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복지 예산 삭감에도 장애인고용 유지하는 이유
사회적기업 ‘삼할AB’, 장애인 일자리를 지키다
스웨덴은 21세기 최고 복지국가로 세계에서 찬양받아왔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라는 ‘국민의 집(Folkhemmet)’ 이념과 ‘요람에서 무덤(from cradle to grave)’까지 국가 책임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웨덴도 신자유주의 도래와 위기를 쉽게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치 급변으로 복지국가 명성에 흠집이 생기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세히 알아본다.
글. 이정주 누림센터 센터장
스웨덴 정부, 복지 예산을 줄이는 이유
탈산업화로 예전 같지 않은 경제성장, 급속히 유입된 이민자들에게 투입되는 복지비용으로 자국민, 특히 노인들은 복지가 축소될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이러한 위기의 구조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1932년 이후 페르 알반 한손, 타게 엘란데르, 올로프 팔메로 이어지는 사민당의 황금기, 60년간 줄곧 40% 이상 지지를 받아 왔던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은 지금 20%대로 내려앉아 있다. 한때의 부침인 듯싶어도 2023년 현재 스웨덴 사민당은 녹색당과 연정을 통해 가까스로 정권을 유지할 정도로 위태로운 것도 사실이다. 반면, 이민자 축출과 노령수당의 현실화를 주장하는 극우 민주당(SD)의 의석수가 눈에 띄게 늘어 가며 스웨덴의 정치 지형 변화가 예고 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스웨덴 국민이 전통의 사회민주주의 길을 버리고 우파의 길을 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스웨덴 고유의 전 국민 복지, 국가는 곧 ‘국민의 집’이라는 공동체적 속성을 지켜내기 위하여 현재의 위기를 국민적 연대와 민족적 협력을 기울이는 데 많은 힘을 쓰고 있다.
스웨덴의 장애인고용을 견인하는 법령들
특히 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여전히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오히려 관련 법령을 제정, 개정하며 스웨덴 장애인의 존엄권, 인권, 생존권, 행복권을 충족시키며 사회참여와 활동, 고용과 일자리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LSS(Law of Support and Service for Person with Certain Functional / Lag om stöd och service till vissa funktionshindrade)법’이다. 해석하면 제정된 특정한 기능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지원 서비스에 관한 법이다. LSS법은 1994년 제정되어 개정을 거듭해 오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서비스 지원법’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LSS법 덕분에 스웨덴 장애인은 누구나 필요할 때 다양한 인적, 물적 서비스를 지원받는다. 일상생활은 물론 근로활동과 직업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보면 활동지원사, 근로지원인, 보조기기, 요양보호, 재활치료 서비스 등이 하나의 법률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 역시 개인예산제를 통해 현금으로 지급되고 있어 장애인은 자기결정에 따라 자기에게 주어진 예산 범위 안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구매한다. 무엇보다도 장애인 당사자 입장이 존중되는 스웨덴 복지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스웨덴의 높은 복지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개인예산제 모의적용 방식을 스웨덴 방식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흥미로운 대목이다.
다른 하나의 법은 2008년 제정된 ‘차별법(Discrimination Act)’이다. 스웨덴 장애인고용률은 69%를 구가하고 있다. 스웨덴은 할당 고용방식, 의무 고용제도를 채택하고 있지 않은 국가이다. 그런데도 높은 장애인고용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차별법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장애로 인해 직업적 차별은 있을 수 없다’라는 차별법 법안 3장 1절, ‘차별 예방과 차별 방지의 증진을 위한 적극적 조치의 필요성’, 그에 따른 특별 조치로서 ‘직장 내 차별 금지조항’은 스웨덴 장애인고용을 활발하게 견인하는 강력한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그 외에도 스웨덴의 장애인고용을 견인하는 법들은 다양하다.
정부 산하, 사회적기업 ‘삼할 AB’의 높은 성장세
이렇듯 ‘LSS법’과 ‘차별법’은 비할당고용제를 취하고 있음에도 어느 할당고용제를 택한 국가에 비해 높은 장애인고용률을 유지하는 기폭제이며, 장애인고용의 보편성을 법적으로 지켜내는 발판이 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법률적 토대 위에서 스웨덴의 유명한 장애인고용기업 ‘삼할(Samhall AB)’은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있으며 2015년에는 유럽 최고의 비즈니스 기업상을 획득하였다.
삼할은 1980년 스웨덴 안에 존재하고 있던 다양한 장애인 단체와 사회단체, 그리고 사회적기업, 직업재활시설 보호 고용 영역을 하나로 묶어 설립한 국영기업이다. 정확하게는 스웨덴 고용부 산하의 정부 출자기업이며 공식 명칭은 ‘스웨덴 사회복지 사업단 그룹’이다. 예산은 국가에서 일부 지원하지만, 삼할 자체적인 수익 창출을 통해 경영관리하는 철저한 기업 구조를 택하고 있어, 국가와 민간의 협력형으로 일종의 사회적기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조직과 운영을 위해 기초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고 다양한 워크숍을 통한 교육과 정보제공, 맞춤 직업훈련, 직업소개, 소규모 기업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장애인고용의 지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전국에 700여 개 사업장에서 2만 493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으며, 현재 40여 개 국가의 130개 조직과 국제적으로 연대한 활동과 노하우 제공, 개도국 지원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스웨덴 장애인 인구, 75%가 경제활동 중
모든 기초단체 단위로 활동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학교 교육을 졸업한 후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삼할이다. 삼할에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여론을 보면 84% 정도가 ‘삼할이 없었으면 장애인의 취업이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경제계 지도자들의 89% 정도 역시 삼할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또한, 기업체 대표의 50% 정도는 삼할에서 추천하는 장애인 노동자를 자신의 기업에 채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삼할의 노력 때문인지 스웨덴 통계청은 2019년 스웨덴의 장애인 인구 중 75%가 경제활동을 한다. 2013년부터 이어진 이 조사를 살펴보면 2013년 69%에서 2019년 75%까지 스웨덴에서는 매년 장애인 인구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이 높아져 왔음을 알 수 있고, 66.9%의 장애인고용률을 보고하고 있다. 반면, 의무고용제를 실시하고 있음에도 2022년 현재 경제활동참가율 38.1%와 고용률 36.4% 머무는 우리나라를 비추어 보면 스웨덴을 복지국가의 위기니 사회민주주의 몰락이니 하는 전언은 적어도 장애인고용 현장에 몸담은 우리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상황이라고 여겨진다.
이처럼 스웨덴은 장애인고용의무제도가 아닌 비할당고용제도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의무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보다 확연히 나은 장애인고용 상황을 지켜나가고 있다. 복지국가 위기로 인해 사회복지 지원 구조에 다소 균열이 있어 보이는 스웨덴이지만, 장애인 일자리와 고용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세계의 장애인복지는 연금과 수당 중심의 현금복지를 벗어나 고용과 일자리 중심의 노동시장 참여를 가속하는 방향으로 더욱 빠르게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