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디톡스 해보셨나요?
쾌락 과잉시대를 사는 MZ세대의 균형감각
MZ세대 직장인 S 씨는 잠들기 전 다음 날 날씨를 알아보려고 스마트폰을 켰다가 당초 목적과는 무관하게 소셜미디어(SNS)로 미끄러져 들어가기 일쑤다. 연예인 가십, 기발한 상품, 댄스 챌린지 같은 숏폼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금세 지난다. 슬슬 눈이 뻐근하고 머리도 아프기 시작하면 스마트폰을 끄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손가락은 계속 화면을 쓸어 올리고 있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도파민 중독’이 확실하다.
글 강나경 자유기고가
삶을 다시 제 자리로
도파민 디톡스가 MZ세대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도파민은 원래 의욕과 활기의 원천으로 우리가 쾌락, 기대, 성취 등으로 즐거움을 느낄 때 분비되는 ‘행복 호르몬’이다. 그러나 행복 추구가 지나치면 뇌는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돼 중독에 이르게 되고 결국 일상생활에도 장애를 초래한다. ‘도파민 디톡스’는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행동을 최대한 절제해 도파민 분비를 줄여나가자는 자발적 회복 운동이다. 현대인들은 주로 디지털 기기로 인한 자극을 많이 받기 때문에 ‘디지털 디톡스’라 부르기도 한다.
새벽까지 숏폼 콘텐츠를 끊임없이 스크롤하거나 소셜 미디어에 장시간 머무르느라 일상 패턴이 무너진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올해 7월 유네스코는 학습 분위기와 능력 향상, 사이버 왕따 예방을 위해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미국과 영국은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SNS에 가입하려면 부모 동의가 필요한 ‘온라인 안전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중국은 18세 미만 청소년의 틱톡 사용 시간을 60분으로 제한한다. 이렇게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디지털 디톡스’를 주장할 만큼 숏폼과 SNS가 주는 악영향은 심각하다.
마음과 행동의 부조화에 답답함을 느낀 젠지(GenZ)들도 자발적인 도파민 디톡스에 나섰다. 한 달 간의 스마트폰 금욕이나 특정 애플리케이션 삭제, 취미 활동 시작하기 등을 통해 뇌를 ‘정상 상태’로 되돌리자는 것이다. ‘덤폰(Dumb Phone)’ 사용이 늘어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덤폰은 스마트폰의 반대말로 2세대(2G) 이전 휴대전화처럼 별 기능이 없는 전화기를 뜻한다. 최근 배우 한소희가 삼성전자에서 2016년 내놓은 갤럭시2 폴더폰을 쓰는 게 화제가 됐다. “앱이 다 되는데 느려서 핸드폰을 잘 안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좋다”는 그녀의 인터뷰는 스마트폰 스크린에 피로감을 느낀 MZ세대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
도파민을 다스리는 도파민
도파민 디톡스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아예 전파가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상품도 등장했다. 인터넷 사용은 물론 전화 송·수신도 되지 않는 환경에서 ‘쉼’에 온전히 집중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숲멍(숲+멍때리기)을 즐기는 식이다. 또 ‘도파민 디톡스 챌린지’에 참가해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점차 줄여나가는 방식도 인기다. 매일 스마트폰 사용량을 캡처해 올리고 전날보다 덜 사용하는 쪽으로 스마트폰 의존도를 낮춰가는 것이다.
명상을 하는 젠지들도 늘었다. 명상을 하면 뇌파의 변화로 도파민 분비가 활성화된다. 이때 느끼는 몰입감, 내면의 평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등은 불안과 중독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넣는 도파민의 순기능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도 결국 소셜미디어의 숏폼 시청같이 쉽게 얻을 수 있는 즐거움보다 도전과 성취, 건강한 몰입에서 오는 진짜 즐거움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용인정신병원 ‘스마트낮병원’ 센터장은 “작은 성공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중독을 끊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서 “‘내가 해냈다’는 느낌을 주는 도파민이 도파민 중독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치료제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를 ‘도파민의 노예’로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아이들에게는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또 실리콘밸리 임원들이 자녀를 보내는 사립학교도 일찌감치 디지털 기기 반입을 전면 불허했다. 도파민을 만들어 내는 데 제일 앞장선 사람들이 누구보다 도파민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도파민과 ‘적당한 거리두기’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