랑이 아래로 몸의 삼분의 이가 마비된 채 휠체어를 타는 중증 장애인이 되었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해서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세상에 대한 원망밖에 들지 않았다.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에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 몸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가던 어느 날,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셨다. 나를 끔찍이 예뻐해 주시던 할아버지는 내게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엄청난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겪더라도 어쨌든 살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마음가짐을 바꾸니 삶의 좋은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각이 없어서 대소변을 실수하고 아예 일어설 수조차 없었지만, 내게 남겨진 더 좋은 것들이 있었다. 계속 불화가 있었던 부모님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딸을 위해 두 분이 마음을 모으기 시작했고 어느새 사이가 좋아지셨다. 또 한때 부모님의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때때로 힘들었던 나였지만, 사고 후에는 나의 건강과 행복만을 바라시는 부모님과의 관계도 편해졌다. 그리고 나 역시 부모님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의 조건에서 행복해지는 법
그렇게 마음을 점점 회복하며 마음가짐이 바뀌니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미소도 자주 짓게 되었다. 아파트 현관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모두 휠체어를 타고도 마음이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주었다. 사람들이 그리 생각해주니 왠지 힘이 났고 뭐든 더 열심히 하게 됐다. 그렇게 20개국을 여행할 용기도 낼 수 있었다. 그 후 따뜻한 사람을 만나 사랑스러운 두 딸도 얻었다. 딸들도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불편한 엄마가 많은 걸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다른 애들보다 많은 일을 스스로 해냈다. 이 역시 딸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사고 후 지난 29년의 세월을 짧은 글에 다 담을 수 없지만, 마음을 바꿔 감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삶은 진정으로 행복한 일들이 펼쳐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제는 휠체어를 타는 좋은 점 정도는 수없이 나열할 수 있다. 어딜 가나 의자가 필요 없고, 비행기도 대부분 앞좌석에 먼저 태워준다. 연극, 공연 등의 관람이나 강의를 들으러 가도 우선 입장이나 따로 안내를 해주고, 여러 장애인 복지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기에 유튜브 채널도 좀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또한, 휠체어에 앉아 낮은 시선으로 모든 걸 바라볼 수 있어 겸손함도 배울 수 있었다.
올해 초, 정수기의 뜨거운 물이 허벅지 위에 쏟아져 2~3도나 되는 화상을 입었다. 마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심하게 화상을 입을 일이 아니었다. 나의 부주의를 후회하고 내 몸 상태가 억울해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곰곰이 생각하니 뒷면엔 역시나 좋은 면이 있었다.
감각이 없으니 수술을 해도 치료를 해도 생활을 하면서 전혀 아프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장점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제는 잘 아물어서 방수 테이프를 일일이 붙여가며 샤워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도 새삼 감사하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몸뚱이에 감사한다. 또 휠체어 타는 내가 좋다. 내 삶의 모든 것은 감사할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