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일잘러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이평호 연구원
가능성이라는 날개를 달고
원하는 곳에 닿기까지
글. 조서현
사진. 황지현
-
밤늦게 불 켜진 연구소, 타인의 ‘남모를’ 어려움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한 사람.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에서 장애인과 노인에게 필요한 보조기기를 연구 개발하는 이평호 연구원이다.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기도 한 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의 꿈과 가능성에 대한 ‘무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
0:00 /
<오디오북 듣기>
-
내가 바라던 세상으로 한 걸음
-
-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적막한 집, 가족들이 돌아오는 저녁까지 외로이 TV 앞을 지키고 있어야 했던 한 소년.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중증장애를 진단을 받은 이평호 연구원이 회상하는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탓에 그는 많은 날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여러 꿈이 자라고 있었다. 특히 발명가나 과학자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시간이 훌쩍 지나, 꿈 많던 그 소년은 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보조기기를 만드는 개발자가 되어 어릴 적 그려 왔던 삶을 살고 있다.
현재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에서 장애를 예방, 보완하여 기능을 향상하고 일상생활 편의를 증진하는 보조기기를 연구 개발하고 있는 이평호 연구원. 그 또한 보조기기를 통해 개선된 일상을 몸소 경험한 바 있다. “어릴 적 집에 혼자 있을 때 굉장히 힘든 것이 바로 소변을 참는 거였어요. 소변을 보기 위해 의자에서 한번 내려오면 다시 위로 올라갈 수가 없어서 계속 누워 있어야 하는데, 누워 있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사 오신 진공청소기를 보고 소변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호스와 집에 있는 빈 꿀병을 이용해 아버지에게 일종의 ‘석션’ 장치를 만들어 달라고 했죠.” 그는 이 장치를 사용하고 나서부터 소변을 참지 않아도 공부를 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보는 등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 자신도 어엿한 사회인이 되고자 했던 이평호 연구원은 또다시 보조기구를 통해 희망을 엿보았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고 나서 다른 장애인이 어떻게 사는지 보게 되었어요. 그걸 보고, ‘나도 저렇게 하면 혼자 지낼 수 있겠구나’,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에게 보조기기는 도전하고 쟁취하고자 하는 것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한 날개이자, 자신 저편의 가능성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해 준 징검다리였다. -
-
-
남모를 어려움에 대해 고민하는 개발자
-
당시 그의 이력서에 적힌 것은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 정도가 다였다. 그동안 남들처럼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도, 의미 있는 스펙을 쌓지도 못했기에 어쩌면 당연했다.
이평호 연구원이 가장 먼저 마음먹은 것은 검정고시를 통해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갖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보란 듯이 8~9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 이를 모두 독학으로 해냈다. 그 성취는 대학 진학의 길로 이어졌고 마침내 재활공학 전공 늦깎이 신입생으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
“깔딱고개라고 있잖아요.
어느 정도 산에 올라가다 보면 어려운 구간이 나오는데, 거기서 반 발짝만 떼면 꼭대기에 닿는 데도 그걸 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저는 그걸 잘하는 것 같아요.”
-
졸업 후 중소기업체 연구실에서 제품 디자인 및 시제품 설계를 맡았는데, 그에게는 재활공학 분야에 대한 열망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꾸준히 국립재활원에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도전을 감행한 그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순천향대학교 ‘ICT융합재활공학’ 석사 과정에 올랐다. 그의 나이 40대 중반 무렵의 일이다.
돌고 돌아 비로소 원하는 꿈을 실현한 이평호 연구원은 자신이 하는 일을 여전히 즐거이 여긴다. “저는 재미없으면 안 해요.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일입니다. 또 제가 만들거나 진행한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제가 개발한 기기가 널리 사용되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더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보람도 느껴요.”
허리를 굽혀서 양말을 신을 수 없다는 강직성척수염 환자의 요청을 반영한 양말 신기 기구, 하나 이상의 브래킷 장착 후 다양한 홀더에 물품을 거치해 휠체어 사용자를 돕는 포터블 멀티 거치대, 마비로 섬세한 활동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발로 밟는 손톱깎이 등 모두 이평호 연구원의 노력으로 태어난 보조기기들이다. “보조기기들은 대부분 수입품이거나 비싸거나 잘 안 맞아요. 그래서 쉽게 쓸 수가 없는데요, 저희는 보조기기를 만들고 오픈소스를 열린 페이지에 올립니다. 올려놓은 것 중 제작할 수 있는 것들을 제작합니다.”
그는 특히 1년간 5명의 중증장애인 및 그의 가족들과 함께 연구 개발한 게임 보조기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장애인이 단순히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고. -
-
-
포기하지 않는다면 문은 열린다
-
“주변에 사회생활 하는 전문가 중에서 뇌성마비 장애인을 많이 보셨나요? 아마 흔하진 않을 겁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궁금했어요. 그래서 실험을 해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죠.” 이평호 연구원은 자신이 걸어온 과정을 ‘실험’이라고 칭한다.
이 실험을 위해 그는 공부할 때도, 학교에 갈 때도 비장애인에게 적용되는 기준을 맞춰 왔다. “사실 혼자 공부하거나 커리어를 쌓는 건 쉬울지 몰라도, 직장생활 속에서 인간관계를 맺거나 부가적인 일 처리를 하는 게 어렵거든요. 본인이 어디까지 하고 싶은지에 따라 자신이 투자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의사소통 방법에 대해 배웠어요.”
그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연구소에 출근 후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업무 지시를 수행하고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일과를 반복한다. 근무 시간이 이리 긴 이유는 함께 일하는 비장애인 연구원들과 비교했을 때 업무 속도와 처리량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악착같은’ 면을 살려 부족한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보완하려 한다. “깔딱고개라고 있잖아요. 어느 정도 산에 올라가다 보면 어려운 구간이 나오는데, 거기서 반 발짝만 떼면 꼭대기에 닿는 데도 그걸 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저는 그걸 잘하는 것 같아요.”자신이 무엇을 하든 그 일의 끝에 이루어질 것들을 상상한 그. 최종적으로 완성될 보조기기, 그리고 그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든 과정도 견딜 만하단다.
“저는 51세 중증장애인이에요. 지금 함께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20~30대 직원들이고요. 그래도 이들과 함께 연구하며 일하고 있다는 것은 제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거겠죠.”
멀리 돌아갈지언정 스스로 정한 기준과 타협하지 않고 달려왔던 지난날처럼 그는 여전히 정직하게 노력한다. 끝으로 이평호 연구원은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지금껏 그가 통과해 온 삶에서 얻은 진실이자 앞날의 그를 이끌어갈 단단한 믿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