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컬처
장애인 빌런의 계보,
영화가 장애인을
악인으로 그리는 방식
글. 김헌식 /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는 대체로 장애인을 순수한 존재로 그려 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차태현 주연의 <바보(2008)>나, 김수현 주연의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여기에 하나 더 꼽자면 신현준 주연의 <맨발의 기봉이(2006)>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작품들에는 장애인에 대한 희화화의 편견이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장애인이 악인이나 범죄자로 등장하는 영화도 있었다. 그렇다면, 악인이나 범죄자로 등장하는 장면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사례를 살펴보면서 논의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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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만들어 낸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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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살인자ㅇ난감>에서 선여옥(정이서 분)은 완전한 시각장애인이 아니면서 그 흉내를 내고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며 각종 악행을 저지르는 빌런으로 등장한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보다는 사이코패스로 설정된다. 이탕(최우식 분)의 범죄 장면을 목격하고 이를 약점 잡아 돈을 뜯어낸다. 알고 보니 주변 가족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었다.
장애를 이용하는 빌런은 이전에도 엿볼 수 있었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1995)>가 그중 하나다. 이 영화의 제목은 ‘평범한 용의자’ 혹은 ‘유력한 용의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정작 용의자를 ‘언유주얼한’ 용의자로 간주하였다. 어느 날 부두에서 선박이 폭발하는데 그 선박은 다름 아닌 마약 밀수선이었다.
이 사고로 27명이 사망하고 9,100만 달러가 증발한다. 배후의 범죄 조직 두목 카이저 소제를 잡기 위해 특수 요원 쿠잔은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버벌 킨트를 심문한다. 버벌 킨트는 지체장애인으로 조직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데 달변의 소유자였다. 결국, 쿠잔은 그에게 속아 넘어가고 만다. 정말 카이저 소제라는 흉악한 범죄 두목은 바로 지체장애인으로 생각했던 버벌 킨트였는데 그 버벌 킨트가 애초에 다리를 절고 손이 마비되어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 요원들은 그를 흉악범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검은집(2007)>에서도 이렇게 장애인이기 때문에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등장한다. <검은집>에서 신이화(유선분)는 보험금을 받아 내기 위해서 남편을 살해한다. 그렇게 살해한 남편의 수가 다섯이나 된다. 다리가 불편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신이화가 살인마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다. 보험사 조사원뿐만 아니라 다들 미모의 장애인 여성을 오히려 동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그는 알고 보니 남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였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악인일 수 없다는 생각도 편견일 수 있고 이를 악용할 수 있을 여지를 보여 준다. 물론 장애인을 이렇게 그리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장애인이기 이전에 악인일 수 있지만,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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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처한 환경이 만들어 낸 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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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Joker, 2019)>의 경우에는 어떻게 장애인이 악당이 되어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단지 조커를 독특한 악당이라는 점만 부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이 영화 속에서는 개성 있는 예술적 감각을 소유한 보기 드문 악당으로 나온 조커에게 배트맨보다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조커>는 이러한 이유에 대해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설득력 있게 공감시킨다. 조커는 본래 영웅도 악당도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었을 뿐. 그런데 조커에게는 치명적인 점이 있었다. 안면 근육 조절 장애가 있다는 것. 자신이 웃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와 그는 항상 약물을 처방받아야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회복지예산의 축소로 더 이상 지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되고 가난한 아티스트였던 그는 이제 자신의 장애가 만들어 내는 상황을 제어할 여력이 없어진다. 이때 지하철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행패를 부리는 일군의 무리를 향해 조커는 웃음을 통제하지 못한다. 불량배들이 조커를 가만 둘 리 없었고,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던 조커가 호신용으로 소지하던 권총이 발사되면서 사람이 죽는다. 결국, 조커는 살인자가 되어 쫓기는데 이 과정에서 사회에 불만이 많던 이들이 조커를 영웅으로 만들고 따르게 된다. 단순히 악인(惡人)이 아닌 무리가 따르는 악당(惡黨)이 된 것이다. <조커>는 장애가 있는 이가 어떻게 범죄자가 되고 악당으로 탈바꿈하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무엇보다 사회복지예산의 감축으로 장애인이 악당이 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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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이 반영된 진일보한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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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복지 식당>의 경우에는 좀 더 진일보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대립 구도가 아니면서 장애인이 악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통사고를 당해 중도장애인이 된 감독은, 장애 등급 제도의 역설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감독은 ‘재기’라는 중도장애인을 통해 중증장애인인데도 경증 장애 등급을 받아 제대로 취직을 못 하는 장애인고용·복지의 현실을 잘 드러냈다. 무엇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장애인의 등골을 빼먹는 장애인의 현실이었다. 바로 재기에게 접근한 병호라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장애 등급을 올릴 수 있다며 행정소송 비용 500만 원을 요구한다. 물론 그 비용은 재기에게 매우 중요한 돈이었고, 애초에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더구나 병호는 재기의 누나에게 활동지원인을 제안하는 자리를 마련한 뒤 식당의 화장실을 따라 들어가 성폭행을 시도한다. 지체장애인이 성폭행을 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을 지우는 연출이었다. 이러한 연출은 장애인을 무조건 선한 사람으로 규정하거나 밑도 끝도 없이 악인이나 범죄자로 설정하는 것과도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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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사람이다. 사람은 착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악한 짓을 하는 이도 있고 착한 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장애인은 다 같지 않아 각각의 성향이나 기질도 있고 그들이 처한 상황도 다르다. 이에 맞게 묘사하고 그려 내는 것이 현실적이다. 너무 착하게만 혹은 너무 나쁘게만 그려 내는 것, 이것이 편견을 강화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개연성과 설득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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