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컬처
장애인의 로맨스를 다시 보다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
글. 김헌식 /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장애인의 현실과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 기존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쉽게 보지 못한 캐릭터 설정과 연출을 통해서 진일보한 사회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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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의 삶을 담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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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큰 인기에 힘입어 다른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었던 듯싶다. 흥행작이 있으면, 수익 가능성이 확인되기에 배제되었거나 보류한 작품이 제작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드라마 <우영우>는 이전 드라마와 여러모로 다른 점이 있었다.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에 대한 긍정성을 잘 보여 주었다. 여기에 진지한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가 중심축을 잡아 주었고 장애인의 일과 사회생활을 다루며 그 능력을 부각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다만, 주인공의 로맨스는 이야기의 중심축에 있지 않고, 전체 이야기에 양념을 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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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도 차진우(정우성 粉)는 화가로서 활발하게 직업 활동을 한다. 청각장애는 작품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때로 약간의 오해와 갈등이 있지만, 늘 있는 일이라서 그런지 차진우는 그때마다 슬기롭게 해결하거나 이겨 낸다. 하지만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상처와 고통이 있던 점을 정우성의 내레이션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그는 의사 표현을 적절하게 한다. 공책에 오가는 필담이나 스마트폰의 문자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여기에 시시때때로 수어를 사용한다. 차진우가 주인공이기에 수어가 자연스럽게 많이 드러난다. 더구나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장애인 작가에게 미술 창작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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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어 주는 언어, 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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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연한 계기였다. 차진우와 정모은(신현빈 粉)의 인연은 제주도에서 시작되었다. 항공사 승무원에서 제2의 인생으로 배우의 삶을 선택한 정모은은 쉽지 않은 촬영 현장에서 상처를 받고 우연히 길에서 만난 차진우에게서 호감을 느낀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녹록지 않은 단역 배우의 삶이 정모은에게 사랑의 동기가 된다. 정모은이 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만 차진우는 사랑의 상처가 있어 다가오는 정모은을 밀어낸다. 자신이 정모은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으므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모은은 차진우에게 다가간다. 정모은은 차진우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수어를 배우며 차진우 또한 함께 노력한다. 점점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관계에서 사랑으로 나아간다. 특히 드라마 속 대화는 수어와 문자뿐만 아니라 글씨를 써서 상대에게 보여 주는 장면이 많은데, 이를 단지 카메라에만 보여 주지 않고 화면에 손글씨 자막으로 표현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전달력을 높인다. 여기에는 수어를 사용하는 비장애인 여성이 또 한 명 등장한다. 바로 차진우의 옛사랑 송서경(김지현 粉)이다. 송서경은 첫사랑의 달콤함을 준 인물이지만 뼈아픈 상처를 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누구의 도움 없이 자유자재로 수어를 구사한다.
사랑은 언어를 잉태한다. 옛 친구도 빼놓을 수 없다. 홍기현(허준석 粉)은 차진우의 오랜 친구인데 수어를 잘 할뿐더러 차진우의 활력소 역할을 한다. 그런데 홍기현이 수어를 잘하는 것은 청각장애를 가진 아내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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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연애관을 고스란히 투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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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는 단 한 명의 장애인만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차진우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에게 미술 교육 활동도 병행하는데, 이 청소년들은 모두 청각장애인으로 수어를 사용한다. 장애인과비장애인의 로맨스가 청소년들 사이에 일어나기도 한다.
이 드라마가 다른 장애인 관련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와 다른 점은 이미 그들의 결말을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이 비극적 결말에 도달한 것은 그들이 결혼할 수 있는가를 전제해서다. 요즘 청년들은 반드시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애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연애에서 서로 느끼고 공유하며 위로와 힘을 얻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드라마는 달라진 연애관도 담아낸다.한편으로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반추할 수도 있다. 청각장애인으로 무리 없이 살아가는 삶이 분명 쉽지 않을 텐데 차진우를 보면 일상생활이 체화되어 있다.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애인이 겪을 일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청각장애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갈등을 통한 서사 전개보다는 여러 인물을 통해서 상상하고 실천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무엇보다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잘 살아가는 사례들을 현실감 있게 보여 주려 한다.
드라마의 마지막 연극 대사는 이 드라마의 가치를 재음미할 수 있게 했다.
“우리가 너무 다르다는 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