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장애인 완전고용을 향한 프랑스의 프로젝트,
모두를 위한 직업
‘Un travail pour tous’
글. 이정주 /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센터장
2023년 제10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International Abilympics, 이하 어빌림픽) 우승은 역시나 한국이었다. 7연패에 빛나는 눈부신 성과다.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개최지 프랑스. 2016년 남부 보르도(Bordeaux)에서 어빌림픽을 열었던 프랑스가 서부 메스(Metz)에서 또 한 번 어빌림픽을 개최한 것이다. 한 나라가 장애인기능경기대회를 두 번이나 연속해서 개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부 재정뿐만 아니라 장애인 단체, 기관의 인력 등이 만만치 않게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번이나 국제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저력은 프랑스 장애인고용 정책의 남다른 위상 탓이 아닐까.
-
대표적 장애인의무고용제 국가, 프랑스
-
프랑스 장애인고용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2005년 제정된 프랑스 장애인법 ‘장애인의 평등한 권리, 기회, 참여 및 시민권에 관한 법(La loi n°2005-102 pour l'égalité des droits et des chances, la participation et la citoyenneté des personnes handicapées)’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장애인과 관련된 법률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2005년 장애인법은 ICF(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국제기능장애인건강분류) 기반의 서비스 종합 판정 체계를 갖춰 본격적으로 원스톱 장애인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게 한 법률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장애인고용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는 대표적 장애인의무고용제 국가이다. 의무고용제를 프랑스 말로 ‘오에테아쉬’(OETH; Obligation d’Emploi des Travailleurs Handicapés)라고 한다. 프랑스 장애인의무 고용률은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모두 6%로, 상시근로자 20인 이상 사업장이 그 대상이다.
프랑스 장애인의무고용제는 1975년 노동법에서 정한 의무고용률 3%로 시작했다. 당시에는 기업이 고용청에 장애인을 구인 신청하면, 고용청이 기업이 원하는 장애인을 소개해 주었고, 취업으로 성사되지 않으면 고용청이 책임을 졌다. 그러다 1987년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3%에서 6%로 바뀌고, 2005년 프랑스 장애인법으로 통합되면서 장애인고용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2년 말 현재 프랑스의 장애인고용률은 4.43%에 달하고 있으며 전국적인 고용률을 보아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지역별 직접고용률
Le taux d'emploi direct en région
-
탄탄한 재정과 조직으로 이룬 장애인고용 성과
-
장애인고용 정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재정과 조직이 필요하다. 프랑스 말로 ‘아줴피프(AGEFIPH)’와 ‘피프에쁘피(FIPHFP)’라는 두 기관이 이를 맡고 있다. 아줴피프(AGEFIPH; Association de gestion du fonds pour l'insertion professionnelle des personnes handicapées; 장애인고용기금운영협회)는 민간부문의 장애인 고용부담금 징수 및 장애인 취업·고용 유지 등의 업무를 위탁하여 수행하고 있다. 피프에쁘피(FIPHFP; Fonds pour l’insertion des personnes handicapées dans la fonction publique, 공공부문장애인통합기금)는 아줴피프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대상을 공공기관으로 전담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아줴피프와 피프에쁘피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장애인고용은 놀라운 성과를 이어 왔다. 무엇보다 장애인 직접고용을 크게 확대하였고, 부담금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였다. 의무고용률 미이행 기업이 향후 단계별 고용계획을 제출하고 실제로 그 목표 약속한 기간 내 달성하면 부담금 납부 의무를 면제하거나, 고용 환경 조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부담금 납부액도 근로자의 장애 특성을 고려하여 차등 부과하고 있다. 직업교육훈련 현장실습생(stage)이나 직업현장체험기간(périodes de mise en situation en milieu professionnel)의 근로자 및 파견근로자도 의무고용률에 포함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장애인을 고용하는 민간 기업의 비율은 2006년 60%에서 최근 81%로 증가했고, 의무고용 미이행 사업체 역시 2006년 29%에서 최근 9%로 감소했다. 무엇보다도 일과 학습 계약으로 일을 갖게 장애인의 수가 대폭 늘어났다. 1987년에는 근로-학습 계약을 맺은 장애인이 약 250명이었는데 2021년에는 8,700개의 견습 계약을 포함하여 근로-학습 계약을 맺은 장애인이 1만1,400명이다.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1990년부터 시행해 온 아줴피프의 근로-학습 계약 체결을 위한 재정 지원사업이 큰 몫을 했다.
-
완전고용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프랑스
-
최근에도 프랑스는 강력한 장애인법과 재정기금, 조직을 바탕으로 장애인 고용정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0년부터 장애인고용인식개선 캠페인 ‘Un travail pour tous’(모두를 위한 직업)을 모토로 2024년부터는 ‘완전고용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17가지로 구성된 완전고용을 향한 일자리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중 몇 가지가 장애인고용과 밀접하다.
심리적·정신적·정서적 장애, 즉 우리나라로 보면 발달장애인·정신장애인에게 필요한 특수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향후 5년간 약 3만 명의 장애인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장애인 인턴 급여 인상이다. 30세 이상 인턴으로 일하는 장애인의 기본임금을 인상하며, 장애인 인턴을 채용한 사업체에도 보조금을 인상할 계획이다. 의무고용이행 사업체에서 지급하는 고용지원금(AMEETH)도 연간 6,336유로(한화 약 901만 원)에서 1만2,614유로(한화 약 1,794만 원)선으로 대폭 상향할 예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웹사이트 개선과 고용센터의 명칭 변경이다. 장애인 취업 접근성 향상을 위해 장애인 ‘구직자와 구인자의 접점 향상을 위한 웹사이트(pole-emploi.fr)’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 또한 이를 관리하는 고용센터의 명칭을 4월부터 ‘플레 앙플루아’(Pôle emploi, 고용센터)에서 ‘프랑스 트라바일’(France Travail, 프랑스 고용)로 변경한다고 한다. 단순히 취업 알선 기능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고용센터’에 머물지 않고, 프랑스 정부가 주장하는 시대 정신 즉, ‘모든 이가 일할 수 있는 완전한 고용’을 명칭에 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
장애인고용 성공에 뒤따라올 완전고용
-
프랑스 장애인구는 약 570만 명(프랑스 총 인구 6,488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행정적으로 장애인 등록이 되어 있는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은 절반 수준인 280만 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으며, 장애인고용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 역시 전체 장애인구에 비해 적다.
프랑스식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일과 직업훈련 등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장애인고용은 물론 장애인고용을 빼놓고는 프랑스의 완전고용을 구가할 수 없음을 프랑스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 노동시장은 장애인 구직자의 고용 기회 확대와 고용 환경 개선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이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프랑스 정부 목표는 장애인고용의 성공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적극적으로 정책을 펴 나가는 프랑스가 부러울 뿐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2027년까지 장애인의무고용률 6%를 모두 달성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