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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였다면 좋을까
글. 김헌식 /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드라마 ‘선재업고 튀어’에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주인공이 등장한다. 드라마 속 하반신 마비 장애인의 일상과 현실 속 하반신 마비 장애인은 어떻게 다를지, 한 번 생각해보자.
드라마 ‘선재업고 튀어’는 중도 장애인이 어떻게 대중적인 인기 드라마에 등장할 수 있는지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장애인의 현실을 다뤄주니 작품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도 생각할 수 있어 보였다. 물론 드라마의 설정과 줄거리는 단순하지 않다. 이 때문에 장애인의 현실을 반영하는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왜냐하면, 여주인공 임솔(김혜윤 분)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는지 설명이 없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이 드라마만의 특징이 아니라 요즘 드라마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과거로 이동해 현재를 바꾸는 일이 가능한지 묻지 않는다. 즉 시청자도 임솔처럼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가 다시 비장애인으로 미래를 바꾸는 내용에서 현실 가능성을 제기하지 않고 본다. 아무래도 드라마는 허구의 픽션이기 때문에 메시지나 공감이 중요하다는 점이 우선되기 쉽다. 그런데도 장애인의 모습은 지금 현실에 밀접하기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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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장애인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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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서 장애인의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 장면은 1편에 집중되어 있다.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임솔은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갖는다.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던 임솔은 절망의 나락에 빠져 헤어나올 줄 모른다. 거의 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심지어 마침 유리컵이 깨져 조각이 나자 그것을 집어 손목을 그으려 한다. 하지만 마침 걸려온 전화 한 통화 때문에 마음을 바꾸게 된다. 바로 류선재(변우석 분)의 전화였다. 전직 수영선수였던 류선재는 아이돌 그룹 멤버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었다. 그는 아무에게나 전화해서 인지도 테스트를 수행하게 된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자신들을 아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류선재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고등학교 동급생이자 교통사고를 당해 병상에 누워 있는 임솔이었다. 받지 않으려던 임솔은 옆 병상의 환자가 시끄럽다고 해서 가까스로 받는데 곧 끊으려 한다. 그런데 선물로 운동화를 꼭 주겠다고 하는 진행자의 말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더구나 운동화가 싫으면 실내 바이크를 주려는 말에 더욱 화가 난다. 그래서 드디어 임솔은 폭발하고 만다. “그런 건 다 필요 없다잖아. 내가 필요한 것은 다시 걷는 것인데 그걸 해줄 수 있어요? 장난치니까 재미있어요. 다들 좋겠다 사는 게 재미있어서.” 이제 다리를 다쳐 걸어 다닐 수 없는 사람에게 운동화나 바이크를 선물하겠다고 억지로 강요하며 웃어대는 방송 내용이 임솔의 감정을 자극한 것이다.
임솔은 급기야 비단 자신에게만 해당하지 않는 점을 부각한다. “세상에는요, 날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날이 좋을 때 나들이하러 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만, 지체장애인은 그럴 수 없는 현실은 임솔의 이 표현을 통해서 짐작할 수가 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안 류선재는 이 말을 듣고 있다가 임솔에게 잊을 수 없는 표현을 한다.
“듣고 있어요? 듣고 있죠? 고마워요. 살아있어서 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거예요. 곁에 있는 사람은.” 여기에서 곁에 있는 사람은 임솔의 어머니일 수 있지만, 바로 류선재일 수도 있다. 사실 본인이 너무 괴로워 목숨을 버린다면, 가장 슬퍼하는 이들은 가장 가까운 이들이 될 테니 말이다. 장애를 갖게 되었어도 누군가에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류선재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까 오늘은 살아봐요. 날이 너무 좋으니까요. 내일은 비가 온대요, 그럼 그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또 살아봐요. 그러다 보면 언제인가 사는 게 괜찮아질지 모르잖아요.” 이 말을 듣고 임솔의 마음이 움직였고 때마침 병실에 다시 온 엄마를 본 임솔은 눈물을 터트리며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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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제공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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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임솔은 이동 장애인으로 열심히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특히 열렬한 류선재의 팬이 되어 그의 콘서트 공연에 가게 된다. 하지만, 콘서트 가는 길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드라마 기획사에서 인턴 면접을 갑자기 통보받게 된다. 자신이 꿈에 그리던 직장이었기 때문에 매우 기쁜 마음으로 간다. 하지만 이 기획사의 실내 공간은 계단만 있을 뿐이어서 휠체어가 접근하기 힘들다. 결국, 채용 담당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등 무장애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면접을 아예 취소한다. 장애인의 현실에 좌절한 임솔은 그래도 힘을 내어 다시 콘서트장으로 가는데, 버스를 이용하는 모습은 적절했지만, 장애인 콜택시 등을 이용하는 모습이 있었다면 현실적일 수 있었다. 더구나 류선재와 오래전 약속한 한강 다리에 이동하는 임솔의 모습도 비현실적이었다. 추운 겨울에 눈까지 심하게 내리는데 한강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이러한 점이 간과되었다. 장애인 주인공의 어려움을 부각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장애 서비스를 배제하는 때도 있다. 오히려 장애인 정보제공이라는 점에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친구의 도움으로 한강 다리에서 집으로 이동한다. 만약 이런 친구가 없는 장애인은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지인에게만 의존해야 하는 장애인 복지 현실을 거꾸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콘서트장의 장애인 좌석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필 기회였는데, 정작 임솔이 콘서트장에 들어가지 못해서 이러한 점이 드러나지 못해 아쉬웠다. 영화관에는 장애인 관람석이 있는데 여전히 차별적이거나 많이 불편한 점이 있는데 공연장에는 그러한 점이 없는지 점검할 수 있을 만한 장면이 연출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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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현실 다뤄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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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드라마에는 장애인이 등장하는데 바로 임솔의 할머니다. 인지 장애인인데 다만 재미있는 캐릭터와 에피소드 중심이어서 아쉬움이 있다. 인지장애인이 코믹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점은 장애에 대한 왜곡과 편견을 낳을 수도 있다. 더구나 이 드라마는 청소년들도 매우 즐겨본다는 점에서 주의할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자정에 전자시계의 버튼 누름으로 과거로 돌아가 장애를 만든 교통사고를 막아내는 설정은 분명 황당하다. 장애를 그렇게 되돌릴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력 막는 것은 창작의 자유 침해일 수 있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 장애인의 삶을 1편에서 단편적으로 머물고 만 것은 아쉽다. 장애인은 장애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좀 더 장애인의 현실을 담아주었다면 선재와 임솔의 로맨스는 물론 스토리라인의 짜임새와 공감이 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