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인플루언서
연극인 박연희
모두의 손을 잡고
연극과 동행하다
글. 임산하
사진. 박재우
올려다보는 극이 아닌 마주보는 극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무대의 높이를 낮추어 누구든지 연극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그는 연극인 박연희 씨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애인과 일터> 독자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극단 함께사는세상에서 연극 연출과 축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으며, 사회취약계층 대상으로 예술교육도 진행하는 박연희입니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연극인으로 활동했지만 여전히 연극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이지요.
-
-
Q. 연극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와 극단 함께사는세상에서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 온 동력이 궁금합니다.
연극이라는 장르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극이 펼쳐지는 ‘현존의 시간’ 속에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일상에서 풀지 못했던 감정을 해소하는 감각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그리고 함께사는세상은 창작 마당극 전문 극단으로 연극이 주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곳입니다. 왜곡된 역사에 대한 진실을 밝히거나 우리 사회에 배제되었던 소수자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등 여러 이야기를 전해 왔는데, 이를 통해 희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창작의 기쁨이었습니다.
Q. 모든 연극 작업이 그럴 테지만,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시연회를 갖습니다. 공연예술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초대해서 의견을 듣죠. 또한 저희는 토론 연극 등의 형식으로도 관객의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단순히 1회 공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연장 공연이나 재연으로 이어지므로 계속해서 모니터링을 통해 수정·각색을 합니다. 물론 연극을 제작할 때에도 당사자 인터뷰, 자료 조사, 토론, 창작의 과정이 지난하게 이어지지만, 투자한 시간이 많다고 무조건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Q. 극단 함께사는세상에서는 장애예술 작품을 선보이거나 장애인문화예술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동시에 마당극패 활동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저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고, 극단에 입단했을 때부터 연극 작업과 장애인예술교육을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2년 <엄마의 노래>를 통해 장애예술 작품을 처음 선보였습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로 10년간 순회공연도 진행했죠. 이후 2007년에 ‘장애인활동지원보조사업’이 시작되면서 장애인분들이 지역사회에서 많이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분들과 연극 자조모임을 함께하며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죠. 2015년부터는 문턱 없는 극장, 소극장 함세상의 문을 열면서 이곳에서 누구나 연극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엄마의 노래> 이후에는 성인 뇌병변장애인의 이야기를 담은 <괜찬타! 정숙아>를 내놓았습니다.
<괜찬타! 정숙아>는 <엄마의 노래 2>라는 제목으로 준비를 했던 작품으로 자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작품 제작 당시 지역사회에 장애인 탈시설 이슈가 있었고, 당사자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를 관객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당사자들 또한 동의했고요. 그래서 ‘35살 중증 뇌병변장애인 여성의 자립기’를 주제로 한 연극을 제작한 것입니다.
Q. <괜찬타! 정숙아>에는 실제 뇌병변장애인 배우가 등장합니다. 어떻게 무대에 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 배우는 김정희 씨로 극단 놀노리패의 대표 겸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와는 연극 자조모임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고 있죠. <괜찬타! 정숙아>는 2015년 초연 이후 계속 개작을 하면서 공연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 재창작을 하면서 ‘쌍방향 소통의 무대’를 꾸몄고, 김정희 씨만의 질감으로 ‘정숙 씨’를 표현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애인 관객분들이 김정희 씨를 보며 본인들도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기도 했습니다.
Q. ‘쌍방향 소통의 무대’를 꾸며 관객과 새롭게 만난 것이 인상적입니다.
좀 더 새로운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었고, 이에 맞추어 공연장 가운데에 무대를 마련해 사방에 객석을 두었습니다. 이로써 관객은 배우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죠. 장애인 관객을 위해 자막과 수어 장면을 더했고, 이동 약자를 위해 휠체어 이용 객석을 늘리는 등 객석 구조도 변경했습니다.
Q. 함께사는세상에서는 ‘모두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장애인연극제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페스티벌’은 장애예술을 위한 플랫폼 축제, 모두의 관람을 위한 접근성 축제, 장애인 단체와 예술인 단체의 협업 축제입니다. 2015년 ‘함께 사는 장애인연극제’를 시작으로 지금껏 이어오고 있으며 전문예술가를 꿈꾸는 장애청년들의 활동을 지원해 성장의 기회를 마련합니다. 올해는 타 지역의 장애예술 작품을 초청해 더욱 넓은 공간에서 공연의 열기를 더할 생각입니다.
Q. 한편으로 ‘모두 페스티벌’은 장애인들이 전문예술가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는 사회를 반영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인들과 연극 작업을 오래 하면서 그들의 바람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배우, 연출가, 제작 스태프 등 다양한 역할을 꿈꾸고 있죠. ‘모두 페스티벌’은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는 축제로 그들이 무대 안팎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저희뿐만 아니라 여러 주관단체가 출자를 해서 축제를 진행하고 있지만,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들의 역량을 강화시켜 주는 지원과 제도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저의 숙원이기도 한데, 그들의 일자리인 동시에 자기개발을 할 수 있는 장애인예술단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
Q. ‘모두 페스티벌’은 배리어프리 공연을 통해 다양한 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주목하게 됩니다.
‘모두 페스티벌’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던 2021년,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통해 경계 없는 모두의 축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휠체어석 구비, 읽기 쉬운 팸플릿 제작, 전 극장 공연 자막 제공 등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배리어프리 공연장인 저희 소극장 함세상뿐만 아니라 공공 극장에서도 진행을 하다 보니 그곳의 환경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죠. 올해는 물리적 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더 많은 관객 확충을 목표로, 약 4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진행하며 네트워크를 확장할 생각입니다.
-
장애인들과 연극 작업을 오래 하면서 그들의 바람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배우, 연출가, 제작 스태프 등 다양한 역할을 꿈꾸고 있죠.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들의 역량을 강화시켜 주는 지원 혹은 제도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Q. 연극인으로서 어떤 목표를 갖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저 평소처럼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나아가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분들과 함께 작업을 하다 보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몸짓과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중간중간 끼어드는 편견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을 직관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게 됩니다. 게다가 이를 무대에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죠. 앞으로도 천천히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