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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열쇠 같은 향을 만들러 왔습니다.”

대전발달장애인훈련센터 김혜지 교사, 정진실 주임, 김은서 주임

약속 시간이 되자 저 먼 복도 끝에서부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공방 문이 열리고, 등장한 세 사람에게선 어떤 벽도 허물어 버릴 것 같은 정겨움과 해사함이 묻어났다. 직업훈련을 담당하며 최전선에서 장애인을 만나고 있는 세 사람. 이들의 오늘 목표는 본인들을 닮은 은은한 향기를 간직할 오브제를 만드는 일이다.

편집부 사진 김덕창

석고방향제를 만들기 위해 공방을 찾은 김은서, 정진실 주임과 김혜지 교사(왼쪽부터) / 하얀 커튼을 배경으로 책상에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놓여있다.
석고방향제를 만들기 위해 공방을 찾은 김은서, 정진실 주임과 김혜지 교사(왼쪽부터)
상대의 노력을 아는 서로의 안식처들

오늘 세 사람의 체험은 석고에 향을 입혀 공간을 향기롭게 만드는 ‘석고방향제’를 만드는 일. 석고를 넣어서 굳힐 캐릭터 몰딩을 고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몰딩은 평면과 입체, 색상이 캐릭터의 수만큼이나 다양해 고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머, 이 고양이 주임님 닮았다!”, “교사님이랑 찰떡인데요?” 하며 서로에게 어울리는 몰딩을 추천했다. 요즘 운동에 푹 빠져 있는 김은서 주임은 덤벨을 들고 있는 곰 캐릭터를, 정진실 주임과 김혜지 교사는 귀여움에 이끌려 입체적인 토끼와 곰 몰딩을 골라 자리로 돌아왔다.
석고방향제의 핵심인 향을 고르는 작업에선 주저 없이 평소에 좋아했던 향을 척척 고르기 시작했다. 김혜지 교사는 상큼한 프리지어 향을, 김은서 주임은 단정한 코튼 향을, 정진실 주임은 차분한 우디 향을 선택했다. 선택한 향들을 서로 나눠 맡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세 사람. 서로의 인상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향을 선택했다는 신호였다.
“김은서 주임님은 직업 훈련 준비 과정과 입학 상담을 담당하시고, 정진실 주임님은 일배움 과정 사업을 담당하고 계세요. 저는 훈련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의 업무를 하다 보니 셋이 유기적으로 훈련생들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레 친해졌어요. 비공식적인 이유도 있는데요, 우리 센터에서 유일한 미혼 3인이랍니다.”
세 사람이 친해진 계기를 김혜지 교사가 설명했다. 센터에 들어온 훈련생들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담당하는 사람들로서, 서로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이인 셈이다. 세 사람이 만나기만 하면 훈련생들 이야기를 하는 건 징검다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업무의 연장선이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애환을 이해하는 동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진실 주임이 석고방향제의 핵심인 향을 고르고 있는 사진
정진실 주임이 석고방향제의 핵심인 향을 고르는 모습
귀여운 캐릭터에 채색작업을 하고 있는 사진/ 왼손으로 캐릭터를 들고 오른 손으로 붓으로 색을 칠하고 있다.
김혜지 교사가 캐릭터 석고모형에 채색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어렵지만 보람 있고, 자부심을 가지는 일

올리브 리퀴르와 향료를 섞어 향료 베이스를 완성했다면, 석고가루와 물을 넣어 석고 반죽을 만드는 작업이 이어진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석고가루가 굳기 전에 신속하게 섞어 몰드에 부을 것!’ 계량을 마친 세 사람은 이 유의사항을 지키기 위해 신중을 기한다. 긴장한 탓인지 향료를 더 넣는 실수를 하거나, 석고 가루가 부족해 몰드를 바꿔야 하는 변수가 생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유연하게 넘어가던 세 사람. 하물며 사람을 훈련하고 취업을 돕는 업무에서도 이런 유연성은 늘 필요한 역량이라고 말했다.
간혹 훈련생이 말한 장애에 대한 정보 혹은 개인에 대한 정보와 세 사람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에 괴리가 오는 순간들이 있다. 긴장하고 다시 팩트를 챙길 때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조심스레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가장 보람된 일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근무하는 그 자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훈련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당당히 자립하기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기를 누구보다 바라기 때문에 업무적 어려움은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작은 부분에 해당한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최근 세 사람이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사업으로는 ‘중복발달장애인 특별과정’을 꼽았다. 중복장애가 없는 발달장애인에 비해 2~3배 정도 개별 맞춤지원이 필요한 중복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고용분야 소외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든 사업이다. 김은서 주임은 이런 사업들을 담당하는 게 우리 공단에서 일하는 자부심이라 힘줘 말했다.
“장애인은 복지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한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공단에 입사하고 나서 스스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유리천장을 깨보려고 노력하는 장애인을 많이 만났어요. 그 일을 함께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 자부심을 함께 가진, 동료들과 함께 어려운 문제는 앞으로도 같이 풀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토끼, 곰돌이 등 귀여운 캐릭터들로 완성된 세 사람의 석고방향제 사진
귀여운 캐릭터들로 완성된 세 사람의 석고방향제
훈련을 시키는 입장에서 교육받는 입장으로

몰드에서 석고 반죽을 분리하자 캐릭터 석고모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티끌도 섞이지 않은 새하얀 석고모형에 감탄하다가 급히 채색 작업에 돌입하는 세 사람. 이미 공방 선생님이 가장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고 귀띔을 해줬기 때문에 붓을 잡는 손이 사뭇 비장하다. 가장 마지막 작업이지만 자칫 완성도를 올릴 수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채색 작업. 세 사람의 긴장감으로 공방이 사뭇 조용해졌다. 정진실 주임은 떨리는 붓끝에 정신을 집중하다가 이내 훈련생들의 마음을 가늠해본다.
“왜 우리 훈련생들이 직업 훈련을 받으면서 그렇게 떨었는지 알 것 같아요. 우리는 이 작은 석고 모형에 채색하는 것도 떨리는데 훈련생들은 새로운 것을 습득하면서, 그걸 반복하면서 얼마나 떨려했을지 그 마음을 새삼 알 것 같네요.”
직업훈련 준비과정에서 사칙연산 능력이 없는 훈련생을 수업시간 이후 1시간씩 더 교육한 정진실 주임. 한 달이 지나고 정확히 사칙연산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벅참을 느꼈다고 한다. 직업생활에서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에 한 계단 올라선 그 훈련생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흐뭇함으로 며칠이 행복했다고 했다. 김혜지 교사도 김은서 주임도 채색을 중단하고 금방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훈련생에 대한 동기화가 잘 되는 세 사람이 같은 센터에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축복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완성된 캐릭터 석고방향제를 이런저런 각도로 사진 찍으며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세 사람. 석고방향제에서 나는 향은 길면 한 달이 간다고 하는데 세 사람이 내뿜는 은은한 향은 앞으로도 쭉 오래오래 퍼질 것만 같다. 서로의 안식처이자 위로이자 웃음으로 말이다.

김혜지 교사가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사진
김혜지 교사
“향기로워질 집이 기대됩니다.”
김혜지 교사
오늘 체험을 하면서 센터에서 운영하는 동아리 수업 소재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더라고요. 이것도 직업병인지. (웃음) 우리 훈련생들에게도 향기 나는 오브제를 하나씩 선사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만든 건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고요, 가장 애착 가는 토끼 석고방향제는 집에 두려고요. 향기로워질 집이 기대됩니다.

“훈련생의 떨림을 이해하는 하루였어요.”
정진실 주임
직업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훈련생들에게 설명하는 일이 주 업무에요. 가끔 훈련생들이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행동에 옮기는 모습을 봐요. 근데 오늘 저도 선생님 설명이 채 끝나기 전에 빨리하고 싶은 마음에 같은 행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훈련생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 석고방향제처럼 훈련생들에게 은은한 향으로 남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정진실 주임이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사진
정진실 주임

김은서 주임이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사진
김은서 주임
“좋은 사람들과 뜻깊은 체험이었어요.”
김은서 주임
오늘 체험도 그렇고 우리 업무도 그렇고 뭐든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어요. 함께 만든 사람들이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라 공유할 추억 하나 늘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졌고요. 아무쪼록 세 사람 모두 올해 성과를 달성할 수 있길, 파이팅!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센터 사업에 많은 지원해주시는 대전지역본부 취업지원부 분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