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여행
신비의 섬 제부도
글, 사진. 전윤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자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다.
전국의 여행지를 다니며 무장애 관광 환경 조성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 등이 있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이 갈라지면서 길이 열리는 기적의 섬, 제부도. 언제든 섬의 고유한 풍경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데, 특히 제부도에서 전곡항을 잇는 서해랑 해상케이블카는 휠체어 사용자도 탑승할 수 있어 누구나 섬의 낭만을 한가득 즐길 수 있다.
-
육로와 하늘길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제부도
-
-
-
거친 파도가 몰아치면 바다에 나갔던 배들도 항구에 정박해 잠시 숨을 돌린다. 섬은 바다가 술렁일 때 배들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바다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이들에게 바다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이다. 바다가 넉넉한 품을 내 줘야 섬도 고립을 면하기 때문이다. 바다에 둘러싸여 완전히 고립된 섬이 순식간에 육지와 연결되는 그 섬에 가고 싶다.
하루에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제부도는 예부터 신비의 섬으로 불렸다. 홍해가 갈라지듯 용왕님이 길을 터 주셔야 그제서 육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억겁의 시간을 바다에 순응하며 살던 섬사람들은 과학의 힘을 빌려 육지에 길을 내고 하늘길도 열었다. 그렇게 상상이 현실이 된 서해랑 해상케이블카. 서해랑 해상케이블카는 제부도와 전곡항을 잇는 하늘길이다. 이제 제부도는 주민도 여행객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됐다. 때마침 바닷길이 열리면 갯벌의 멋진 풍경을 선물한다. 바닷길로 제부도를 들어가려면 물때를 확인하고 오는 것이 좋다. 제부도로 들어가는 육로는 포장이 잘 돼 있어 갈라진 바닷길을 휠체어로 갈 수 있어 상쾌하다. 좌우로 갯벌이 펼쳐져 있고 길 옆 가로등과 차단 봉에는 따개비가 잔뜩 붙어 있다.
-
-
섬을 한 바퀴 돌며 만끽하는 경치
-
제부도 입구에 도착하면 바닷길 통제소를 중심으로 왼쪽은 매바위 길 오른쪽은 제부항 길로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오늘은 시계방향으로 돌아본다. 곳곳에 전기 자전거도 렌트할 수 있어 동행인과 함께 왔다면 전기 자전거를 빌려 전동휠체어 속도에 맞추어 여행하면 좋다. 해안을 따라 섬 한 바퀴는 6km 남짓한 거리로 동행인이 무작정 걷기에는 버거울 수 있다. 해안 산책로는 깔끔하게 정비돼 있어 휠체어 보행에 문제없다. 곳곳에 예쁜 카페와 글램핑장도 눈에 띄고 공영주차장 내 장애인 주차장도 법정 기준에 맞게 정비돼 있다.
제부도 끝 매바위 광장에 도착했다. 매바위 광장은 제부도의 상징 같은 곳으로 트릭아트와 세족대, 알파벳으로 만든 제부도 조형물이 있다. 해안에는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하는 사람도 있다. 매바위는 제부도의 촛대바위로 불리기도 한다. 썰물 때는 매바위까지 걸어갈 수 있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는 바퀴가 모래에 빠지기라도 하면 개미지옥으로 변할 수 있어 참기로 한다.
제부도에는 매바위 근처가 가장 번화해 있다. 식당과 카페가 밀집되어 있고 장애인 화장실과 작은 놀이공원도 있다. 경치는 어찌나 좋은지 바닷속 풍경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해변 곳곳에는 사진 촬영 명소가 다양한 형태로 마련돼 있다. 예술작품인지 의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예쁜 조형물 의자는 사진도 찍고 쉬어가기도 좋다. 해안 덱길은 제비꼬리 길이라고도 불린다. 덱길은 1km 정도로 선창에서 탑재산 주변을 돌아 해수욕장 앞까지 이어져 있다. 경치도 좋고 휠체어 이용자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산책할 수 있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기분으로 해안을 둘러볼 수 있다.
-
휠체어 사용자 앞에 놓이는 여러 장벽들
-
-
해안 산책로 입구를 조금 지나면 탑재산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휠체어 이용자는 계단과 친할 수 없으니 패스다. 제비꼬리 길 오른쪽은 깎아지르는 암석 절벽이고 왼쪽에는 바다가 펼쳐진다. 산책로 한쪽 바닥에는 지압돌이 깔려 있어 맨발로 걷는 사람도 있다. 산책로 곳곳에는 쉼터도 마련돼 있다. 둥지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열린 바다를 감상한다. 둥지 쉼터에는 둥지의자도 있어 사람들은 걷느라 애쓴 다리를 쉬어 주며 다독인다. 쉼터에는 망원경도 설치돼 있다. 그런데 망원경은 왜 다 키가 똑같을까.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앉아서 다니기 때문에 키가 낮은 망원경이 필요하다. 이젠 망원경의 키 높이도 다양성을 갖출 때가 됐다.
여유롭게 산책로를 걷다보니 왼쪽으로 빨간 등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비꼬리 길 마지막 구간은 빨간 등대로 이어진다. 빨간등대 주변은 포차가 즐비하다. 포차의 낭만을 즐기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등대 광장에도 주차장과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 원초적 본능 해결도 할 수 있다. 다만, 빨간등대 진입로는 여덟 개의 계단뿐이어서 휠체어 탄 여행객은 아쉬울 뿐이다. 언제쯤이면 계단 대신 경사 길이나 승강기가 있는 사회에서 살까. -
-
-
누구든지 탑승하는 서해랑 해상케이블카
-
다시 길을 나서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한다. 케이블카 탑승장은 제부도 입구 가까이 있다. 새로운 건물은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고 케이블카 이용인은 자체 순환버스를 무료로 이용 할 수 있지만 계단버스다.
케이블카를 타러 승강장으로 갔다. 케이블카는 철제 캐빈과 크리스털 캐빈 두 종류가 있다. 휠체어나 유아차, 자전거 등은 안전을 위해 철제 캐빈에 타야 한다. 제부도 서해랑 케이블카는 8인승이어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도 탑승 가능하다. 케이블카 길이는 2.2km 정도로 전곡항 승강장까지 약 12분이 걸린다. 케이블카의 기둥은 프랑스의 에펠탑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전국에 많은 곤돌라형 케이블카가 있지만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제약 없이 캐빈에 탑승할 수 있는 곳은 서너 곳에 불과하다. 그중 한 곳이 서해랑 해상케이블카다. 탑승장 직원도 전동휠체어 사용 승객에 대한 인식이 높아 캐빈이 승강장에 도착하면 속도를 최대한 늦춰 거의 움직임이 없을 정도에서 승하차를 돕는다. 게다가 캐빈에 탑승하면 의자를 뒤로 젖히고 휠체어 회전 공간을 만들어 내릴 때도 안전하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서해랑 해상케이블카는 전국 케이블카의 무장애 여행 기준점이다.
케이블카에 승차하니 마치 바다 위를 날아가는 기분이다. 햇빛은 굴절되어 바다위로 꽂히고 조약돌 던지듯 툭툭 내뱉는 “아!” 하는 감탄사가 공간에 진동처럼 퍼진다. 갯벌에는 썰물 때 만들어진 갯벌 무늬가 선명하고 밀물이 조금씩 밀려들면서 갯벌 무늬가 하나씩 지워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