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처럼 반짝이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박휴성 전문위원
올해로 33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직업훈련교사로 근무하고 능력개발국 운영부장을 담당했던 박휴성 전문위원이 12월 공단과 아쉬운 이별을 앞두고 있다. 퇴직을 목전에 두고 33년의 공단 생활을 갈무리하는 기회이자 작가 인생의 빛나는 시작을 알리는 개인전인 <나전칠기 이야기>를 연 그의 뜨거운 소회를 들어봤다.
글 편집부 사진 김덕창
안녕하세요 박휴성 선생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33년을 직업훈련교사로 근무한 박휴성입니다. 1990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공공훈련 기관인 일산장애인직업훈련원(당시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목칠공예과 나전칠기 전문교사로 입사했습니다. 현재는 본부 교사직 전문위원으로 공로연수 수행 중입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33년을 근무하셨습니다. 처음 입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나전칠기 입문 13년 차에 일본에서 나전칠기 복원공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나전칠기보호협회에서 ‘장애인직업훈련기관에서 나전칠기 기술교육 담당교사를 찾는다’는 이야길 전해주셨어요. 그 이야길 들은 후 제 목표는 하나, 장애인들에게 나전칠기 기술을 전수해 기술인으로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공단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45년 동안 해오신, 그리고 공단에서 직업훈련교사로 장애인들을 지도했던 나전칠기, 일반인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요, 나전칠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전칠기는 한자로 소라 라(螺), 비녀 전(鈿), 옻칠할 칠(漆), 그릇 기(器)입니다. 바다에서 나는 전복, 소라 등의 색상이 좋은 조개를 용도에 맞게 가공하고 각종 도안의 문양을 세공 또는 끊음질하여 기물에 부착하고 표현해 여러 번의 칠을 입혀 완성합니다. 나전칠기의 뼈대가 되는 백골의 재료에 따라서 나무가 중심이 되는 목심 칠기, 칠이 중심이 되는 건칠, 도자기가 중심이 되는 도태 칠기, 대나무에 칠을 하는 남태 칠기 등 다양한 종류로 확장 및 가공될 수 있는 공예입니다.
2023년 12월 퇴직을 앞두시고, 작가 인생의 출사표를 던지듯 개인전 <나전칠기 이야기>를 고양아람미술관에서 여셨습니다. 직장 생활과 개인전 준비를 병행하기에 힘들진 않으셨는지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라고 준 공로연수 기간이 제겐 큰 기회였습니다.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는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었어요. 건칠 바탕작업을 해두고 완성하지 못했던 작품을 새로 작업하기도 했고 일반 대중이 보기에도 ‘예쁘다, 갖고 싶다, 멋지다’는 마음이 들 수 있는 생활공예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2년 5개월을 달려온 것 같아요. 덕분에 이번 전시에 뜨겁게 작업한 250점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5kg 정도 살이 빠졌다가 지금은 원상 복귀가 되었네요.(웃음)
250점이라니, 그간의 고뇌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을까요?
여로(旅路)와 염원(念願), 이 두 작품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이 작품들은 1995년과 1996년 장애훈련생들에게 나전칠기 제작기법 교육 표본으로 제작한 작품이에요. ‘여로’는 인생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나아가는 여행길이라는 뜻을 담아 만들었어요. 다양한 끊음질 기법과 칠로 학생들이 보고 잘 따라할 수 있도록, 나전칠기 작업의 결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일산직업능력개발원 본관 1과 2층 사이에 전시돼 있어요. ‘염원’이란 작품은 장애훈련생들의 당당한 앞날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건칠로 반복적인 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33년의 공단 생활 중 잊지 못할 추억이 있으실까요?
물론이죠. 정말 여러 순간들이 제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1990년대 초에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 공공직업훈련으로 개소했을 때 학생모집을 홍보하기 위해 서울지하철 역사 곳곳을 누비면서 포스터를 직접 붙였어요.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사업체를 방문하면 경비실에서 문전박대 당하기도 했고, 반대로 기꺼이 고용하겠다고 취업확인서에 서명이라도 받는 날엔 하늘을 나는 듯한 행복함과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희도 열심히 했지만, 학생들도 정말 열심히 해줬죠. 규모도 시스템도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초창기지만 그때의 풋풋함과 열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박휴성 전문위원이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수많은 학생들, 동료들과 관계를 맺으셨을 텐데요. 기억에 남는 사람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수료한 지 2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연락을 주는 수료생이 있어요. 사지합지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열심히 임해준 친구입니다. 인연을 잊지 않고 소중히 여겨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죠. 그리고 제가 처음 여기 목칠공예과에서 함께 근무했던 이은오 선생님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에 남지요. 1990년부터 지금까지 쭉 옆에서 함께 근무하시다가 10여 년 전에 먼저 퇴직하셨는데 어제는 전시회에 오셔서 축사도 해주셨습니다. 참 감사한 인연들이죠.
나전칠기를 훈련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어떤 부분들이 도움이 되길 원하셨을까요?
나전칠기는 계속 앉아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행동반경이 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아마비나 절단장애, 왜소증과 같은 성장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장애친화적인 기술이었어요. 그들이 집중하면서 꼼꼼하게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성취감과 예술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물론 지금은 나전칠기 교육을 운영하고 있진 않지만 당시에 학생들이 서툰 솜씨로나마 완성했던 작품들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올해 12월 퇴직을 앞두고 계시는데요, 공단 생활을 꾸준히 해나갈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사람은 스쳐 가는 바람에도 영혼을 느낀다.” 라는 문장을 어느 시기부터인가 제가 만들어 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데요.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진심은 누구에게나 다 전달이 됩니다. 상대도 느끼고, 심지어 스스로도 느낄 수 있죠.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하고, 스스로에게도 진실로 대하면 ‘나’라는 향기는 은은하게 꽤 멀리까지 퍼질 거예요. 같은 직장 동료에게도, 우리 훈련생들에게도, 취업을 앞둔 장애인분들에게도 성심을 다하는 저마다의 ‘나’가 되길 기원합니다.
구직을 희망하는 장애인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크게 느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멈추지 않으면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것과 욕심이 과하면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이죠. 직업훈련을 할 때도 학생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으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고 격려했던 것처럼 저를 다독이고 격려하면서 개인전을 완성했습니다. 욕심이 과하긴 했습니다만, 적당한 욕심은 때론 강력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여러분도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리신다면 언제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지평이 열릴 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