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장애인 일자리 방안을 창출하다
농촌형 치유 농장, 케어팜(CareFarm)
세계 각국이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 치매 노인 등 정신적·인지적 장애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이 많다. 네덜란드는 세계 제일의 농업 강국의 면모를 살려 농촌형 치유 마을, 이른바 ‘케어팜(CareFarm)’이란 이름의 농업 기반의 치유형 마을이 1,000여 개나 있다. 어떤 유형의 마을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글. 이정주 누림센터 센터장
장애인의 자립성을 돕는 농촌형 치유마을
네덜란드의 농촌형 치유마을 중 대표적인 모델 하나가 얼마 전 CNN(미국의 케이블 뉴스 채널)에 방영된 ‘호그백(Hogeweyk)’ 마을이다. 2009년부터 마을 조성을 시작한 간호사 ‘이본 반 아메롱겐(Yvonne van Amerongen)’은 치매 노인을 의료적 치료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치매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여 치매의 상태로 살아가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생활공간을 조성했다. 그녀는 무엇보다 마을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을 네덜란드 정부가 지원하는 ‘케어팜(CareFarm, 치유농장)’과 ‘그린케어(GreenCare)’에서 찾았다고 했다.
치매 노인에게 호그백 마을이 있다면 중증장애인에게는 ‘스코럴발트(Scorlwald)’ 마을이 있다. 호그백 마을과 같이 케어팜 형태를 근간으로 농업 관련 직무뿐 아니라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개발하여 다양한 일거리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케어팜 플러스 일자리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을에는 100여 명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농장일 뿐 아니라 악기 공방, 제과점, 레스토랑에서도 근무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인 마을에서는 누구나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장애인 스스로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장애인이 보호받고 격리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네덜란드에는 케어팜 중 중증장애인에게 더욱 특화된 마을은 스코럴발트 마을 말고도 현재 20여 개가 더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역시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스코럴발트 마을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 근로자들 / 사진. 스코럴발트(Scorlwald)
케어팜 성장의 밑거름이 된 그린케어 정책
장애인을 위한 스코럴발트 마을이든, 치매 노인을 위한 호그백 마을이든 모두 네덜란드의 케어팜 정책의 일환으로 국가 차원의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다. 1995년부터 50여 개에서 2015년에는 1,100개로 확대되었고 이들 대부분은 발달장애인, 치매 노인, 학대받는 아동,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케어팜이 늘어나게 된 것은 네덜란드 정부와 지자체가 펼치는 ‘그린케어 정책’ 때문이다.
그린케어 정책은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증진 및 회복시키기 위해 농업과 농촌의 역할을 강화하여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정신질환자, 신체장애인, 사회 부적응자, 기타 육체적·정신적 장애로 의학적, 사회적 치료가 필요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농업적 농촌적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이다. 이를 수행하는 기관이 곧 케어팜이다.
케어팜은 사회적돌봄(Care)과 농업생산활동(Farm) 서비스가 결합된 개념으로 개인 농가나 민간 조직, 의료, 보건 시설 등에서 농장 전체 또는 일부를 활용하여 그린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케어팜은 종래의 농업 생산활동에만 집중되었던 것에서 건강 사회 재활치료, 교육적 서비스를 파생시켜 농업의 다기능(Multi-Fuctional Agriculture)을 실현하면서 네덜란드 농촌에 새로운 수익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장애인고용의 핵심, 케어팜의 성공 배경
네덜란드 장애인고용의 핵심에 서 있는 케어팜의 성공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하나는 네덜란드 특유의 농업 공동체로서의 오래된 역사이다. 초기 케어팜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농장 운영만으로 자급자족하기 어려웠던 농장주들은 보조적인 소득 수단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치유농업, 치유농장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 이면에는 농장주 부인들의 육아에 대한 경험과 간호 경력이 뒷받침되었다. 네덜란드는 어원상 저지대(Nether+Land)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국토의 30%가 해수면 아래 있어 댐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척박한 불모지 땅이다.
이같은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지학적 공동체, 기독교적 공동체였고 그 힘으로 중세부터 간척과 개간을 통해 농업 강국을 이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 농장주의 부인은 현대판 사회복지사, 간호사, 치료사, 상담가의 역할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생존기 이후, 치유농장과 치유농업이라는 네덜란드 케어팜 브랜드를 전 세계에 알리는 원초적 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농장주는 더 이상 단순한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농부가 아니다. 특산품을 가공하는 2차 산업과 치유적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3차 산업까지 망라하는 6차 산업의 선구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 케어팜 확산을 위한 정책 지원
정부 역시 새로운 국가 기반 산업으로서 6차 산업 육성을 정책목표로 내걸며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는 농업 생산보다 케어서비스에 더 집중하는 농장 운영 사례가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다른 하나는 다법제적 농업, 복지, 경제부처 간의 협업이다. 오랜 전통의 치유농장을 케어팜으로 급속히 확대한 것은 2015년 사회지원법(WMO : Wet Maatschappelike Onersteuning) 개정 이후다. 지방자치단체가 케어팜 육성에 필요한 재정지원의 재량권을 갖게 되면서 네덜란드 전역에 케어팜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장기요양보험제도(WLZ : Wet langdurige zorg), 청소년보호법(JW : Jeugdwet), 건강보호법(ZVW : Zorgverzekeringswet) 등 다양한 법률에 근거하여 중증 치매, 중증 정신적·신체적 장애인, 장애를 가진 청소년·청년, 만성질환자 대상자를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마치 장애인을 위한 케어팜인 듯 오해할 정도로 그린케어와 케어팜은 건강, 일자리, 사회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대표적인 정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또한, 위와 같은 정책집행 과정에서 나타난 부처간의 유연한 협력체계가 돋보인다. 산업은 농업부처, 장애인 등 대상은 복지부처, 재정은 경제부처로 나뉘어 있지만 그린케어, 케어팜을 위한 세부처의 협력은 마치 한 몸 같이 움직인다고 한다.
유럽 주요 국가의 케어팜(CareFarm) 현황
그 과정에서 네덜란드는 6차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조했고 그 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인력으로서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서나 장애인은 그 중심에 서 있게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며 생산·판매하고 부족한 부분은 재정지원으로 보완하여 치유농업, 치유농장이라는 개념 속에서 관광상품을 만들어내는 힘이나 네덜란드 특유의 유연한 상술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놀라울 뿐이다.
우리나라도 한창 6차산업 활성화를 위해 분투 중이지만 농수산부, 복지부, 고용부, 기재부, 교육부처가 따로따로 더딘 발걸음을 내딛는 것으로 보여진다. 네덜란드의 부처간 협업이 대단해 보이는 것은, 남다른 부처간의 칸막이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 때문이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 사람 중심의 일상생활을 위해서는 부처간의 유연한 제도적 협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