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2022년 3.5조 달러
메가법안(3.5 trillion mega bill) 통과
미국 장애인 돌봄과
새로운 사회서비스
시장의 도래
글. 이정주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센터장
미국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장애인 복지 영역도 예외는 아닌데, 지금 미국의 사회서비스 시장 확대가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위한다 하더라도 제도가 만들어 내는 변화는 분명히 있다.
-
민간시장의 가치사슬에 맡기는 장애인 돌봄
-
미국의 장애인 돌봄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철저히 잔여적이고 선별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국가는 최소한의 돌봄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대부분은 개인과 민간시장의 가치사슬에 맡긴다. 장애인 복지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예컨대 장애판정(SSD)1및 소득 지원 프로그램인 장애연금(SSDI; Social Security Disability Insurance)2 또는 기초수당(SSI; Supplemental Security Income)을 신청하는 과정을 보면 정부(SSA; 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보다는 민간시장의 도움을 받아야 장애판정(SSD)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은 돈 없으면 복지서비스도 제대로 받을 수도 없는 나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장애판정을 받기 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의미다. 장애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학적 근거를 제출하고, 본인의 자산도 입증해야 한다. 이때 CT, MRI 등 각종 값비싼 의료기록은 판정에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제출하려고 노력한다. 자산도 마찬가지이다. 다음 [표]에서처럼 경제활동 경력은 많을수록 좋고, 현 경제상황은 나쁠수록 좋다. 심지어 유리한 판정을 위해 전문변호사의 컨설팅도 받고, 장애판정 가이드북을 참고하기도 한다. [그림]처럼 가이드북은 두껍고, 200달러에서 350달러(한화 약 27만 원에서 47만 원) 사이의 고가이다. 물론 첫 시도에서 장애판정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해 재심 청구에 들어가면 이제부터는 변호사를 통해서만 신청이 가능하다. 시장에서의 비용이 더 올라간다는 의미다3. 그래서인지 미국 각 주의 사회보장청(SSA) 인근에는 ‘Disability(장애인) 전문 변호사’ 사무실이 즐비하다. 장애판정을 받은 후에도 서비스는 주로 민간시장 또는 NGO(비정부기구)로부터 제공받는 구조이다 보니 복지서비스와 민간시장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 알 수 있다.
-
장애가 시작된 나이 최소한의 근무 기간 43살 전 각 연령대에 따라최소 1.5년에서 5년 44살 5.5년 46살 6년 48살 6.5년 50살 7년 52살 7.5년 54살 8년 56살 8.5년 58살 9년 60살 9.5년 -
1 SSD는 미국의 노인복지정책과 연결되는데, 영구장애인으로 인정되면 65세 이상의 고령자와 동일한 연금지원을 받는 것이 미국 사회보장제도의 특징이다.
2 SSDI는 월 기준 약 1,100달러 이상 받을 수 있으며, 의료보험(메디케어·Medicare) 혜택, 푸드스탬프(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게 식료품 구입비를 지원하기 위한 바우처의 일환)와 제약지원(PAAD; Pharmaceutical Assistance to the Aged and Disabled)도 받는다. SSI(고령자 및 장애인을 위한 보조적 보장소득)는 심각한 장애와 함께 경제적으로 빈곤선 이하에 놓인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기초수급권과 같은 생활보조수당이며, SSDI의 최소 금액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소득지원을 받고 저소득층 의료지원(메디케이드·Medicaid) 혜택을 제공한다.
3 장애연금 수임료는 법으로 정해져 있어 더 청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
-
확대되고 있는 장애인 돌봄 사회서비스
-
이러한 미국의 민간 시장 중심의 복지서비스 방식은 2022년 발표한 ‘3.5조달러 메가법안(3.5 trillion mega bill)’에 따라 더욱 빠르게 ‘돌봄의 시장화’, ‘사회서비스 시장화’로 전환될 것이다. 미국은 2030년까지 GDP(국내총생산) 중 35%를 서비스 영역으로 확대할 것이라고도 선언하였다.
특히 장애인 돌봄은 사회서비스 시장 확대의 마중물이자 기폭제다. 이미 장애인 지원 고용, 잡코치 서비스를 비롯해 다양한 장애인 활동 지원서비스가 제공되었고, 최근 ‘가정 및 지역 기반 서비스 제도(HCBS; Home and Community Based Services Program)’를 근거로 지역사회 돌봄이 강화되면서 이 분야 사회서비스는 확대일로에 있다. 종래의 ‘활동 보조서비스(PAS; Personal Assistant Service Program)’, ‘케어서비스(PCA; Personal Care Assistant Service)’ 그리고 ‘지역사회 자립 지원서비스(MFP; Money Follows the Person)’등이 대표적이다.
-
전문적인 간호사의 관리·감독을 받는 케어서비스
-
케어서비스(PCA) 중 최중증장애인을 위한 ‘케어도우미’와 ‘합법적 무자격간호사 파견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케어도우미는 주 정부 메디케이드 담당 부서에 소속된 전문적인(등록된) 간호사의 관리·감독을 받으면서 지체장애인, 정신적장애인과 기타 일상생활에서 활동보조가 필요한 사람에게 활동보조서비스와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보조 인력이다. 주로 노인이나 장애인이 거주하는 병원·요양원·시설·가정 등에 배치된다. 케어도우미는 양성과정을 통해 배출되지만 자격증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고 단순한 응급처치가 가능한 정도이다. 국제노동기구의 직업 및 산업 분류에 따라 보건서비스 인력으로 분류되며, 무자격 보조인(Unlicensed assistive personnel), 간호도우미(nursing assistant), 케어도우미(care assistant), 가정간호도우미(home health aide), 간호보조원(nurse aide), 케어기술자(care technician) 등으로 불린다. 영국과 캐나다 등지에서도 유사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
최중증장애인에게도 만족도가 높은 합법적 무자격간호사 파견사업
-
‘합법적 무자격간호사 파견사업(Nurse Delegation Program)’은 케어도우미보다는 좀 더 나은 의료적 처치를 취할 수 있는 인력이다. 비록 간호사 자격은 없지만 준간호인력으로 양성된 인력으로서 의료적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을 위해 가정으로 파견하는 제도이다. 현재는 뉴저지주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재가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좌약이나 복약 관리, 기침가래 관리, 카테터(요양환자의 수혈 등을 이해 정맥을 확보하는 관) 사용 및 관리, 관장, 인공항문 관리, 배뇨관리, 창상 치료, 욕창 관리 등의 의료적 처치를 허용한다. 이는 기존 활동보조인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의료서비스를 와상 중증장애인 대상으로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으며, 최중증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케어서비스 주요 대상자는 지체장애인,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이며 메디케이드 수급자만 해당된다.
-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미국의 사회서비스 시장
-
사실 이러한 고난이도의 장애인 돌봄서비스 프로그램은 이미 복지국가를 표방했던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실천했던 서비스 프로그램이다. 어찌 보면 미국은 뒤늦게 차용했다고 볼 수 있지만 복지서비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정책과 연동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장애인고용(Disability Empoyment) 정책의 성공 사례와도 유사하다. 장애인고용은 1983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명명됐고, 그 주장의 요체는 신자유주의 도래와 맥이 닿아 있었다. 장애인고용 정책은 과도한 복지비용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주고, 고용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정부가 제공하는 연금과 수당의 증가 추세를 진정시킬 목적이었다. 실제로 경제적 효과가 적지 않았다. 반면 유사한 용어로 알고 있는 직업재활(Vocational Rehabilitation)의 출발은 정반대 지점이었다. 인간에게 직업이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고의 가치적 도구로 보았다. 출발점이 완전히 다른 두 개념은 한국에 들어와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라는 학제적 융합을 이뤘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한국식 의무고용제도는 많은 후발 국가에게 배우고 싶은 사회 정책으로 발전했다.
지금 미국의 사회서비스 시장 확대는 장애인의 인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지 않고 일자리 정책의 하나로서 저성장 시대 GDP 성장의 수단으로 통하지만, 그렇다고 장애인 돌봄 서비스에 해를 주지는 않는다. 출발이 어디서 시작되었든 어떤 방식으로라도 장애인을 위한 돌봄서비스의 양과 질이 늘어난다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돌봄의 시장화, 사회서비스 시장화는 장애인 돌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조일 수 있다. 오히려 새로운 복지서비스의 미래는 미국처럼 서비스 시장화의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