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장애인문화예술과 고용을 잇다
㈜AKI Life Stage, HANA 아트센터
세계는 지금, 발달장애인 문화예술을 포함해 장애인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일본은 일찍부터 장애인문화예술과 고용을 연결해 왔다. 지금부터 일본의 장애인문화예술 현장을 살펴본다.
글. 이정주 누림센터 센터장
일본의 발달장애인 화가, 아키 이야기
먼저 일본 유명 발달장애인 화가, ‘아키(AKI)’의 이야기다. 그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며 35세 남성이다. 그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발견한 것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해 방안에서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줬다. 당연히 다른 누구로부터 그림을 배우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키는 건축용 도료로 색을 입히기 시작했고 유난히 동물을 많이 그리게 되면서 독특한 화폭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사사가세 다이치’를 만난 건 그때였다. 다이치는 지역유지 중 한 사람이었는데, 우연히 아키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동물 그림에 매료됐다. 다이치는 아키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자비를 들여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그 후 아키는 다이치의 도움으로 오사카 도심화랑에서 개인 전시회를 개최했고, 이때부터 명성을 얻게 됐다. ‘AKI 창조환경 지킴이 작업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발달장애인 화가가 좋아하는 동물이 살 수 있도록 자연환경을 지키자는 취지이자, 아키의 작업공간이기도 하다. 일약 발달장애인 화가의 환경보호 운동으로 이어지는 통섭은 묘하게 ‘장애인과 환경보호’라는 협업으로 사회운동의 한 축이 되었다. 국회의원, 지역사회의 관심은 폭발적이었고 지금은 ‘주식회사 AKI Life Stage’가 설립됐다. 아키의 작품은 동물 환경보호의 브랜드가 되었으며, 각종 굿즈가 제작돼 판매되고 있다. 또한 스페인 ‘마더포레스트’ 금상 수상, 일본·스페인 교류 친선 명예 작가로도 활약 중이다.
이외에도 일본 발달장애인 작가의 성공 이야기는 부지기수이다. 그 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먼저 장애인 당사자의 열정과 의욕이 있어야 한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지지와 협력도 필수다. 아키의 사례처럼 아버지의 전적인 지원은 성공의 기본요소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가족을 믿고 밀어주는 자세야말로, 발달장애인 작가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그러던 중 구원자처럼 유력 후원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들의 헌신적 프로모션은 각종 미디어, 정치가의 입을 통해 전파되고 작품은 세상에서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창작활동은 더욱 자유로워지고 이들의 이름을 건 아틀리에, 창작작업소 등이 생겨나며 장애인문화예술 활동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민들레의 집 부설기관, ‘HANA 아트센터’의 활약
아키의 ㈜AKI Life Stage는 개인에서 법인으로 발전했다면,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문화예술을 이끌어온 기관이 있다. ‘단포포노이에’, 일명 민들레의 집으로 불리는 부설기관 ‘하나아트센터(HANA Art Center)’가 바로 그곳이다.
하나아트센터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민들레의 집을 살펴보자. 1970년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두 장애아를 둔 어머니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식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로 인해 장애인 가정의 어려운 상황은 전역에서 본격적으로 이슈화된다. 아이를 살해한 잘못이 어머니에게 있기보다는 그런 상황을 방조한 사회에 있다며 어머니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면운동이 촉발된다. 당시 신문기자로 재직하고 있던 ‘하리마 야스오’는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취재하다가 이런 문제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으며, ‘장애인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라고 결심한다. 이후 1973년, 그는 장애인 부모들과 예술 활동을 하는 공동생활가정 ‘민들레의 집’을 설립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민들레의 집은 1995년 장애인예술 연대 ‘에이블아트재팬’을 설립했으며, 2005년에 지금의 하나아트센터1)를 부설기관으로 개관했다. 또한 2007년, 센터에서 장애인 예술인의 작품을 상품화 작업하는 ‘에이블아트컴퍼니’를 설립했다. 2010년에는 ‘굿잡센터’를 설립하는데 이르렀다. 처음 민들레의 집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예술활동은 단조로웠지만, 지금은 모두 창작이다. 종이에 점을 찍거나 반복해서 붙이는 것을 좋아했던 어느 이용인에게 색종이는 예술의 시작이었다. 더 나아가 점을 찍는 작업은 섬유제품에 멋을 내는 디자이너의 일익을 담당하게 됐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 위에 바느질로 글씨를 쓰게 되고, 그 작품은 곧 상품이 되는 경험을 얻었다. 50년 동안 민들레의 집과 하나아트센터, 굿잡센터 등은 돌봄과 예술의 공간으로 발전했으며 수익을 내는 장애인문화예술 일자리, 고용의 공간이 됐다. 나라현 나라시의 지명인 ‘가바시마, 시타자가기시’는 일본 전역에 ‘장애인문화예술 운동’을 불붙인 성지로 부상했다.
1) ‘HANA’는 일본어로 ‘꽃’이라는 의미로 하나아트센터에 모이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꽃을 피우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꽃에 빛을 발하고자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아트센터의 작업공간과 이곳에서 일하는 장애인 작가의 모습 / 사진. 누림센터
장애인문화예술을 증진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
여기에서 핵심은 이렇다. 일본 장애인문화예술과 고용창출은 개인 그리고 민간시설에서 자생하고 숙성됐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민간 차원에서 출발한 ㈜AKI Life Stage와 하나아트센터의 노력이 사회 곳곳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이는 장애인문화예술 활동에만 그치지 않고 일자리, 고용창출, 수익, 소득 등을 고민하면서 문화예술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실현할 방안을 찾게 됐다.
이때야 비로소 일본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으며 2018년 ‘장애인문화예술 활동 추진법’이 제정되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1차 3개년 계획을 수립했는데, 내용의 핵심은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경제적 활동으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문화예술 활동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직업으로, 소득으로, 수익으로 이어져 경제적 활동에 기여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법률과 정부 계획을 발표했다. 아래의 도표는 그러한 이행체계를 구조화한 것이다.
2023년부터 시작하는 2차 3개년 계획은 장애인문화예술 인재를 개발하고 이들의 활동을 위해 정부, 기업, 시설단체 등 국가사회가 어떻게 연계를 강화할 것인지를 담고 있다. 특히 이를 위해 후생노동성(장애인과 고용), 문화청(문화행정)이 서로 면밀하게 연계된다. 또한 이를 지원하는 기관 ‘장애인문화예술활동지원센터’를 일본 전국 도도부현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센터는 주로 문화예술 활동을 운영하는 장애인 기관, 시설, 업체 등을 전문적으로 지원한다. 궁극적으로 장애인문화예술인이 아티스트의 모습만 갖추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의 소비자들과 연결되고 판매돼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역할을 맡고 있다. 지역사회 민간의 노력과 정부 지원이 조화롭게 이어져 정책의 선순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단순한 창작을 넘어서 경제활동으로 이어져야
최근 우리나라도 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장애인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다. 위 두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로는 창작보다는 비즈니스 플랫폼, 즉 수익구조를 확보하고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념엽서, 기업체 ESG 홍보디자인, 브로슈어 삽화 등 다양한 굿즈를 기획하고 있다. 하나아트센터에 고용된 발달장애인, 시각장애인 등 장애예술인의 월급은 10,000엔(10만 원) 정도이다. 물론 작품 판매량에 따라 추가로 지급되지만 많은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매월 급여를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더욱 큰 가치로 작동하고 있다.
둘째, 장애인들이 전문적인 예술 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미술가, 미술 전공 대학생 등의 다양한 예술 지원을 받고 있다. 하나아트센터의 관계자들 또한 장애 예술인들을 교육하기보다는 지지해주는데 더 초점을 맞춘다. 셋째, 하나아트센터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으며 각 기관이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도쿄에 거점을 둔 ‘에이블아트재팬’2)과 함께 1994년부터 현재까지 에이블아트 운동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세미나, 전시회 개최, 지적재산권 보호 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점도 장애인문화예술과 고용 확대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활동이라고 본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나 일본의 장애인문화예술 활동지원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공교롭게도 관련 법령의 제정과 공공기관의 지원이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다. 그러나 하나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은 50년 동안 쌓아온 민간 전문기관 활동을 토대로 법률적 지원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법을 만들고 초기 단계부터 정부 주도의 개입을 시도하는 듯한 모습은 결정적 차이로 비친다. 예를 들면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누림 Art&Work’3)가 그것이다.
차이는 차이일 뿐 어떤 과정이 훗날 장애인문화예술 고용에 이바지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세계는 지금, 장애인문화예술 활동이 단순한 창작을 넘어서 어떻게 일자리, 고용, 소득 등 경제적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2) ‘에이블아트재팬’ 역시 민들레의 집이 도쿄에 설립한 장애인문화예술 거점기관이다.
3)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장애인 화가 창작지원 및 대여 지원사업’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