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일잘러
장애인 휠체어펜싱 선수 조은혜
“장애라는 두 단어에
본인을 가두지 말아요”
글. 임채홍
사진.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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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쌀쌀한 찬바람이 불어오던 11월, 이천선수촌에서 휠체어펜싱 국가대표 조은혜 선수를 만났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국가대표로서 당당히 세계무대를 누비고 있는 조은혜 선수의 얼굴엔 나라를 대표하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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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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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혜 선수는 휠체어펜싱 국가대표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2024 파리 패럴림픽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이끄는 대로, 심장이 뛰는 대로,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 움직여야 한다고 전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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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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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든, 나라를 대표한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조은혜 선수는 상기된 얼굴로 처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을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운동선수로서 자부심도 크고 뿌듯한 마음이 커요. 하지만 그만큼 행동에 책임감도 많이 따르는 것 같아요.” 그녀는 태극마크의 무게를 아는 만큼, 남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특히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보다 지금이 더 동기부여가 된다고 전한 조은혜 선수는 “나라를 대표하는 만큼 더 잘해서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역량 있는 운동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라며 말했다.
하지만 2024 파리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파리 패럴림픽 출전 자격을 위해 여러 국제 대회를 치르던 중, 그녀는 발목과 무릎 위 대퇴부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당장 병원에 입원해 치료가 필요한 상황 속에서도, 파리 패럴림픽이라는 목표를 위해 그녀는 수술하지 않고 계 -
속해서 훈련을 했다. “당시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만류했어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포기하고 멈추면 지금까지 해온 노력과 실력이 사라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오로지 펜싱에만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부상과 국가대표로서 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도, 그녀가 펜싱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펜싱이 지금도 너무 재밌어서 가능했다고 얘기한다. “스포츠라는 건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잖아요. 펜싱도 마찬가지예요. 이전에 패했던 선수라도, 제가 잘 준비하고 보완해서 다시 그 선수를 맞붙어 이겼을 때 오는 희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펜싱은 특히 심리전이 중요하다고 설명한 그녀는 “제가 생각한 동작으로 상대를 속여 득점을 했을 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어요”라고 전했다. 이런 수 싸움은 가상의 상황들을 상상해 보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대비한다고도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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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든, 나라를 대표한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조은혜 선수는 상기된 얼굴로 처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을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운동선수로서 자부심도 크고 뿌듯한 마음이 커요. 하지만 그만큼 행동에 책임감도 많이 따르는 것 같아요.” 그녀는 태극마크의 무게를 아는 만큼, 남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특히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보다 지금이 더 동기부여가 된다고 전한 조은혜 선수는 “나라를 대표하는 만큼 더 잘해서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역량 있는 운동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라며 말했다.
하지만 2024 파리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파리 패럴림픽 출전 자격을 위해 여러 국제 대회를 치르던 중, 그녀는 발목과 무릎 위 대퇴부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당장 병원에 입원해 치료가 필요한 상황 속에서도, 파리 패럴림픽이라는 목표를 위해 그녀는 수술하지 않고 계속해서 훈련을 했다. “당시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만류했어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포기하고 멈추면 지금까지 해온 노력과 실력이 사라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오로지 펜싱에만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부상과 국가대표로서 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도, 그녀가 펜싱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펜싱이 지금도 너무 재밌어서 가능했다고 얘기한다. “스포츠라는 건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잖아요. 펜싱도 마찬가지예요. 이전에 패했던 선수라도, 제가 잘 준비하고 보완해서 다시 그 선수를 맞붙어 이겼을 때 오는 희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펜싱은 특히 심리전이 중요하다고 설명한 그녀는 “제가 생각한 동작으로 상대를 속여 득점을 했을 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어요”라고 전했다. 이런 수 싸움은 가상의 상황들을 상상해 보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대비한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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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바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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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혜 선수는 원래 영화 제작 현장에서 일을 했었다. 그녀는 영화의 의상과 분장을 책임지는 분장팀의 팀장이었다. “감독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썼을까 상상하고 이미지화해서 관객들이 더욱 몰입해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어요.”
그러던 2017년, 그녀는 낙상 사고를 당하며 하반신이 마비가 됐다. 누구라도 힘들고 괴로웠을 이 시기를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수술을 받고 첫 1~2주는 진통제가 너무 세서 그런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그래서 그 상황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의사 선생님한테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로소 실감이 됐어요.” 그녀는 당시 자존감도 떨어지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이 잘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상태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런 현실에 안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누구에게 기대기 보단, 독립적으로 살아온 그녀는 가만히 있기보단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죽는 건 무섭더라고요.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있기보단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제 자신에게 물어봤어요.”
그렇게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하다 보니, 지금 당장 가볍게 할 수 있는 건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떤 종목을 시도해 볼까 고민하며 TV를 보는데 휠체어펜싱 경기 영상이 딱 나왔어요. 새하얀 색의 에이프런을 두른 여자 선수 2명이 경기를 하는데 보자마자 저건 어떤 종목이지 궁금해서 검색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펜싱에 대해 알아가며 매력을 느낀 그녀는 본격적으로 휠체어 펜싱을 시작하게 된다. 인생이 바뀔 정도의 큰 사고를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고민했던 그녀는 이제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로서 나라를 대표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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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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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을 하는 선후배들을 보면 가끔 운동 센스나 감각이 타고난 사람들이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전 타고난 재능보단 노력이 전부에요.” 조은혜 선수는 펜싱을 처음 접할 때 재능 같은 건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펜싱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같이한 박다영 감독 덕분에 기본에서 벗어나지 않고 노력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전에도, 박다영 감독과는 아시안게임도 나가고 패럴림픽도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었는데 그게 실제로 이루어져 신기하고 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고도 설명했다.
어느덧 국가대표팀 5년 차가 된 조은혜 선수는 앞으로 선수로서의 미래가 너무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올해 파리 패럴림픽에선 원하는 성적을 못 내서 아쉬웠던 것도 사실에요. 하지만, 그 생각에 계속 붙잡혀 있지는 않았어요”라며 “내년에 한국에서 세계선수권 대회도 열리고, 2년 뒤엔 아시안게임에 나가고, 또 4년 뒤엔 LA 패럴림픽이 있잖아요. LA 패럴림픽에서 가장 높은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울리는 게 선수로서의 목표예요”라고 전했다. 선수로서 미래의 목표를 말할 때, 조은혜 선수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 미소가 가득했다.
곧이어 인간 조은혜로서의 목표를 말할 땐 어느새 진지한 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제가 한 명의 여성 장애인이자 중도 장애인, 운동선수로서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부분도 많아요”라며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며 힘도 얻고 노력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저의 가장 큰 목표예요”라며 진심을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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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더라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의미 있으니까요.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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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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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혜 선수는 꿈을 가진 장애아동들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장애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어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올 거예요. 그래도 할 수 있을까보단 할 수 있을 거야,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을 새기다 보면 의지도 생기고 설렘도 따라올 거예요”라며 “장애라는 두 단어 속에 본인을 가둬놓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그 속에서 본인이 즐거워하고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작은 성취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본인에게 맞는 속도가 있고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는 없어요”라며 “누구에게나 있는 잠재력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면 좋겠어요. 느리더라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의미 있으니까요.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죠.”라고 진심을 전했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중도 장애를 입은 그녀는 사고를 통해 배운 점도 있다고 한다. 신체적인 능력이나 주변 환경은 달라졌을지언정 나라는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마음가짐의 차이다. 자신을 믿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조은혜 선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