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일본의 장애인 고용
글. 이정주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센터장
지난 6월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1 이 일본을 제쳤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NI가 3만 6,194달러이며, 일본 3만 5,793달러를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 중에서는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 이어 한국은 여섯 번째이다. 일본이 그 뒤를 따른다. 이렇게 불쑥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들 하니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감격적이면서도, 뭔지 모를 아련함이 가슴에서 밀려 올라온다.
장애인고용 선진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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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고용 분야의 문이 열렸을 때 일본 1인당 국민소득은 이미 3만 달러대로 진입했다. 그 후 3년 뒤 1995년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4,586달러였다. 우리나라는 그때 겨우 1만 달러를 넘어섰다. 1995년 우리나라는 1만 2,435달러였다. 일본이 우리보다 3만 2,000달러 이상 더 많았다. 현재 우리나라와 캄보디아, 라오스 정도의 차이였다. 당시 ‘세계 제일 일본(Japan As Number One)’이라는 말이 있었다. 세계 제일 일본은 비단 경제성장뿐만이 아니었다. 장애인복지, 장애인고용에 있어서 일본은 선진국이었다. 우리나라의 관련 법령 대부분이 일본의 관련 법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유독 장애인 관련 법령이 그랬다. 일본의 장해자복지법(障害者福祉法)은 장애자복지법(障碍者福祉法)으로, ‘장해자고용촉진법’은 ‘장애인고용촉진등에관한법’2으로 그대로 차용해왔다. 의무고용제 역시 그렇게 일본을 거쳐 한국에 검열 없이 그대로 따라 들어왔다. 누구 하나 모방을 비방하는 이 없었고, 했다 하더라도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는 반문만 얻었을 것이다. 1991년 장애인고용촉진등에관한법률에 근거하여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설립되었다. 33년 전 우리나라 장애인고용은 불모지 그대로였다. 일본 장애인고용촉진협회3를 주축으로 의무고용제를 기반으로 하는 장애인 고용정책은 눈부시게 활발했다. 당시 미국 맨해튼 땅의 1/3을 일본이 샀다는 풍문 속에서 승승장구하는 일본에 가서 장애인고용정책을 배우는 데 온 정신을 다 쏟아부었다. 공단 직원도 매년 몇 명씩 일본으로 보냈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을 연수를 보내어 일본의 장애인고용정책과 제도를 배우는 데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일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을 앞지르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왠지 장애인고용과 복지는 쉽게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경제는 추월했지만, 오히려 장애인 분야에서 뒤처지다 보니 더 부끄럽고 조바심마저 든다. 다른 분야는 다들 저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본을 추월하는데 왜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인식과 관심은 여전히 30년 전의 격차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지 마음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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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고용제도 혁신
그런 마음 때문인지 최근 일본은 과감한 제도 개선을 보이며 또 멀찌감치 우리를 따돌리는구나 싶었다. 몇 가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일본은 장애인 관련 법률을 통합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20여 개가 넘는 장애인 관련 법률이 있다. 일본은 2014년 「장애인종합지원법」 으로 통합 개정했다. ‘세계는 지금’에서 다루기에는 다소 오래된 일이지만 그 법률을 토대로 최근까지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아직도 의료적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장애인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격세지감이다. 우리나라에 장애인등록제를 전수해 준 국가가 슬그머니 등록제를 폐지하고 신청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면서 24시간 장애인 돌봄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또한 중증 장애인을 24시간 돌보는 것이 가능한 ‘지켜보기’의 중증방문개호 대상이 신체장애인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으로 확대되면서 지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체계가 구축되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켜보기’란 중증 장애인의 목욕, 이동, 배변 등의 활동을 돕는 것이 아니라 중증 장애인 옆에서 그저 행동을 지켜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활동지원사가 어떤 행위를 하지 않고 장애인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활동 지원이 성립된다고 법이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고령화 시대에 맞추어 중고령 장애인고용제도를 도입했다. 최근 일본은 장애인고용부담금을 재원 하는 조성금 제도에 주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2024년 4월 35세 이상의 중고령 장애인의 고용유지를 도모하기 위해 조성금 제도 내에 일부 제도를 신설한 것이다. 장애인 근로자의 연령이 많아지면 근로에 큰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같이 중고령 장애인에게 직장 생활을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직장개조자조성금 제도를 만들고 여기에서 만들어진 재원으로 중고령 장애인이 계속해서 일할 수 있도록 인적 지원을 제공하는 사업주를 지원하는 것이다. 수화통역, 요약 필기, 중고령 장애인의 업무를 바꾸어 주기도 하고 이때 투입된 재원을 지원한다. 우리나라가 근로 지원을 통해 지원한다면 일본은 사업주를 통해 지원한다는 점이 다르다4.
세 번째는 일본은 2024년 6월부터 장애인 의무고용 법정 고용률을 상향 조정했다. 일본의 장애인 의무 고용에 대한 법정 고용률은 2023년 기준 2.3%이며 2024년 6월부터 2.5%로 상향 조정됐다. 특히 2024년부터 단계적으로 상승 폭을 적용해 2026년 장애인 고용률 2.7%를 목표로 할 것을 예고했다.
지적장애인의 자립생활과 활동보조인의 지원 현황
활동보조인의 지원 현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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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 낮에는 보호작업장과 같은 낮 활동을 하는 곳에 다니는 사람이 많지만 그 이외의 시간은 활동보조인과 논의하여 어떻게 지낼지를 결정한다. |
휴일 | 활동보조인과 논의해 가면서 여가활동을 하거나 외출을 한다. |
생활 공간 | 당사자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활동보조인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
요리와 설거지 | 활동보조인과 본인이 분담하는 경우와 활동보조인만 하는 경우가 있지만, 메뉴를 정하거나 식사의 양이나 내용 등을 계획할 때 건강을 생각하여 개별 계획을 세운다. |
쇼핑 | 기본적으로는 지적장애인의 의향을 중시하여 금전 관리나 선택 내용을 활동보조인이 지원하며 쇼핑을 한다. |
돈 사용 방법 | 본인에게 맞는 돈 쓰는 방법이나 관리에 대해 활동보조인이나 제공 기관의 코디네이터가 돈 관리 지원을 하고 있다. |
의사소통 | 언어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도 많으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오랜 기간 지적장애인과 관계를 맺어 온 지원자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존엄
현행 2.3%일 경우 상용근로자 44명 이상의 기업은 장애인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의무고용률이 2.5%로 올라가면 상용근로자 40인 이상, 2.7%로 올라가면 37.5인 이상 기업은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100인 이하 사업체에는 아직은 부담시키지 않는 납부금을 곧 부과시킬 계획을 엿보였다. ‘장애인고용의무 기업범위 확대·소규모 사업체 장애인고용 여건 조성’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올해 6월부터 장애인 의무고용에 대한 법정고용률을 한차례 상향시켰고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상향시킬 예정이다. 장애인 고용의무가 적용되는 규모상 기업 범위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법률이 정한 5% 의무고용률까지 꾸준히 범위를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수점 이하 영점 몇%에 담겨있는 사업주의 부담과 장애인 당사자의 일자리 참여 의지를 살피는 접근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토록 배우고 이기고 싶었던 일본을 경제적으로 어느 면에서 사회적으로 추월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지닌 장애인을 위한 진심은 아직 우리가 따라가기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특히 사업주와 함께 장애인 고용에 힘을 모으는 모습에서 그렇고, 장애인의 이동권, 여가문화 체육 모든 면에서 그렇다. 우리나라도 이제 경제적 지위뿐만 아니라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존엄에 문제에 더욱 관심을 두는 시대가 오기 바란다.
참고문헌
심진예(2024). <세계장애동향> 2024-2호 , 2024-4호
Ablenews 2023. ‘장애인 의무고용 향상’ 일본의 다양한 정책적 노력들
1. 1인당 GNI는 우리나라 국민이 국내와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인구수로 나눈 것으로, 생활 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많이 쓴다.
2. 장애인고용 및 직업재활법의 전신
3. 현재 일본 고령장애인고용촉진협회(JEED)의 전신
4.
장애인의 고용 촉진과 직장 정착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으로, 장애인뿐 아니라 난병환자, 뇌손상이 있는 자도 대상이다. 지급 대상 기간은 2년(정신장애인은 3년)이다. 장애인 1명당 월 3만 엔(약 30만 원)을 지급한다.
일본의 장애인고용은 철저히 사업주 지원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특징도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