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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천국

독일 영화, 패러다이스

진시황이 갈망했던 ‘불로장생’은 인간의 가장 오랜 꿈일지도 모른다. 노화와 죽음의 한계를 넘어설 수만 있다면 인간은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한 인간이 가진 능력과 재능은 생명과 젊음이 연장된 만큼 인류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이 사용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미래가 과연 인간에게 천국일 수 있을까. 독일 영화 ‘패러다이스(Paradise, 2023)’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글. 차미경 문화칼럼니스트

독일 영화 '패러다이스' 포스터
‘패러다이스’는 수명을 사고파는 기술이 만들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나이를 사고파는 세상, 모두에게 천국일까

35세에 요절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만약 120살까지 오래 살았다면 그는 천재적인 음악 작품을 훨씬 더 많이 남길 수 있었을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생명공학 회사인 ‘에온’의 창시자이자 CEO인 ‘조피 타이센’의 주장에 의하면 그렇다. 에온의 혁신적인 기술에 의해 나이를 기증할 수 있고 기증받은 나이로 젊음과 생명이 연장된다면 각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들이 더 많은 성과를 내게 될 것이고 그러면 세상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가 에온 기업을 통해 이루려는 가치다.
그러나 단 한 번뿐인 생에서 누가 과연 그 소중한 나이를 기증할까. 바로 가난하고 절박한 사람들이다. 죽음보다 비참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탈출구 없는 난민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서…. 영화 속 나이 기증자들은 제 목숨과도 같은 젊음을, 나이를 팔아 거액의 보상금으로 삶을 연명한다.
주인공 ‘막스’는 시간을 기증할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공여자 스카우트로서 ‘올해의 기증 매니저상’을 수상할 만큼 에온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직원이다. 막스는 가난하고 절박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구원’을 선사하는 대신 나이를 기증받는 일을 한다. 그는 굳이 애써 기증자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미래에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은 차고 넘쳐나므로. 반면에 부자인 사람들은 권력이든 재능이든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유지한다. 필요한 만큼 돈으로 얼마든지 나이와 젊음을 사서 더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런 미래, 과연 천국일까.

영화 '패러다이스'는 수명을 사고파는 기술이 만들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수명을 사고파는 세상에서 역시나 부자들은 수명을 사고 가난한 자들은 수명을 판다.

부자들은 수명을 사고 가난한 자들은 수명을 파는 빈부격차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

영화 속 세상에서 장애인의 삶을 상상하며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고민 대신 나는 그런 미래를 사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더 먼저 상상이 되었다. 아마도 장애인은 나이를 뺏기 위해 납치하거나 유괴하는 가장 손쉬운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가난을 이유로, 양육의 고통을 이유로, 부양의 어려움을 이유로 장애인은 가장 먼저 나이 기증을 강요받는 주 타겟이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난한 난민 가족이 가장 나이 어린 막내아들을 제일 먼저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처럼.
능력 있고 재능있는 사람은 세상을 위해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믿는 에온과 그 동조자들에게 그 반대의 논리는 얼마든지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무능하고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이라도 기증하는 것이 세상을 위해 이롭다고. 가족과 사회에 쓸모는커녕 부담만 되고 무능한 존재로 여겨지는 장애인은 시설에 보내지고 집안에 은폐되는 대신 그런 시대엔 나이를 빼앗길 게 틀림없다. 이게 과연 말도 안 되는 상상일까.
위험한 장애인, 민폐 장애인은 무조건 사회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폭발적인 반응을 쏟아내게 만든 한 유명 웹툰 작가의 발달장애 아들 이야기. 잔혹한 범죄 사건이 이어질 때마다 ‘범인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었다’로 마치 후렴구처럼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결론지어 버리는 보도 행태들.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 이기적인 불법 행동으로 규정된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 대한 수많은 적대감과 혐오 등 작금의 장애인 현실을 보면서 이런 상상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의식의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장애인은 위험한 존재도 아니고, 민폐도 아니고, 잠재적 범죄자도 아니고, 선량한 시민을 힘들게 하는 불량집단도 아니고, 불쌍하고 가여운 짐도 아니다. 그저 서로 도우며 당연히 함께 살아야 하는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장애인을, 누구나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어야 비로소 천국 같은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들의 천국은 아직 너무 멀리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