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발견
불편한 격려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글. 박윤영
박윤영 씨와 채준우 씨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책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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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
우리를 둘러싼 다수의 편견 -
이 이야기는 무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와 내가알고 지낸 지는 조금 더 오래되었지만. 그전까지는 다른 이와 헷갈릴 정도로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사이가 급변한 건 그가 나와 같은 직장으로 들어온 순간부터였다. 문을 열지 못할 때 가장 먼저 뛰어오는 사람도, 내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에 가장 크게 웃는 것도 모두 그 사람이었다. 퇴근 후에는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조르는 그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특별한 것 없는 연애를 시작했다.하지만 연애 사실이 알려지자, 가족과 친구들이 걱정해 왔다. 나는 100kg이 넘는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고 그는 두 다리로 걷는 비장애인이라는 게 이유였다. 둘이 비주얼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누가 더 아깝다거나 하는 게 이유였다면 차라리 기뻤을까. “다 챙겨줘야 할 텐데 힘들지 않겠느냐?”부터 “멀쩡한 사람들끼리도 어려운데” 라는 반응이었다. 처음 듣는데도 신선하지 않아 내겐 시큼하게까지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아, 이런 질문을 받는 쪽은 애석하게도 애인이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대답을 고르느라 애를 써야 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실상은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툭하면 물건을 잃어버려서 챙김을 받고 중요한 문제가 닥칠 때마다 의지하는 것은 비장애인인 자신이었다.
어쨌든 이것이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둘러싼 다수의 편견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와 손을 잡고 거닐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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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턱과 계단, 그리고 비장애인 애인이 받는 ‘따뜻한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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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등산 데이트에 나섰다. 산 일부 구간에 나무 덱이 깔린 무장애 숲길이었다. 휠체어로 갈 수 있도록 매끈하게 닦여 있지만, 오르막 구간이 제법 길었다. 힘들어진 그가 슬그머니 전동휠체어에 체중을 싣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아이고 젊은이가 너무 고생하네”라는 말이 어디선가 날아왔다. 장애인을 산책시켜 주는 비장애인쯤으로 여긴 것이다. ‘휠체어는 당연히 밀어주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휠체어에 기대기만 해도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유럽을 함께 여행하던 중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공부하러 온 한국 수녀님이 내가 먼저 밖으로 나간 사이 애인에게 “힘들겠다. 고생이 많겠네요”라며 ‘따뜻한 격려’를 건넸단다. 그는 나와 함께여서 느끼는 행복감, 즐거움, 만족감을 설명하려다 그만두었다. 이미 연민으로 가득 찬 수녀님을 그 어떤 말로도 이해시킬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정작 유럽 여행은 내가 결정하고 애인이 함께하겠다며 따라온 것인데 나로서는 꽤 억울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몇 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나의 애인이라는 사실 하나로 따뜻한 격려를 받고 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함께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의를 가진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덕분에 불편한 격려가 어째서 끊이지 않는 것인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함께 유럽 여행 에세이를 출간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나간 방송에서, 카메라는 우리의 전주 여행을 따라 이곳저곳을 비췄다. 소문난 관광지임에도 어째선지 피순댓집에는 커다란 턱이, 물짜장집에는 몇 개의 계단이 휠체어를 가로막았다. 늘 그래왔듯 애인이 먼저 들어가 메뉴와 가격을 확인하고 돌아와 (눈을 맞추느라 조금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게 설명했다.
물짜장집에서는 그에게 안겨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식당을 찾지 못해 불편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이 장면에서 댓글이 쏟아졌다. “남자분 얼굴 보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네”, “저런 남자가 진짜로 세상에 있구나…” 모두 애인을 향한 찬사였다. 만약 피순댓집에 턱이 없었다면, 만약 물짜장집에 계단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덩그러니 앉아 애인을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뿐더러 그가 나를 들어 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높은 턱과 계단이 나의 존재를 흐릿하게 만드는 동시에 나의 애인을 착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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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는 ‘물리적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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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따뜻하고 선량한 격려쯤으로 치부되기에 십상인 일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식의 응원이 달갑지 않다. 자꾸만 나의 삶을 내 것이 아니게 할 뿐만 아니라 나를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으로만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보호자님이 이리 오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라는 말이 나를 건너뛴 채 애인에게로 향한다. 나만이 답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하는 결정마저도 사람들은 그에게 맡겨 둔듯 대한다. 원한 적 없지만 나를 책임지게 하고, 다시 그 책임이 버겁지 않느냐며 애인을 대단하다고 치켜세운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다. 단순히 내가 마주친 몇몇 생각이 틀렸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여러 관념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전주의 피순댓집도 물짜장집도 문제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물리적 환경에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역시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장벽을 함께 타파하는 비장애인을 발견하면 대단하다면서 고정관념을 재생산해 낸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적 장벽’은 장애인을 향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유지되도록 하는 연료와 같다. 계단보다 경사로가 더 많은 세상이 오지 않는 한 말이다. 그와 함께 길을 거닐어도 응원받지 않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