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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점자의 역사 알아보기

‘훈맹정음’ 들어보셨나요?

점자는 지면에 볼록 튀어나오게 점을 찍어 시각장애인들이 손가락 끝의 촉각으로 읽을 수 있도록 만든 특수한 부호글자이다. 19세기 초 프랑스 육군 장교인 ‘니콜라스 바루비에’가 야간 작전 시 암호용으로 처음 개발하여 전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후 프랑스의 파리맹학교에 전달되어 발전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점자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편집부

하얀 책 위에 표시된 점자를 손으로 만지고 있는 모습의 사진
1926년, 우리나라 한글 점자 ‘훈맹정음’ 발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점자는 1894년 미국인 선교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가 만든 점자는 총 4개의 기호로 만들어졌으나 기호의 수가 부족해 언어체계가 모호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외에도 자음 3점, 모음 2점으로 구성된 3·2점 점자가 발표되기도 했는데 초성과 종성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폐기됐다. 현재의 통용되는 한글 점자는 1926년 송암 박두성 선생이 발표한 ‘훈맹정음(訓盲正音)’에 기반했다. 기존에 명확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초성, 중성, 종성이 완전히 구분되고 대칭성을 활용해 체계적으로 완성되었다.
박두성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장애인 교육기관인 조선총독부 산하 제생원의 ‘맹아부(현 서울맹학교)’ 교사였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일본어 점자를 배우고 있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그들이 쉽게 글을 배울 수 있도록 제자들과 함께 한글 점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박 선생은 프랑스의 파리맹학교 교사였던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가 고안해 낸 6점식 점자를 참고했다. 한글의 6점식 점자는 세로 3개, 가로 2개로 구성된 점을 조합해 초성과 중성으로 구분된 자음과 모음의 문자로 완성되었다.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1926년 11월 4일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이 발표됐다.
이 훈맹정음을 기초로 1996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몇 차례의 수정과 보완을 거친 후, 한글 점자에 관한 ‘한국점자규정’을 제정해 ‘표준한국점자’를 공표했다. 다시 이를 바탕으로 1998년 ‘한국점자규정집’을 발간했고, 2006년과 2009년에는 재개정한 한국점자규정을 고시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천구백이십육년 십일월 사일에 발표된 훈맹정음 이미지
박두성 선생이 만든 ‘훈맹정음’ 점자 일람표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송암 박두성 선생의 젊은시절 사진
우리나라 최초로 ‘훈맹정음’을 만든 송암 박두성 선생
다양한 제품군에 점자 표기 적용

‘한글 점자의 날’은 11월 4일이다.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권리를 신장하고 점자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제정됐다. 더불어 1926년 11월 4일 박두성 선생과 제자들이 만들어서 현재 쓰고 있는 한글 점자의 원형인 훈맹정음 발표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매년 한글 점자의 날이 속한 주간을 한글 점자 주간으로 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한글 점자의 날 기념행사를 계기로 자사 제품군에 점자를 표기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LG전자는 지난해 모든 가전제품에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공용 ‘점자 스티커’를 한글 점자의 날 기념으로 무료 배포하고, 소비자의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현재까지 이벤트를 이어가는 중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 스티커를 활용하면 전원, 동작, 정지뿐만 아니라 와이파이, 원격제어, 위·아래 화살표까지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이 점자 스티커는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02-6952-2580)이나 LG전자 고객센터(1544-7777)를 통해 무료 신청이 가능하다.
식음료 업계도 다르지 않다. 오뚜기는 컵라면 전 제품과 컵밥 14종, 용기죽 8종에 점자 표기를 도입했다. 컵라면에는 물 붓는 선과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여부를, 컵밥 패키지에는 제품명과 조리법을, 용기죽 뚜껑에는 기업명과 제품명을 투명 점자로 표현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음료업계 최초로 칠성사이다, 밀키스, 펩시콜라 등 탄산음료 제품에 음료 대신 ‘탄산’이라는 점자를 넣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칠성사이다, 밀키스 등의 제품명을 점자로 표기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화장품 업계인 닥터지(Dr.G)도 전 제품 용기에 점자를 표기했다. ‘누구나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고 소비자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취지에 따라서다.
우리는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을 이해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 한글 점자를 도입, 확장해 이들의 불편함을 덜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공용 '점자 스티커' / 사진. 엘지전자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공용 ‘점자 스티커’ / 사진. LG전자
화장품 용기에 새겨져 있는 ‘한글 점자’ / 사진. 닥터지
화장품 용기에 새겨져 있는 ‘한글 점자’ / 사진. 닥터지(D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