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일잘러
시각장애인 방송인 이동우 씨
“만족스러움과 불만족스러움을
잘 전하는 방법을 고민해요”
글. 김엘진
사진.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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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 한창 활동할 시기 갑작스럽게 시각장애인이 된 방송인 이동우 씨를 만났다. 그는 유쾌하고, 명민하고, 따뜻한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시력을 잃은 것에 대해 마냥 괜찮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덕분에 또 다른 것들을 깨닫게 된 것도 사실이죠.”
동우 씨는 실명 후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았는지, 얼마나 필요하지 않은 말을 많이 하고 필요한 말은 적게 하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인생에 얼마나 만족스러움이 넘치는지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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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생, 1993년 SBS 공채 개그맨 2기로 데뷔한 코미디언이자 SBS 소속 남자 개그맨들이 결성한 그룹 틴틴파이브의 멤버였던 이동우 씨는 2004년 망막에 색소가 쌓이면서 기능을 잃는 난치성 유전질환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을 받고, 2010년 실명했다.
시력을 잃은 후인 2013년 철인3종경기를 완주하고, 2018년 재즈 음반을 발매했으며, 2022년 말부터는 친구이자 동료 김경식 씨와 함께 유튜브 ‘우동살이’를 운영하고 있는 동우 씨는 “지금은 더 가지는 것보다 더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다”라고 삶의 철학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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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에게 책을 읽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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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씨는 사실 유튜브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시력이 남아 있었을 때도 유튜브를 보지 않았고, 실명 후에는 목소리를 듣는 일에 점차 피로감을 느끼던 차였다. 그러나 친구이자 동료인 김경식 씨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그를 설득했다.
“그래서 어느 날 제가 ‘그럼 나한테 책 좀 읽어줄래?’ 그랬어요. 그랬더니 경식이가 ‘사람들이 그걸 재미있어할까?’ 그러기에, ‘그건 모르겠고, 나는 네가 나한테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고, 할 거면 우리가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어요.”
우동살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시작부터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를 약속한 종신 계약이었다.-
단순하게 책을 읽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져 친구가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싶었고,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해도 구독자는 1만 명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겼지만, 1년 반이 채 되지 않은 현재 우동살이의 구독자 수는 5만 3,600명을 넘어섰다. 그들은 여전히 책을 읽고 있지만, 친한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유명 작가나 교수와 함께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고, 요리를 하기도 하는 등 다른 포맷의 방송도 하고 있다. 그렇게 인생살이의 한 장면을 조금씩 나누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돈 벌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우리가 편안하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방송을 하고 있어요. 게스트로 나오는 이들도 본인들이 직접 나오겠다고 해서 나오는 거지 열심히 섭외하고 있지는 않아요. 우리 방송을 보시는 분들은 그런 자연스러움을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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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소중함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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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씨 주변에는 좋은 가족과 동료와 친구들이 있다. 물론 가까이에서 보면 각기 단점을 가지고 있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서로 투덕거릴 때도 있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 옆에 남는 법이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팁을 묻자 동우 씨는 아마도 자신이 표현을 잘 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실명 이후 기동력이 많이 떨어졌고, 만남의 빈도수도 확연히 줄었어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의 소중함이 더 커졌고, 그래서 더 마음을 표현하게 돼요.”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는 하면서도, 해야 할 이야기는 부끄럽다든가 기회가 없다든가 하는 핑계를 대며 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동우 씨도 그랬다. 그렇지만 문득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사함과 소중함에 대한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자 만남은 더욱 깊어졌다.
특히, 동우 씨는 실명 이후 촉이 매우 발달했다고 했다.
“아마도 생존 본능이겠죠. 대화를 나눌 때 예전에는 상대의 표정만 보였다면, 지금은 목소리, 숨소리, 움직임 등에 훨씬 집중하게 됩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도 굉장히 빨리 느끼죠. 그러면서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배려도 깨닫게 됐어요.”
그는 인터뷰 전 그의 손이 닿는 곳에 음료를 놓아두고 ‘형님, 저어서 드세요’라고 속삭였던 매니저 김시용 씨에 대해서도 말했다.
“저어서 먹으라는 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신경을 써준다는 의미거든요. 이 친구는 한 가지 도움을 요청해도 그 한 가지를 넘어 더 넓게 저를 살피고 배려해줘요. 이런 좋은 친구가 옆에 있어주면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연히 감사하게 되죠.”
곁에 있는 사람의 따스한 배려를 다시 세심한 관찰로 찾아내 고마움을 전하는 것. 그것이 동우 씨가 배운 삶의 지혜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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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솔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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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을 잃은 것은 결코 가벼운 고난이 아니었다. 유명인이라고 해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당장 생계가 어렵지 않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시력을 잃은 후 오랜 기간 방황했고, 많이 울었고, 지금도 이따금 진한 서글픔을 느낀다. 그렇지만 막상 얼마 전까지는 힘듦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희망적이라고, 다 괜찮다고 표현했다.
“한때는 보이는 것들을 좋게 꾸미고, 그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사람들 앞에 나설 때 가면을 쓰는 거죠. 강연이나 방송에서는 ‘저 다 해냈어요, 행복해요. 여러분도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이야기하길 기대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럴 순 없어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은 저에게도 남에게도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결국은 모두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장애인의 삶에는 한층 더 쉽지 않은 순간들이 얹어진다. 그렇기에 그는 장애인이나 고난을 겪고 있는 이에게 마냥 희망을 가지라고, 내가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솔직히 저만해도 유튜브도 하고 있고, 아직 소속사에 속해 있지만 장애인이 되고부터는 기회가 예전처럼 많지 않아요. 뭘 하려면 반드시 조력자가 필요하죠. 예전보다 어떤 것들을 쉽게 포기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또 제 인생을 심플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언제나 포기를 한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은 그 밖의 것을 포기한다는 뜻이니까. 그렇지만 어쩌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는지 모른 채 선택에만 집중해왔을지 모른다. 동우 씨는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는지가 좀 더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이따금 간절히 원하는 데도 중증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서글프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 제 의견을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우리는 모두 서로와 함께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리고 장애인은 주변이나 사회에 더 많은 표현을 해야 할 거예요. 많은 만족스러움과 불만족스러움이 있을 테니까요. 이러한 감정과 의견을 좀 더 세련되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면 삶이 조금은 더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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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처럼 어떤 장애로 인해
힘듦을 느끼는 분이 계신다면
스스로를 꼭 안아주고 안마도 해주세요.
제가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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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움을 찾아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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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함께 살아가는 모두에게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괜찮다’라고 전하고 싶다. 울고 싶을 때는 울고 슬플 때는 슬픔에 잠겨도 된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만족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행복할 수 없고, 삶에는 꼭 거창한 의미가 있지 않더라도 인생은 만족스러울 수 있다.
“때로는 사람들이 너무 행복이라는 말에 얽매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행복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고 더 잡을 수 없게 느껴지죠. 저는 그보다는 만족감이라는 말을 즐겨합니다. 만족감에 대해 생각해보면, 제가 삶에서 정말 많은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는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배부름에 만족하고, 집에서 혼자 자유를 누릴 때 만족하고, 명상하는 시간에 만족하고, 그와 함께 등산을 하는 주변인의 존재에 만족하고, 스탭퍼로 허벅지 힘을 기를 수 있음에 만족하고, 아내가 선물해 오늘 처음 쓰고 나온 라탄 모자에 만족하고, 그리고 그가 크게 원하는 것이 없음에도 만족할 수 있다.
“작고 사소한 만족스러움이 모여 삶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행위에 어떤 가치성을 부여하지 않아도 그 순간에 얼마나 집중했는지에 따라 행위와 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저처럼 어떤 장애로 인해 힘듦을 느끼는 분이 계신다면 스스로를 꼭 안아주고 안마도 해주세요. 제가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요.”
동우 씨는 마지막으로 앞으로 100년 후를 생각하는 장애인을 위한 정책과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물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데에도 수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멀리 앞을 보고 조금씩이라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100년 후의 장애인들은 지금의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조금은 덜 겪을 수 있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