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테이너로 한 걸음, 스스로 개척하는 내일이 기대됩니다.”
최국화 프리랜서 아나운서
장애를 갖게 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삶에 소홀할 수 없었다는 최국화 아나운서는 인터뷰 당일에도 누구보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환한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 여행 프로그램 MC, 모델로 활약하며 다양한 면모를 보여줬던 그녀는 이제 본격적인 아나테이너*로의 한 걸음을 내디디며 스스로가 만들어갈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
글 편집부 사진 김덕창
* 아나운서와 엔터테이너를 결합한 단어로, 예능 활동을 병행하는 아나운서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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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국화 아나운서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프리랜서 아나운서 활동을 하고 있는 최국화입니다.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 아나운서 일을 해왔고요. 현재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편히 입을 수 있는 의류 브랜드 하티스트의 앰배서더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삶의 접점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언제부터 어떻게 장애를 갖게 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2006년에 중국 유학을 하던 중이었어요. 현지인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 노래를 알려주는 선생님으로 일을 하면서 공부와 병행했어요. 여느 때와 같은 생활을 하다가 집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던 중 발을 헛디뎌서 사고가 났고, 척수 신경이 손상되면서 허리 아래는 움직일 수 없는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수술받고 2개월 후, 누운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올해로 15년 차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로도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이 활동을 하게 된 계기도 특별하다고 들었습니다.
사고 이후 한국에 막 들어오고 나서 현실 감각이 제로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으로의 복귀가 필요하니 재활을 했을 때였어요. 여러 재활병원을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머무른 곳이 국립재활원이었습니다. 국립재활원에서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잘할 수 있도록 많은 교육을 하고 있는데 제가 필요한 건 운전 교육이었어요. 그러면서 만나게 된 주치의 선생님이 저의 강사 경력을 아시고는 한 가지 제안을 해주셨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고 예방 교육, 장애인 배제나 차별, 편견을 없애는 인식개선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가장 적합한 사람이 저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어요. 사고 후 1년이 채 안 된 시기라 사회에 나가기 두려운 상태였어요. 그때 제게 용기를 함께 불어넣어 준 사람이 제 친동생이에요.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끔 환경을 마련해주신 주치의 선생님과 지금도 가장 가까이에서 도움 주는 친동생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를 양성하는 교육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를 양성하는 양성 교육을 2011년부터 해왔어요. 전국을 다니면서 교육했고 강사분들도 꽤 많이 배출되었죠. 국립재활원 강사분들이 전국에 60명 정도 되시는데 모두 제 트레이닝을 거친 분들이라 애정이 남다릅니다. 이렇게 장애인 인식의 지평이 조금씩 넓어진다고 생각하면 다음 강의 준비도 더욱 씩씩하게 하게 되죠.
최국화 아나운서가 일에 대한 열정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모습
이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커리어를 소화하면서 일인 다역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여행 프로그램 MC도 하셨죠?
2012년, 규모가 있는 아나운서 양성 아카데미에서 오디션에 통과하면 무료 교육을 시켜준다는 공고가 났어요. 당시는 열심히 강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땐데, 강의 내용에 대한 전달력을 높이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고 운이 좋게 붙었어요. 첫 교육을 받으러 간 날, 여행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PD님이 제안해 주셔서 국내 최초의 배리어프리 여행 프로그램에 MC가 되었어요. 당시만 해도 장애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동권 개념이 많지 않을 때라서 사명감을 가지고 전국을 누비며 배리어프리 여행지를 소개했어요. 지금 막 나오는 배리어프리 여행 기사나 방송들을 보면 뿌듯함과 동시에 ‘내가 원조다’ 생각하곤 하죠. (웃음)
아나운서님이 진행하시던 KBS ‘최국화의 생활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휠체어를 탄 앵커의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차분한 멘트 톤에 저절로 시선이 갔던 기억이 있어요. KBS 6기 장애인 앵커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코로나 이후로 제가 했던 모든 업무가 중단되거나 취소됐어요. 무기력을 이기려 TV를 주로 시청했는데, 때마침 장애인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가 나오는 거예요. 장애, 비장애 구분 없이 뉴스를 전달하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모습이었어요. 제가 장애를 갖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 들었던 생각이 ‘갈팡질팡하며 주저했던 일들을 왜 실행에 옮겨보지 않았나, 도전해보지 않았나’ 하는 거였거든요. 그렇게 제 나이 마흔에 KBS 장애인 앵커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쟁쟁하고 젊은 분들 사이에서 긴장도 했지만, 오히려 ‘안 될 거야’라는 생각에 편한 마음으로 면접에 임했고 결국 통과했습니다. 2021년부터 2023년 3월까지 매일 KBS에 출근하며 치열하게, 즐겁게, 꿈같은 커리어를 쌓아갔습니다.
매번 새로운 일을 개척하고 계시는데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어 보여요. 내면에 어떤 원동력이 있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전 장애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온전한 다리를 가진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도 첫 삽을 뜰 수 없더라고요. 내가 가진 것을 사랑하자고 다짐하고 매일 마인드 컨트롤을 해요. “후회 없이,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도전하자”는 게 제가 모든 일을 앞두고 가지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아이들은 표현이 솔직한 편이니, 휠체어를 탄 저를 보고 어떤 말을 할지 지레 겁을 먹고 갔습니다. 오히려 한 아이가 제 다리를 만지면서 “선생님이 오셔서 너무 좋아요”, “집에 가서 선생님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거예요”라고 하는데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깨달았어요. 간극을 좁히고, 편견을 없애고, 벽을 허무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 많은 일들을 일정이 엉키지 않도록 잘 배분하는 것도 능력일 것 같아요.
제가 원래는 ‘J(계획형)’ 성향이 아니었는데, 장애를 얻고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우선 강의를 하게 되면 어떤 청자분들이 오시는지를 파악하고 준비하고요, 행사 MC를 담당하게 되면 행사가 열린 배경부터 성격, 어떤 분들이 주로 참석하시는 곳인지를 파악한 후 스크립트를 직접 짜죠. 저는 ‘장애인이니까 그냥 좀 봐줄 수 있어’하는 인식을 안 받고 싶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 제가 어드벤티지를 받는다는 게 허락되지 않아요. 그래서 모든 스케줄을 철저히 준비해 임하는 편입니다. 물론 이제껏 3천 번이 넘는 강연을 하면서 100% 스스로 만족한 강연은 없었어요. 안주하지 않고 제가 부족한 부분들을 계속 채우면서 나아간다고 믿습니다.
아나운서님에게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저희에겐 거룩한 문 같아요. 사회로 나아가는 문, 편견에서 공존으로 나아가는 문, 경제생활로 나아가는 문.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공단과 협업을 할 때마다 느끼는 부분도 있어요. 행사를 준비하시는 직원분들을 보면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느낌인 거죠. 이렇게 세심한 분들이 모여 평소의 업무도 꼼꼼하게 하시겠구나, 장애인고용 관련 사업을 허투루 만들지 않으실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연말입니다. 올해를 돌아보고, 또 내년을 계획하는 시즌이죠. 2023년을 돌아보고, 2024년의 계획을 말씀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올해 장애인 전문 기획사인 파라스타 엔터테인먼트 소속이 되었습니다. 스포츠, 예술, 방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신 장애인들과 함께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에 기대가 됩니다. 지난 10월에 다리를 다쳐서 지금은 조금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건강’과 ‘안전’을 챙기는 재정비의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제게 베풀어 주신 많은 기회와 행운, 그리고 사랑을 보답할 수 있는 기부 활동과 봉사 활동도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계획하고 있습니다.
구직과 취업을 앞둔 장애인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시길 바랍니다.
장애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게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아나운서가 되었잖아요, 저도 해냈잖아요.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여러분은 더 크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용기를 낸 만큼, 도전한 만큼 나의 세계는 넓고 방대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는 2024년을 만드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