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두드리다
생각 더하기

디지털 세상은 모두에게 기회일까?

디지털 약자가 되지 않는 교육이 먼저

권찬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사무총장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앉아있는 일러스트 그림.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

1995년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컴퓨터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때는 컴퓨터를 켜고 일일이 명령어를 쳐가면서 화면을 불러오고, 애플리케이션들을 바꾸고자 할 때도 또다시 명령어로 타이핑을 쳐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고가였던 애플 컴퓨터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와 비슷하게 만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가 막 나왔을 때이기도 하다. 원도우 95의 출시는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컴퓨터를 켤 때 일일이 타이핑을 칠 필요가 없는 혁신적인 제품이었고 새시대가 왔음을 직감할 수 있는 엄청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특별히 팀장들에게 정보화 교육을 하루 종일 해준다고 했다. 기쁜 마음으로 교육장에 갔지만 아뿔싸, 오전 교육은 이전의 타이핑 치던 방식을 알려주고 오후 교육에서야 윈도우 95에 대해 가르쳐주는 게 아닌가. 당연히 여기저기에서 팀장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쓸데없이 오전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이전 방식을 왜 가르쳐 주느냐, 윈도우 95는 배울 것도 없이 누르기만 하면 되지 않느냐, 이럴 바에 굳이 모여서 집합교육으로 할 필요가 있느냐, 컴퓨터에 윈도우 95만 깔아주면 되지 않느냐 등등.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물론 아직도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이제는 그림 명령어를 누를 필요 없이 음성 명령만으로도 컴퓨터를 켜고 끌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이전엔 다양한 파일들을 이메일로 보내고 받고, 또는 USB에 저장해서 보관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쉽고 빠르게 소통한다. 이메일도 예전처럼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파일들 역시 점점 사용량이 줄고 있다. 책상마다 놓여있던 데스크톱 컴퓨터와 큰 모니터가 조직 생산성과 경쟁력의 상징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트북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이처럼 다양한 모바일 기기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장애인에게 꼭 맞는 디지털 교육을 해주고파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서비스가 급속도로 강화되었다. 미처 저항할 틈도 없이 ‘드론, 키오스크, 로봇’ 등이 어느새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우리는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무조건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 메타버스, 챗 GPT, 코파일럿’ 등등, 우리는 몇 달만 멍하게 있으면 바로 대화에서 뒤처질 정도로 확실한 디지털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장애인에게 디지털 세상은 기회가 될까, 아니면 더 큰 진입장벽이나 장애가 될까. 나는 당연히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체장애인이 상체를 활용해 전산 전문직을 맡고, 청각장애인이 문자로 소통하며 시각장애인이 안경에 부착된 앱을 이용해서 근접한 위험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장애인에게 도움 되는 세상인가. 하지만 이를 잘못 활용하고 대처한다면 디지털 세상은 또 다른 진입장벽이나 장애로 느껴질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최근 어느 복지관에 찾아갔다. 그곳에는 장애인 정보화교육반이 있었다. 편마비로 인해 양손 타이핑 훈련이 어려운 교육생들이 있었는데 교실에는 양손 키보드밖에 없었다. 마우스 역시 손에 쉽게 쥘 수 있는 트랙볼마우스가 아니었다. 나는 불편할텐데 왜 이런 상태로 쓰고 있느냐고 교육생에게 물었고, 교육생은 자격증을 따려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했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직접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비록 두상이 예쁘지는 않지만, 머리를 깎고 1인 시위를 해서라도 이 말도 안 되는 자격증 조건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복지관에 장애인 교육생들의 개별 환경에 맞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제공해달라고 어필했다. 며칠 후, 결국 내가 추천한대로 모든 제품이 바꾸었고, 장애인 교육생들이 장비에 잘 적응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자격증 조건도 장애인에게 맞도록 변경되었다고 했다. 마음이 뿌듯했다.
어느새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근무한 지도 4개월이 지나간다. 나는 이곳에서 매일 열심히 사는 장애인들을 만난다. 멀리서부터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근로작업장에 와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자신의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도전과 노력을 꾸준히 하시는 분들을 말이다. 나는 이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공간과 최고의 컴퓨팅 환경을 제공해드리고 싶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분들 중에서 지구를 구할 위인이 반드시 나올 것만 같은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