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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AD 포커스

제9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대상(고용부분) 수상작

공단은 장애인고용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매년 장애인고용 콘텐츠 공모전을 실시해왔다. 특히, 9회차를 맞은 이번 공모전은 밀알복지재단과 협업하여 스토리텔링 공모전 고용부문으로 진행되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일상부문과 고용부문 2개 분야로 진행되었으며, 각 분야 전문가 심사를 거쳐 고용부문 최종 입상작 11점을 선정했다. 고용부문 대상은 박수현 씨의 ‘우리의 삶이 해석되는 순간’이 수상했으며 이를 지면에 소개한다.

편집부

제구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자인 박수현 씨와 공단 김현종 실장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공단 소통협력실 김현종 실장(좌)과 제9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자인 박수현 씨


우리의 삶이 해석되는 순간

박수현
사명, 결핍이 무기가 되기까지

사명이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고, 깨닫고, 내가 조금 더 쉽게 해낼 수 있는 숙제라고 생각한다. ‘장애인고용’이 나에게 사명과 같은 일이었다.
나의 첫 직장은 매년 타인의 평가로 고용이 좌우되는 비정규직이었다. 어린 마음에 이름 없는 정규직보다 불안해도 누구나 들으면 알법한 대기업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나는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대기업의 인사팀 조직문화 담당자가 되었다. 정규직 전환이 목표였기에 매 순간 내 운명을 판가름할 심판대에 올라서는 기분이었다.
“수현 씨, 미안해요.” 첫 번째 전환 보류에 이어 두 번째 보류 통보를 받던 날, 비상구 계단에 앉아 당장이라도 꺼이꺼이 터져 나올 듯한 울음을 참던 때가 선명하다. 어쩌면 나는 엄마에게 ‘자식 농사 성공한 엄마’라는 타이틀을 선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에 두 딸을 둔 한 부모 가장이자 장애인 여성이라는 염려 어린 시선으로부터 당당할 수 있도록 딸로서 어떻게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타이틀을 엄마에게 쥐여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결국 그룹 최초 조건으로 정규직 전환이 되었지만, 여성들의 유리 천정을 마주하며 8년의 회사 생활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퇴사 후, 인사 경력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한창 하고 다니던 2018년 7월, 지난 8년의 해석되는 운명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법정의무교육으로 지정되고, 기업에 출강할 전문강사를 양성하는 과정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었다. 인사담당자이자 동시에 장애인 가족으로서 양측의 입장과 상황을 너무도 잘 알기에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무엇을 준비시켜야 할지 명확히 보였다. 나 또한 다양한 장애 유형과 직무를 공부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훈련을 시작했다.
어느새 인식개선 전문강사 양성 5년 차.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업, 기관, 학교 등 다양한 분들과 일자리와 정책에 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내가 경험한 세상과 생각들을 강사님들께 전달하고자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척박한 내 삶이 해석되는 순간

이 글을 쓰는 2023년 7월, 나는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인을 설립해 시각장애인 선생님을 고용했다. 우리는 장애인고용을 넘어 장애인 등록증이 없어 사각지대에 놓인 ‘중증 시각 장애 청년 환자’를 위한 조기 자립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인 은둔청년 중 일부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게 아닐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나는 이 훈련을 가장 훌륭하게 해낼 선생님이자 조력자가 중도 시각장애인 당사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이 경험하고 이겨낸 시간은 그 어떤 커리어만큼 값지고, 의미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시각장애인 당사자 선생님들은 너무도 이 과정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다. 나와 같은 힘든 시간을 겪지 않도록. 좌절하고 절망하는 대신 사회로 나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이들의 삶이 해석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ESG* 트렌드에 올라타 장애인고용이 오히려 더 매력적인 비즈니스가 될 수 있도록 사례들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 ESG :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생존에 직결되는 Environmental(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로 재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비재무적 요소까지 고려한 경영 방식을 의미

장애인고용, ESG 물결에 올라타는 지혜

연이은 이상 기후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환경친화적인 경영이 유행처럼 대두되었다. ESG의 환경(E) 부문이 안정기로 들어선 만큼 사회(S) 부문에서도 다양한 시도와 인식 수준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회 부문에서 대표되는 키워드는 인권, 안전(생명), 노동인데 나는 이 세 가지를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영역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의 94%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후천적 장애이다. 상당수는 일터에서 다치거나 질병에 의한 산업재해 피해자들이며, 산업재해가 아니더라도 기업의 비윤리적인 태도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처럼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는 심각한 사회 문제의 한가운데에 장애인이 놓여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ESG와 장애인, 더 나아가 장애인고용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나갈 것인가에 기업들의 고민이 깊다.
기업은 ESG와 관련해 ‘장애인’을 조직 구성원으로 볼지, 소비자로 볼지 크게 두 가지 노선을 정할 수 있다. 바람직한 방법은 장애인 지원자를 위해 기업의 인프라를 부족함 없이 구비하는 것이지만, 야속하게도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과 어려움이 따른다. 만약 장애인고용에 대한 마음은 있으나, 충분한 뒷받침이 어렵다면 신입 사원 대신 해당 산업의 경험과 전공을 가진 경력직 고용을 권장한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부담되는 일 중의 하나가 신규 입사자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0명의 장애인 중 9명은 후천적 장애이다. 이미 관련 전공과 경험이 있음에도 장애인고용에 대한 고용 기회가 없어 경력이 단절된 경우도 상당하다. 경력직 장애인고용은 기업과 장애인 당사자 간 고충을 조금이나마 상쇄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만약 직접 고용이 어렵다면 고정적으로 나가는 소모품과 유지관리 서비스를 장애인 용 목적의 사회적 기업으로 교체함으로써 간접 고용에 기여할 수도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내 카페나 편의점, 사무실 실물 관리와 청소 용역 등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기업에 맡기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장애인 체육선수단이나 아티스트 후원사로써 협력하는 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는 실행 예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고용에 관심이 없거나, 여전히 부담스럽다면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장애인 고객에게 친절한지 고객 접점을 점검해 보길 바란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우리 제품을 사용할 때 위험하진 않은지, 열심히 공들여 만든 광고와 카드 뉴스가 시청각 장애인들에게 오히려 불쾌한 감정과 경험을 전달하진 않았는지 등을 점검하고, 마니아적 특성을 가진 이들을 우량 고객으로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으면 한다. 또한 매년 진행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기업 특성과 장애 유형을 연결해 전략적으로 추진할 수도 있다.
출장길이나 출퇴근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거나 후천적 장애인이 된 경우를 비춰본다면 자동차 회사에서는 교통사고 유가족 자녀 장학사업, 안전운전 캠페인, 장애 유형별 특화된 옵션 제공(또는 후원)도 좋은 사회공헌이 될 것이다. 더불어 자동차, 모빌리티 사업 모델과 연계해 목욕이나 급식을 위한 특수차량 기부, 휠체어 기부도 할 수 있으며,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을 지지하는 활동에도 함께해 준다면 실질적인 삶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ESG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조금씩 각자의 일터와 삶의 반경 속에서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실행으로 옮긴다면 불확실한 시대에 기업 경쟁력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더욱 성숙한 사회로 한 발짝 나아갈 것이라 확신한다.

장애인고용, 길어도 끝이 있는 싸움

장애인고용을 다루며 과연 끝이 있는 싸움인지 궁금했고, 나름 길어도 5~7년이면 끝난다는 결론을 얻었다. 1970년 출산한 산모가 아기를 품에 안고 한 손에는 담배를 한 손에는 우유병을 들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 ‘순풍산부인과’라는 시트콤에서도 병원에서 의사가 흡연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방영했다. 그런 시절을 지나 2013년 실내 금연법 제·개정을 거쳐 2018년 지금의 금연문화가 정착되었다.
대중문화 역시 2002년까지 영화 ‘오아시스, 말아톤, 7번 방의 선물’처럼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할을 하면 연기파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014년부터 당사자성을 가진 장애인 배우가 활동하기 시작했고, 2022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장애인 배우의 스타성을 확인했으며, 이제는 장애인 유튜버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화가 자연스러워졌다.
금연문화가 개선되는 데 약 10년, 대중문화가 개선되는데 10~15년이 걸렸다. 나는 장애인고용에 관한 기업문화도 지난 5년의 과도기를 거쳐, ESG를 통해 비즈니스 기회로 인식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두 문화를 가정한다면 장애인고용 역시 5~7년 이내에 기업문화로 자리잡는 순간이 분명 올 것이다. 우리는 그때까지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않으면 된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일로써 사명으로써 해석되는 그 순간까지 지금의 자리를 함께 지켜내길 바란다.

제구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포스터

고용부문의 대상 수상자에게는 고용노동부 장관상과 상금 200만 원이 수여되었으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밀알복지재단은 이번 공모전 입상작을 주제로 한 작품집 및 오디오북을 제작해 배포할 계획이다. 고용부문의 입상작은 추후 공단 홈페이지(www.kead.or.kr)에서 확인할 수 있고, 누구나 신청만 하면 수상작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