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두드리다
생각 더하기

나를 성장시키는 에너지, 배움

김경식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이사

한 남성이 밤 늦게 공부하는 일러스트 그림
나의 장애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다

나는 미숙아로 태어나면서 의료사고로 심한 뇌병변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장애가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애로 인해 늘 위축되고 자신감 없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일반학교, 일반학급에서 시쳇말로 존재감 없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 후 어렵게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학교생활에서의 성실성을 눈여겨보신 교수님의 추천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공을 살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에 취업하는데 성공했다.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그곳의 경쟁구조 속에서 심신이 지치기 시작했고 서서히 장애가 심해졌다. 결국 직장을 퇴사하고 재가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나의 진짜 배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지역 장애인협회에서 활동하던 중 선배 장애인의 권유로 지역장애인자립생활대학에 입학했다. 장애에 대한 유용한 지식과 함께 여러 장애 유형의 장애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장애와 그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커졌다. 그리고 한평생 인정하기 싫었던 나의 장애를 완전히 인정하고 편한 마음이 되었다. 그러고 나니 그동안 숨기거나 부끄럽게만 느꼈던 나의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나와 같은 장애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더 깊이 공부해보자는 결심에 이르렀다.

학부에서 박사까지,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다

2013년에 석사를 졸업한 후,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주변의 만류에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장애인과 밀접한 장애인 재활공학을 공부하게 됐다. 어려움은 꽤 있었지만, 부산에서 경산까지의 통학시간을 아끼고자 기숙사에서 1년간 생활하는 노력도 했다. 또 주변 동료학생들, 무엇보다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그간의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을 원활히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의 배움을 바탕으로 인터넷 장애인 신문 ‘에이블뉴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배워서 함께 나누자!’는 평소 소신대로, 300편이 넘는 장애 관련 칼럼을 게재하면서 지금까지 실천 중이다. 학업 면에서도 학술적인 관심사인 ‘장애인모바일접근성’ 관련 논문으로 한국재활복지공학회 학술대회 우수논문상 등 국내외 여러 학술지에 논문이 실렸다. 이러한 결실들이 모여 2016년 ‘BK21플러스사업’ 우수 연구 인력으로 선발되어 교육부 총리 표창까지 수상하였다.
나는 학부과정, 석사과정, 박사과정의 출신학교와 전공분야가 다 다르다. 학부전공은 생물학, 석사는 의용공학, 박사는 재활공학에 이르기까지 내가 관심을 가졌거나 필요로 했던 분야를 찾다 보니 나온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생물학을 통해 생물 또는 인체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의용공학을 통해 의료기기와 관련기술에 대한 식견을 얻었으며, 재활공학을 통해서는 그간의 인체와 의료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장애당사자로서의 경험에 접목한 학제 간 융합은 크게 도움이 되었다.

평생교육 필수시대, 장애인도 예외는 없다

나에겐 아직도 유효한 학생증이 있다. 장애인 관련 학문을 공부, 연구하다 보니 장애당사자들을 만나고 의견을 듣다 보면 항상 연관되는 것이 ‘사회복지’였다. 그래서 또다시 나이 오십을 넘긴 올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을 감행한 것이다. 자연과학과 공학을 넘어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나의 네 번째 대학생활은 현재진행형이다.
온라인 기반의 자율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방식의 요구가 조금은 낯설지만, 최선을 다해 적응 중이다. 오히려 장애를 가진 나에게 적합한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배움에 대한 나의 무모하고 줄기찬 도전은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배움은 끝이 없다는 명언은 이전 시대 배우고자 하는 ‘자기 의지’를 강조한 말이라면, 발전을 거듭하는 현대사회는 인터넷과 자조적인 학습모임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지속적인 학습을 요구하는 ‘평생학습 필수시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평생교육 필수시대에 장애인들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첨단기술 기반의 새로운 제품과 관련 서비스가 시시각각 생겨나고 소멸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하나다. 우리의 일상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문화, 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학습하고 적용하는 것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