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인플루언서
㈜소소한소통 백정연 대표
소통에 어려움이 없도록
누구에게나 쉬운 정보
글. 이은정
사진. 황지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수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산다. 백정연 대표는 누구나 필요한 정보를 일상적으로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바람으로 ㈜소소한소통(이하 소소한소통)을 설립했다.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학습장애 어린이, 어르신까지 누구에게나 쉽고 편한 정보를 만들며 진정한 소통을 지향하는 백정연 대표를 만났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애인과 일터> 독자를 위해 대표님과 ‘소소한소통’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2017년,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을 설립했습니다. 쉬운 정보는 조금 생소한 개념일 텐데요, 시각장애인이 점자나 음성 지원, 청각장애인이 수어나 텍스트로 소통하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쉽게 제공하는 걸 말합니다. 또한 글의 의미를 보조하는 삽화를 합쳐 정보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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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소한소통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그전에 15년간 발달장애 관련 기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습니다. 마지막 직장이 발달장애 관련 공공기관이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던 중이라 제가 보건복지부에 파견돼 관련 업무를 진행하게 됐죠. 발달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법 제정으로 이어졌는데요, 그 법 조항 중 하나가 쉬운 정보 관련 규정이었습니다. 이후에 개인적인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다가 사회적기업 관련 창업 지원 정보를 접하고 ‘쉬운 정보를 직접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무모한(?) 용기를 냈답니다.
Q. 그간 다양한 쉬운 정보를 제작하셨는데요, 어떤 기준으로 정보를 선택하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모든 정보가 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원이나 시간에 한계가 있어 우선순위를 정해서 작업을 진행합니다. 특별히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안전에 관한 정보에 무게 중심을 두고 발달장애인이 주체적으로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쉬운 정보를 만들 때에는 먼저 주제나 키워드를 정하면 발달장애인을 인터뷰하는 작업부터 진행합니다. 주제에 따라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발달장애인의 참여를 유도하는 거죠. 또한 어느 정도 작업이 완성되면 발달장애인으로 이루어진 감수위원들의 감수를 받습니다. 결과물을 함께 보면서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 검토 의견을 받는 과정을 거쳐 수정하기를 반복하면서 쉬운 정보를 완성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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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쉬운 정보를 만들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점자나 수어는 언어로서 약속이 있는 반면에, 쉬운 정보는 ‘쉽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이를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세계적으로 쉬운 정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가이드가 존재합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언어적 규칙이라기보다는 지향점이나 지양할 사항이라고 보면 됩니다. 가령 전문 용어나 한자어, 외래어를 최대한 쓰지 않고 일상에서 자주 쓰는 언어를 사용한다, 글은 짧게 단문으로 쓰고 한 문장에 하나의 주제만 담는다 등의 내용적인 측면과 화려한 폰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쇄 종이 두께는 너무 두껍지도 너무 얇지도 않아야 한다는 등의 형식적인 측면의 가이드가 있습니다. 이 같은 가이드를 따라 정보를 제작하면 결과적으로 쉬운 정보를 만들 수 있습니다.
Q. 제작물에 대해 발달장애인들이나 관련 분야에서 피드백을 자주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에는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전시 해설을 쉽게 바꾸는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했는데요, 한 큐레이터분은 쉬운 해설을 보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발달장애인들의 피드백도 많이 받습니다. 그중에서 “진작 이렇게 해 주지!”라고 얘기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발달장애인이 그간 얼마나 불편했는지, 쉬운 정보를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단박에 알겠더라고요. 저희가 그 일을 하고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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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취업을 준비하거나 사회초년생 발달장애인을 위한 취업실용서를 펴냈던데요, 어떤 정보를 담고 있나요?
발달장애인이 성인이 되어서 경제 활동을 하게 되면 삶의 변화가 아주 큽니다. 경제적 주체성을 획득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에도 변화를 겪게 되므로 취업 관련 정보를 쉬운 정보로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발달장애인 취업 지원 실무자를 위한 가이드북, 발달장애인을 위한 취업 준비 실용서 및 회사 생활 실용서까지 총 3권을 제작했습니다. 우선은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의 인사담당자나 취업 알선 관련자들이 공고문을 조금 더 쉽게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 첫 번째 책을 펴냈고요, 두 번째는 취업을 준비 중인 발달장애인이 이력서를 쓰거나 면접 보는 방법을 쉬운 정보로 풀었습니다. 그리고 취업한 후에 실제 회사 생활에 적응해 오래 다닐 수 있도록 사회적 관계 맺기 등에 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Q. 취업실용서 제작에 발달장애인 감수위원 5명이 함께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함께 작업하면서 새로 알게 된 점이 있나요?
취업한 발달장애인들이 직무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걸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가령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너 때문에 빨리 진행할 수 없다”는 식의, 언어학대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게 되거든요. 발달장애인들은 동료와 원활하게 관계를 맺고 오래도록 일하고 싶어 하는데, 기업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게 쉽지 않습니다.
Q. 장애인고용 차별과 발달장애인 근무 환경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발달장애인이 취업에 성공한 후에 동료들과 관계를 맺고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장애인고용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함께 일하게 되는 경우, 다른 직원들이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먼저 고려했으면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발달장애인이 회사에서 오래도록 일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 연장선에서 사회적으로 장애인고용 차별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과 함께, 발달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기업문화를 조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컨설팅이나 교육프로그램을 제도적으로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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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이 성인이 되어서 경제 활동을 하게 되면 삶의 변화가 아주 큽니다. 경제적 주체성을 획득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에도 변화를 겪게 되므로 취업 관련 정보를 쉬운 정보로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죠.
Q. 그간의 제작물 중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일터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쉬운 정보가 있다면요?
저희가 새로 제작한 ‘근로계약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추천합니다. 한 페이지에 어려운 용어가 빼곡하게 적힌 기존의 표준근로계약서를 쉽게 풀어 쓰고, 큰 폰트와 여러 삽화를 활용해 쉬운 정보로 바꾸었습니다. 근로계약서는 회사와 개인이 평등한 관계로 약속하는 개념인데, 발달장애인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사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취업의 첫 단추부터 제대로 채워야죠. 근로기준법상 활용하는 공식 문서로서 변호사 검수까지 받았으므로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자사 홈페이지(sosocomm.com)에서 신청해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Q. 소소한소통에서 새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현재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 준비를 돕는 ‘2024 선거를 부탁해’ 를 만들고 있습니다. 선거가 무엇인지, 어떤 후보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부터 투표 방법과 선거 공약에서 자주 나오는 어려운 표현을 쉽게 풀어서 만화로 스토리텔링하는 것으로,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SNS로 소통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이모티콘을 새로 개발하려고 합니다. 또 지난해에 박물관, 전시관 등의 전시 해설을 쉬운 정보화한 데 이어 올해는 관광 분야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정보를 만들 계획입니다.
Q. 앞으로 목표와 비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소소한소통이 더는 필요치 않은 세상을 만드는 게 비전이자 목표입니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쉽게 만들어진다면 저희의 할 일이 없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