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희망을 추출하는 바리스타들입니다.”
한화생명 사내카페 ‘Life Plus’ 이수연·조정인 바리스타
주문받는 곳 앞에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를 뜻하는 수어가 그림으로 비치된 카페가 있다. 손님이 먼저 서툰 수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면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는 수어로 화답한다. 바로 한화생명 사내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이수연·조정인 바리스타는 장애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내 직원들과 업무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 오로지 좋은 커피를 제공하고, 좋은 쉼을 선사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오늘도 63빌딩으로 활기차게 출근하는 두 사람을 만나고 왔다.
글 편집부 사진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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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사내카페를 여는 청각장애 바리스타들
여의도의 대표 랜드마크인 63빌딩. 한화생명 본사인 이곳 7층과 45층엔 사내형 복지 카페 ‘Life Plus Cafe(이하 라이프플러스카페)’가 있다. 사내 직원들의 업무적 쉼표 역할을 하는 동시에 도서관인 공간 중심엔 고소한 커피와 음료를 제조하는 청각장애 바리스타들이 자리한다. 올해 2월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문을 연 이곳은 8명의 청각장애 바리스타와 매니저, 1명의 지적장애 바리스타가 함께 만들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서울맞춤훈련센터를 비롯한 전문 기관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으며 직접고용 형태로 고용된 바리스타들이다. 그중 이수연·조정인 바리스타는 각각 올해 1월, 2월에 입사해 어느덧 반년 이상의 바리스타로서의 사회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오전 7시 30분, 한화생명 직원들보다도 일찍 출근하는 오픈조는 에스프레소 기계와 각종 장비들을 점검한다. 동시에 오븐으로 디저트류의 빵을 굽고, 에스프레소 기계로 샷을 추출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비대면 네이버페이 주문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알림이 딩동딩동 물밀듯이 들어온다. 음료를 순차적으로 제조하고 있으면 사내직원들이 각각 키오스크와 포스기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선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주문 시스템 흐름이 보였다. 올해 2월에 입사한 이수연 바리스타는 처음부터 주문 흐름이 이렇게 매끄럽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 시기엔 마스크를 쓴 분들이 많아 포스기 앞에 오신 손님들의 입 모양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키오스크 주문으로 유도하거나 네이버페이 주문을 유도하면서 진땀을 빼기도 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손님들이 마스크를 잠시 내려 천천히 말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구비되어 있는 손 글씨 패드와 갤럭시 탭으로 필담을 나누기도 한다. 혹은 주문지를 보여주거나 매장 상단에 있는 전광판 대기 화면을 가리키며 소통하기도 한다. 처음엔 떨려서 대면응대에 서툴렀던 조정인 바리스타는 이제 가장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처음엔 포스기 만지는 것부터 어렵더라고요. 실수도 잦아서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음료와 커피를 만드는 일부터, 포스기 조작, 고객 응대까지 집에서 계속 연습했어요. 지금은 제가 스팀 대장이에요. 바리스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스타가 되길 잘했어요
이수연 바리스타는 이전에 사회복지 관련된 일을 했었고, 조정인 바리스타는 디자인과를 나와 미술 공부를 했다. 바리스타의 길을 오기 전엔 주저함도 많았던 두 사람. 스스로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돌파구로 바리스타를 선택했지만 후회한 적은 한번도 없다. 이수연 바리스타는 오히려 몰랐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고.
“저는 잘 몰랐는데 제가 적응력이 빠른 편이더라고요. 학원에서 이론 교육을 받고 실전에 투입된 첫 직장인데도 불구하고 업무 흐름을 파악하거나, 손님 응대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어요. 제가 늘 느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리스타를 하지 않았다면 모를 제 모습이죠.”
조정인 바리스타는 바리스타의 길을 걷기 전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고생스러울까, 상처 받을까 노심초사했던 부모님이 이제는 그녀의 바리스타 길을 적극 응원하고 있다고. 전공을 살려 동료들과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바로 컵홀더에 캐리커처를 그려 선물하는 일이었다.
“점장님, 매니저님, 그리고 동료분들을 그려드리다가 반응이 좋아서 손님께 그려드렸는데 감동했다고 하셔서 오히려 제가 더 감동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물론 붐비지 않는 시간만 그려드릴 수 있지만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구나’ 느꼈습니다.”
오래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
라이프플러스카페엔 음료와 베이커리류를 포함한 총 60개의 메뉴가 있다. 처음엔 레시피를 외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두 바리스타가 꼽는 가장 중요한 역량도 ‘레시피를 외우는 일’이다. 다음엔 레시피를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는 섬세함과 고객을 응대하는 친절함을 꼽는다. 라이프플러스카페의 김승길 점장은 이 모든 걸 다 해내고 있는 두 바리스타를 높게 칭찬했다.
“하루에 1,500잔을 판매하고 있는데 다른 카페에 비해서 업무량이 많은 편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걸림이 있거나 불만접수가 있었던 적이 없었어요. 손님과도 동료들과도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소통하고 일하는 모습에서 우리 매장의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이수연·조정인 바리스타가 꼽는 이곳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쉬는 시간과 30분 조기퇴근제다. 가장 바쁜 시간인 출근 시간과 점심 시간엔 모든 직원이 투입해서 일을 하고, 그 외의 시간엔 돌아가면서 넉넉히 휴식시간을 마련한다. 다른 사내 카페보다는 쉬는 시간이 1.5배 많은 편으로 체력적으로 넉넉히 회복하고 다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휴식 공간도 한강 풍경을 바라보고 쉴 수 있어 두 바리스타가 꼽는 매리트 중에 하나다. 30분 조기퇴근제는 말 그대로 주어진 근무 시간보다 30분을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복지다. 오픈조의 근무 시간은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마감조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인데 각각 오후 4시, 오후 5시 반에 퇴근할 수 있다. 바리스타로서 업무를 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환경에 두 바리스타는 만족하며 오래 다닐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는 회사도 같은 마음이다. 이전에도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일했던 이력이 있고 수어를 할 줄 아는 김승길 점장은 오래 함께, 같이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직원들을 서포트하고 있다.
“우리 직원들은요, 입 모양의 움직임과 표정으로 의사소통하는 구화와 손으로 표현하는 언어인 수어, 이 둘 중에서 하나만 할 줄 아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직원들끼리 서로 동료의 말을 더 잘 알아듣고 싶은 마음에 수어를 배우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팀워크라면 중도에 탈락하는 분 없이 끝까지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두 바리스타는 인터뷰하는 내내 긴장했지만, 막상 에스프레소 기계 앞에선 긴장감은 쏙 빼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본인들의 필드에서 자신감을 찾는 모습에서 프로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이 매일 추출하는 샷들이 손님들에겐 작은 쉼표를, 바리스타 자신에겐 더 큰 미래를 선사할 것이란 희망을 그 안에서 발견했다.
“수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수연 바리스타
처음에 바리스타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많이 망설였어요.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맞설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는데요. 지금은 도전하길 잘했다고, 별것 아니라고, 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어요. 당분간은 동료들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해 수어를 배우고 있는데요, 멀리 봤을 때 저와 같은 청각장애 손님을 만나면 더 멋진 서비스를 할 수 있겠다는 설렘도 있답니다. 이곳에서 많은 걸 배우고 나아갈 저와 동료들이 기대됩니다.
“바리스타 대회에 출전할 거예요.”
조정인 바리스타
저에게는 작지만 큰 저만의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바로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대회에 출전하는 일이에요. 내년부터 나가고 싶어서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만약 저처럼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바리스타를 꿈꾸는 분이라면 학원부터 다녀보시라고, 한걸음 먼저 움직여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 또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실천하고 행동하면서 달라졌거든요. 없었던 자신감도 생겼고, 동료들도 생겼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응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