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세계 최고의 장애인 고용정책을 알아보다
‘테리 폭스’의 정신이 깃든 장애인복지
캐나다는 지리적으로 미국에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다분히 유럽에 가깝다. 영연방의 대표주자이고 영국왕 찰스 3세를 모시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또 영국 이전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부터 내려온 프랑스식 전통도 아직 남아있다. 이처럼 유럽 대륙의 영향권에 놓여있고 싶어 하는 사회문화적 특성은 고스란히 사회정책, 그리고 장애인복지정책에 담겨있다. 지금부터 전 세계에서 최고의 장애인복지를 자랑하는 캐나다의 장애인 고용정책을 알아본다.
글. 이정주 누림센터 센터장
높은 장애인고용률을 자랑하는 캐나다의 비결
현재 캐나다는 유럽식 복지국가 레짐(Regime)에서 만들어진 소득보장 정책으로 장애인이 가장 살기 좋은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심지어 ‘장애인이 없는 나라’라고도 얘기할 만큼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채워준다는 역설적 칭송을 들을 정도이다. 비단 소득보장뿐만은 아니다. 장애인 특수교육, 교통 편의시설, 장애인고용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해 미국 발달장애인법에서 정의한 ‘지원고용(Supported Employment)’을 가장 잘 실천하는 나라가 캐나다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국토 면적은 전 세계 2위이며 인구는 약 3천 800만 명. 조금 지난 자료이긴 하지만 2017년 기준, 장애인 출현율은 22.3% 정도이며 장애인고용률은 59.9% 정도다. 즉 장애인도 많고 장애인고용률도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나다는 장애인등록제 국가도, 의무고용제 국가도 아니다. 그런데도 높은 고용률에 필자는 부럽기만 하다. 이러한 캐나다의 특별함은 장애인복지를 수행하는 방식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캐나다는 한국과 달리 범국가적 장애인 정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방정부(Federal Government)는 국가 전체의 총괄적인 책임을 지는 반면, 13개 주 정부(Provincial/Territorial Government)는 그 자치권을 갖는다. 주 정부가 교육, 사회복지, 의료 등 중요한 사회분야의 정책, 행정, 실제를 일임하도록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3개 주는 각각 지역 특성에 맞게 장애인의 복지 및 고용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그래서 장애인을 위한 소득보장 및 서비스 지원이 다양하고 구석구석 전달되고 있다. 먼저 캐나다의 장애인소득보장 제도를 아래 표와 같이 살펴보자.
표 캐나다 장애인소득보장제도(Canadian Income Security Programs for Persons with Disabilities)
$=캐나다 달러, 990원/$1
일곱 가지, 특별한 장애인 소득보장 프로그램
캐나다에는 일곱 가지 장애인 소득보장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연방정부는 네 가지, 주 정부는 세 가지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연방정부는 ① 장애연금(Canada Pension Plan Disability) ② 상병수당(Employment Insurance Sickness Benefit) ③ 장애보훈연금(Veterans’ Benefits for Disability) ④ 장애인세금지원(Disability Tax Measures)이다. 또한, 주 정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① 주정부장애수당(Social assistance Disability Benefits) ② 산재보험장애급여(Workers’Compensation Benefits) ③ 주정부고용보험장애급여(Employment-based Long-term Disability Plans)가 있다.
더불어 브리티시콜럼비아(BC) 주 정부의 사례1)를 보면, 미혼 장애인은 매월 최대 $1,258을 지원받을 수 있고 자녀가 한 명일 경우에는 $1,703을 받는다. 또 배우자만 있을 경우에는 $2,423을, 본인과 배우자 모두가 장애인이고 그 가정에 자녀가 있을 시에는 $2,143을 받을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부부만 있을 경우보다 급여가 줄어든 것 같지만, 아이가 있을 때는 별도의 아동 양육수당이 추가되어 실제 액수는 더욱 커진다.
물론 장애인에 대한 소득지원은 장애인의 자산, 수입, 결혼 유무, 가족 구성원에 따라 각기 다르다. 여기에 보태어 장애인 대중교통도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매월 $52 상당의 교통이용료(현금이나 교통카드)를 지원한다. 저소득 장애인 가족을 위한 주거지원, 특수교육지원 역시 유럽의 그 어느 국가보다 월등한 수준이다.
1)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행한 세계장애동향(캐나다 장애연구센터, 박윤영 박사)에서 참고.
장애인 중심의 장애인고용정책 두 가지
캐나다 장애인고용정책의 특징 두 가지를 보면 캐나다가 얼마나 장애인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원고용(Supported Employment)2)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다른 국가들이 장애인고용을 보호고용(Sheltered Employment)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캐나다는 지원고용을 통한 사회통합 고용에 남다른 노력을 기하고 있다.
보호고용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분리된 장소에서 단순한 작업에만 종사시키고, 일탈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대해 정상화(Normalization)의 기회와 사회통합 능력을 떨어트린다고 보았다. 해서 그 대안으로 지원고용을 택했다. 분리된 보호고용보다는 발달장애인을 돕는 인력 즉, 직무지도원, 잡코치, 근로지원인을 개별적으로 배치해 사회통합적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지원고용은 1984년 미국 발달장애인법에서 출발했지만, 오히려 캐나다가 빨리 흡수했다. 캐나다지원고용협회(CASE, Canadian Association for Supported Employment)를 설립하고, 매년 세계지원고용콘퍼런스(World Supported Employment Conference)를 개최하고 있다.
2) 지원고용은 1984년 발달장애인법(Developmental disabilities act of 1984)에 정의한바 지적장애 학습장애 자폐증, 뇌성마비 등 발달장애인을 위한 고용제도로 기존의 발달장애인이 실제 직업생활(Real work)에서 통합적 환경(Regular and integrated work setting)으로 직업활동을 위한 다양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지원고용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장애인을 위해 고용에 적합한 ‘포괄적근무환경(Inclusive Workplaces)’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직장 적응을 위해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데 공을 들이며 관련 비용을 정부가 제공하는 방식이다.3)
지원방법, 지원대상,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카테고리가 나누어지며 작업장의 규모와 프로젝트에 따라 최대 $10만까지 지원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에도 장애인의 포괄적 근무환경 조성을 위해 1,500만 달러(한화 136억 원)를 투입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업무지속 가능성, 직업 접근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장애인 근로자의 재택근무 세팅에 사용됐다.
특히 온라인 직업 트레이닝 기회를 확장하고 집에서 일하는 장애인과 관리자의 업무 관리능력을 높이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기업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고용장려금 제도와 비슷한 것 같지만, 장애인 근로자 입장에서 근로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은 사뭇 다른 질적 수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EAF(Enabling Accessibility Fund)는 이를 수행하는 전문기관이다.
3) 물론 캐나다 역시,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장애인고용을 위한 기본법을 갖추고 있으며, 이들 법령의 개정을 통해 위에서 소개한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1961년 장애인 직업재활법(VRDP, The Vocational Rehabilitation of Disabled Persons)을 규정하였다. 또 1998년 장애인 고용지원법(EAPD, The Employability Assistance for Persons with Disabilities)으로 개정되었고, 다시 2004년에 장애인을 위한 노동시장 협정(LMAPD, The Multilateral Framework on Labour Market Agreements for Persons with Disabilities)으로 개정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장애인 사회운동가, 테리 폭스를 기리며
캐나다 장애인복지, 고용정책을 살펴보면 유독 장애인 당사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유를 특별히 알 수 없지만, 캐나다의 장애인복지를 말할 때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테리 폭스(Terry fox)’의 삶에서 캐나다 장애인복지의 정신을 찾아본다.
테리 폭스는 캐나다 국민이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캐나다 국회의사당 앞에 놓여있는 동상과 캐나다 여권 속지에 있는 사진 속 주인공이다. 그는 19세 나이에 골육종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이후 인공다리를 착용한 지체장애인 마라토너로서 캐나다 전국을 달리며 암 예방을 위한 ‘전 국민 1달러씩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9개월 동안 5,373km를 달리고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불과 21세였다.
지체장애인 청년의 세상을 향한 숭고한 모습에 캐나다는 감동했고, 기금은 5억 달러 이상 모아졌다. 세계 60개국에서 지금도 테리 폭스를 기리는 마라톤대회가 매년 열린다. 비록 장애가 있는 젊은이지만, 그가 행한 사회운동은 장애인 운동이 아닌 전 국민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의족의 장애인이 모든 국민의 건강을 위해 앞장서 달렸다. 그래서 캐나다 국민은 테리 폭스를 장애인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캐나다의 영웅으로 가슴에 담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장애인복지와 고용정책을 구가하는 캐나다. 그 이면에는 장애인도 사회를 위한 헌신에 앞장서고, 사회는 장애인의 삶이 불편하지 않도록 만드는 역할을 다하는 ‘상생 돌봄의 공동체 의식’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인공다리를 착용한 채 캐나다 전국을 달리며 ‘전 국민 1달러씩 모금운동’을 펼친 테리 폭스.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캐나다 여권 속지 사진과 국회의사당 앞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