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인플루언서
조명민 ㈜휴룸 이사
“장애인의 눈으로
디자인하고 싶어요”
글. 김엘진
사진. 신현균
첼로를 전공해 음악가로 살다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게 되며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조명민 이사. 그는 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과는 다른 공간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두 번째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만드는 건축설계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Q. <장애인과 일터> 독자를 위해 조명민 이사님과 휴룸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7년 밀리그램디자인을 설립했고, 지금은 딸과 함께 휴룸을 설립,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휴룸은 심리 안정 공간 및 도구를 제작하는 회사로, 향후에는 밀리그램디자인에서 하던 모든 업무를 휴룸에서 통합해서 진행할 계획이에요. 또한 현재 유한대학교 실내 건축학과 유니버설 디자인 겸임교수로도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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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밀리그램디자인에서는 장애인 복지공간 설계 디자인을 위주로 하셨고, 휴룸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계시는데요, 혹시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집에서 음악 하길 원하셔서 첼로를 전공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고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두 살쯤 됐을 때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어요.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복지관 등을 자주 방문하게 됐는데,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은 삭막한 복지관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자폐아들은 감각에 정말 예민하거든요.
그래서 서른아홉에 건축학을 배우기 위해 야간대학에 입학했어요. 원래 음악보다 미술을 더 좋아하기도 했었기에 공부는 즐거웠어요. 대학원에서는 실내건축을 전공했는데, 이때 장애인 치료실의 환경에 대한 논문을 많이 썼습니다. 한 번은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존’의 리모델링을 위한 설계를 하고, 그대로 리모델링을 진행한 후 설문조사까지 해서 논문을 쓴 적도 있었어요. 지금 다시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당시에는 이 논문으로 최우수논문상도 받았을 정도로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고,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Q. 휴룸의 대표 제품인 스누젤렌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스누젤렌(Snoezelen)은 1970년대 네덜란드의 중증 장애인 시설에서 처음 시작됐어요. 영어로 ‘선잠을 자다(Snooze)’, ‘졸다(Doze)’를 합친 신조어로 다중감각공간(Multisensory Room)이란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스누젤렌실은 부드러운 음악, 은은하면서 매혹적인 빛이 있는 방으로 오감 자극을 선택적으로 제공하고, 감각의 자극과 이완을 경험하면서 편안함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보통 치료나 공부 등을 시작하기 전 가장 편안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사용해요.
자폐아를 예로 들자면 밝은 불빛을 보면서도 자극이 부족하다 느끼는 친구도 있고, 반대로 평범한 빛도 견디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이들은 스누젤렌실에 들어가게 되면 각자 다른 곳을 찾아 편안함을 느끼게 될 거예요. 스누젤렌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도자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편안함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Q. 그렇다면 휴룸 스누젤렌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현재 국내에 수입된 스누젤렌은 모두 독일 제품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서에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또한 기계적 결함을 수리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치매 시설에 스누젤렌실이 많은데, 치매 환자들의 경우에는 노령인 경우가 많고 혈액순환 문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물기둥을 개발하게 됐어요. 안았을 때 사람의 온기처럼 따스함을 주면 정서적으로는 물론 신체적으로나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또한 동작센서도 설치했어요. 저희 아이도 어릴 때부터 워낙 많은 치료를 받아서 치료받으러 가자고 하면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동작센서를 설치해 아이가 다가가면 스누젤렌이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하자 자신을 반겨준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좋아하더라고요. 그 외에도 휴룸 스누젤렌실은 음향, 빛, 물기둥 등 모든 제품을 통합 제어하는 기능을 통해 핸드폰으로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참고로 휴룸 스누젤렌실은 장애인 복지공간 외에도 중앙박물관, 성문화체험관 등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Q. 그간 많은 복지시설 공간의 설계 업무를 하셨는데요, 장애 종류에 따라 설계도 달라지나요?
우선 장애인 편의시설의 디자인과 유니버설 디자인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장애인 편의시설은 법적으로 규정돼 있는 거고, 유니버설 디자인은 법적 규정에 더해 불편함 더욱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이죠. 저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이 보기에 필요한 디자인이 아니라 장애인의 눈으로 디자인하고 싶어요.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공간에는 지팡이 등을 꽂을 수 있는 시설물을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또한 벽과 바닥의 색 구분을 확실하게 했어요. 만약 벽과 바닥을 같은 색으로 해야 할 경우에는 그 사이에 진한 색으로 포인트를 주기도 했고요. 노인복지관 등 어른들이 사용하는 공간에는 법적 규정인 핸드레일 외에도 다수의 봉 등을 만들어 몸을 지탱하기 수월하게 했습니다.
또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이용하는 공간을 설계할 때는 바닥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우리 아이도 그렇지만, 다수의 자폐인이 바닥을 보고 다니거든요. 그래서 바닥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바닥 디자인을 최대한 신경 썼어요. 실내에서 바닥에 사인물을 사용한 것도 국내에서 제가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외에도 휴게실에는 흔들의자나 땅콩 의자를 배치했는데, 이건 복지관까지 오며 받은 자극과 스트레스를 털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Q. 장애인을 위한 스누젤렌실과 비장애인을 위한 스누젤렌실의 차이점이 있나요?
있습니다. 특히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경우 도전 행동이 많고 폭력성이 있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스누젤렌 제품을 모두 벽 속으로 숨겨 은은히 빛만 새어 나오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물기둥이나 커튼 사용은 어렵죠. 또한, 저는 지금 장애인교도소 내 스누젤렌실을 설치하고 있는데요, 이런 경우에도 위험할 수 있는 장비는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닥재도 보통은 촉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쿠션 설치를 하지만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다르게 설치하고 있습니다.
“스누젤렌실에 들어가게 되면 각자 다른 곳을
찾아 편안함을 느끼게 될 거예요.
스누젤렌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도자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편안함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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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심리안정도구를 복지 기관에 나누는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계시는데요.
여러 행사를 하며 만나게 된 복지 기관 등에 스누젤렌실을 설치해드리고 있어요. 최근 하고 있는 사회공헌 관련 사업 중 하나는 발달장애 가정의 집수리 사업입니다.
발달장애아의 경우 장롱이나 싱크대 등에 들어가거나 가구에 집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품으로 가득 채운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기도 해요. 가장 최근에 수리를 진행한 집의 경우에는 아이가 TV에 자꾸 매달려서 문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벽면에 TV를 매립해주는 작업을 했어요. 이런 사업은 포스터를 만들어 복지관에 게시하고 신청자를 모집해서 매년 약 열 가구씩 진행합니다. -
Q.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일반 IT 기업에서 직원들을 위한 휴게 공간을 설치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미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기둥방, 광섬유방 등 3개의 방을 설치할 계획입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특별한 것은 각 기구를 사용했을 때의 심박수 변화 등 신체 변화도 점검한다는 점에 있어요. 이를 통해 이용자는 자신이 어떤 기구에 가장 잘 맞는지 알 수 있고, 이러한 데이터가 쌓이면 새로운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거든요. 각 기구를 몇 분씩 사용하면 최적의 효과가 나타나는지 알 수 있게 된다면 획기적인 제품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장애인 앞에 놓인 가장 큰 사회적 장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중증 장애인의 엄마로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현재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한 것은 바로 장애인의 가족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고용과 관련해 어떤 혜택을 받았을 때, 단지 혜택을 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많은 장애인의 가족들이 이 혜택을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혜택을 받는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함께 노력을 해주어야 이들의 진정한 홀로서기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지금과 다른 방식의 장애인 부모교육도 생기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중심이 되어 장애인 취업에 정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장애인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도 만들어지고 있고, 비장애인도 장애인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혜택은 중복되기도 하고, 미비한 부분도 있기에 체계적인 정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노후 대책 마련에도 조금 더 힘을 써주시길 부탁드릴게요. 부모세대가 없어지더라도 장애인들이 시스템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