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향한 보조공학기기 연구에 매진하겠습니다.”
보조공학센터 용석길, 유동현 전임연구원
보조공학센터에서 보조공학기기를 제작하는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면접도 같은 조로 봤고, 입사 동기에다가 종교도 같아서 공단 내에서도 알게 모르게 서로 의지하는 사이. 반지 공방에서 마주 보고 앉아 은반지를 자르고 갈고 닦으며 서로 농담을 주고 받다가도 보조공학기기 연구원 답게 반지의 디테일을 수정할 때의 눈빛은 사뭇 달라졌다. 이들이 사람을 향한 기술을 위해 공단에 몸담게 된 사연을 시작으로 은반지보다 더 반짝거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글 편집부 사진 김덕창
오늘은 날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 보자!
은반지 공방에 나타난 두 사람의 손가락엔 액세서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뭔가를 꾸준히 만들고 고안하는 입장이다 보니, 액세서리와는 거리가 멀었죠.” 머쓱하게 웃는 두 사람 앞에 여러 가지 반지 샘플이 놓였다. 굵기도, 디자인도, 각인도 모두 다른 반지들을 들여다보다 사선으로 뚫린 반지와 띄어쓰기 부호처럼 윗단이 ‘V’ 모양으로 커팅된 반지 디자인을 선택했다.
손가락 굵기를 잰 후, 선생님이 재단해 온 얇은 은색바를 쥐고 각자 다듬질용 손공구인 줄을 잡고 접합부를 매끄럽게 깎아나가기 시작했다. 보조공학센터에 있다 보면 만들고 고안할 일이 많아 손으로 하는 작업이 익숙하지 않냐고 질문을 던졌다.
“보조공학기기는 상용과 맞춤으로 구분되거든요. 공단에서 지원하는 상용품목이 있는데 장애의 종류와 개개인의 신체적인 특징이 다르다 보니 맞춤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 맞춤을 설계하고 만드는 담당을 저희가 하게 됩니다. 샘플 작업으로 뚝딱뚝딱하는 일이 조금씩 있는 편입니다. 지금까지는 장애인 근로자를 위해서 뭔가를 만들어왔는데, 오늘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은반지를 만드는 게 낯설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유동현 연구원의 반지는 바를 구부려서 접합부를 은으로 땜했고, 용석길 연구원의 반지는 동그랗게 구부린 상태에서 붙이지 않고 사선의 여백을 살리는 것으로 1차 작업이 마무리됐다. 두 사람은 동그란 반지의 형태가 되자 손가락에 대보기도 하고 끼워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환봉에 넣어서 손가락 굵기에 맞도록 망치질을 해 넓히는 작업을 하면서 생각보다 너무 잘 늘어난다며 ‘은’의 성질에 대해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만들었던 보조공학기기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기도 했다.
면접 동기에서 마음 잘 맞는 동료로
보조공학센터 내에서 유동현 연구원은 보조공학기기의 설계 맞춤을 담당하고, 용석길 연구원은 보조공학기기 연구개발 총괄을 담당하고 있다. 학교는 다르지만 졸업한 과도 기계공학과로 같고, 입사 면접도 같은 조로 보고, 입사일도 같은 너무 소중한 입사 동기인 두 사람은 종교마저도 같다. ‘사람을 향한 기술에 매진하고 싶다’는 입사 동기도 비슷한 걸 보면 서로 가끔 소름이 돋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거나 물어보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서로를 찾게 된다고.
용석길 연구원이 최근에 출장을 갔다가 발견한 사례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머리를 모으기도 했다. “휠체어를 타고 도로 정화 업무를 하고 계신 장애인 근로자분들을 보게 됐어요. 업무 수행이 수월하지 않은 것 같아 제가 명함을 드리면서 보조공학기기를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으니, 연락을 달라고 말씀드리고 왔어요. 유동현 연구원과 함께 머리를 맞대서 청소흡입기기를 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연락을 안 주시더라고요. 우연히 다시 그 길을 지나다가 그분들을 만나게 돼서 왜 연락을 안 주셨냐고 물어봤더니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다행히 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고, 보조공학센터 접수를 진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장애인 근로자를 발견하면 온 관심이 거기에 쏠린다고 했다. 이유는 두 사람이 늘 집중하고 있는 ‘사용자의 편리성’ 때문이다. 사용자를 유심히 관찰하고, 어떤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분석하는 게 일이다 보니 은반지 하나를 만들 때도 세심함이 엿보였다. 사포봉을 끼워 돌리는 핸드피스를 잡으면서도 여러 개의 느낌표를 주고받은 두 사람. 작은 반지 하나에도 여러 원리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는 재미로 이 시간을 가득 채운다.
은반지처럼 반짝이는 사람을 향한 기술자들
지난 5월 말에 열린 ‘대한민국 보조공학기기 박람회’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주관하고, 보조공학센터 또한 참석하는 가장 큰 행사이자 두 사람이 공단에 입사해 처음 치르는 행사이기도 했다. 다양한 공부도 하고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관련해서 인상적인 보조공학기기가 뭔지를 물어보자 용석길 연구원은 기립형 전동휠체어인 감마스탠딩을, 유동현 연구원은 시각장애인용 초소형 스마트 유틸리티인 리보3을 꼽았다.
“저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보조공학기기는 장애인 분들이 일하실 때 본인의 장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느낄 만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지고 있는 장애를 지울 수 없겠지만 기기를 사용하는 순간은 그 어떤 불편함 없이 본래의 역량을 백프로 발휘할 수 있도록요.”
실리콘 헤드를 핸드피스에 장착하고 반지에 대보자 거친 표면이 정리되며 서서히 광이 난다. 점차 반짝이는 반지를 보며 “이걸 정말 저희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다 만드신 거 아닐까요” 하며 농담을 하는 여유를 가져보기도 한다.
서로 사이좋게 왼쪽 검지에 낀 반지를 들여다보며 “이건 커플 반지 아니고 우정 반지다!”라고 시종일관 선을 긋는 두 사람. 늘 지니고 다닐 반지이기에 각인을 한참을 고민하다 종교적인 신념을 담은 문구로 함께 정했다.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결론적으로는 비슷한 선택을 하는 건 결국 두 사람이 다른 듯 닮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거친 손 위에 반짝이는 반지가 마치 사람을 향한 기술을 더 든든히 하라는 각오처럼 느껴지는 건 과장이 아닐 것이다. 오늘 나눈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잘 스며들었을 테니. 흔들리는 순간마다 이 반지를 들여다보며 입사 6개월 차의 패기와 장애인 근로자를 향한 두 사람의 차분한 열정으로 기억할 수 있길 바란다.
“연단의 과정을 거쳐 반짝임이 완성된다는 걸 다시금 배웠습니다.”
용석길 전임연구원
‘반복해서 익숙하게 한다’, ‘쇠붙이를 불에 달궈 두드려 단단하게 한다’는 의미의 ‘연단’이라는 단어가 내내 떠올랐습니다. 반지도, 저희 작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되어서요. 그래서 보조공학센터가 담당하는 일이 기기를 만들 때는 차가운 이성이, 사용자와 대면할 때는 뜨거운 감성이 공존해야 하는 일임을 상기했습니다. 우리 보조공학센터가 연단의 과정을 담당할 테니,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찾아주시길 바란다고 장애인 근로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제 손에 맞는 반지처럼 여러분에게 맞는 기기를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유동현 전임연구원
오늘 반지를 만들면서 자연스레 저의 작업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게 됐습니다. 때론 사용자분들께서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답해주시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그걸 보완하고 맞춰드리기 위해서 저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다 더 친절히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조공학기기는 잠시나마 장애의 어려움을 잊는 순간을 만들어드리는 일이니까, 장애인 근로자 여러분이 불편한 부분에 대해서 언제든 편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연구원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