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일잘러
국내 최초 휠체어 모델 김종욱
스스로 만든 길 위에서
세상에 맞선 용기
글. 임산하
사진.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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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만들어 가는 것은 내 몫이다. 모든 선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도전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전은 용기가 되어 나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어릴 적 꿈꾼 적 없던 모델이 된 김종욱 씨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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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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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을 향한 망설임 없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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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소리에 맞추어 포즈를 바꾼다. 움직임과 멈춤 그 사이에는 어떤 고민도 끼어들 틈이 없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표정과 작은 동작으로도 분위기가 바뀐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 앞에 당당히 내보이는 그. 렌즈 앞에서 너무나도 자유로운 그는 모델 김종욱 씨다.
선천적으로 뇌병변장애를 가진 그에게 모델은 단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직업이었다. 마치 미래를 약속해 놓은 듯 사회복지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이에 맞추어 대학도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수순처럼 이어질 일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김종욱 씨 자신이었다.
대학에 다니던 당시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잦고 움직임이 적어 살이 많이 붙은 상태였는데, 그는 지인들이 자신을 도와줄 때 힘들어하는 것을 느껴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었다. 덕분에 음식에 쓰던 돈을 절약해 처음으로 직접 옷을 샀다. 옷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해 자신을 꾸미고 2017년 DDP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에 놀러갔던 그는 그곳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그 자리에 스트리트 패션을 선보인 휠체어 사용자는 아무도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런웨이에 선 이들 중 그 누구도 휠체어 사용자는 없다는 것을요. 그런 모델은 본 적이 없는데, 제가 그런 사람이 되면 어떨까 했죠. 물론 막연했지만 색다른 파급력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새로운 도전 앞에 쉬운 일은 없다. 그런데 그에게는 어디에서 용기가 났던 것일까.
“부모님의 가르침이랄까요. 저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저를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은 해 볼 수 있는 거잖아요. 저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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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얻은 타이틀, 휠체어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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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자신감은 그 앞에 놓인 장벽을 무찌르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힘이 있다’는 것이 ‘힘이 들지 않는다’는 말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게는 부딪칠 용기가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 ‘모델 김종욱’을 만들었다.
“선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어요. 정말 막막했죠. 그렇지만 일단 부딪쳐 보자는 마음으로 모델 지망생이나 사진작가가 모인 커뮤니티에 들어가 촬영을 시작했어요. 실내는 접근성이 좋지 않아 주로 야외 스냅 사진 위주로 진행했고, 저를 알리기 위해 유튜브도 개설했죠.”
우연한 계기로 카메라 세례를 받은 뒤부터 줄곧 ‘모델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에게 신생 의류 브랜드 ‘디스오더’에서 모델 제안을 해 온 것은 2020년의 일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그는 스스로 모델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후 삼성물산 패션 부문 하티스트 2기 앰배서더로 활동했고, 서울관광공사 홍보영상에 출연한 것은 물론 우리금융그룹 광고에도 참여했어요. 꾸준히 개인 작업도 계속해 나가고 있고요. 사실 그 전에 주변에서 ‘되겠어? 저러다 말겠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죠. 그렇지만 결국 됐잖아요.”
자신을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주변의 말들은 역설적으로 그의 ‘희소성’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저는 장애를 잘 활용하고 있어요. 제가 휠체어 사용자이기에 이 희소성이 주목받았다고 생각해요. 흔히 장애인의 도전에 대해 ‘장애를 딛고 일어섰다’거나 ‘장애를 극복하고 맞섰다’라고 표현하는데, 제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닌 무기예요.”그러나 휠체어 사용자 모델은 자신이 ‘최초’이기에 여전히 불편한 것이 많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의상을 갈아입어야 할 때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촉박하게 진행해야 할 때 제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거기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죠. 화장실 여건이 좋지 않아서 물을 자주 마시지 못해 몸이 붓고, 사진작가들이 요청하는 자세를 100% 수용할 수도 없어요. 휠체어 사용자라서 협찬 의류를 선택하는 것도 한정적이죠. 무엇보다 몸을 펴지 못해서 몸 선이 부해 보이게 나오기도 해요. 꾸준히 연구하고 있지만 포즈는 아직도 숙제예요.”
상의할 곳도 없고, 의견을 전한다 해도 공감대가 형성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제가 가는 이 길이 정답인지, 그걸 제가 찾고 또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해요. 때로 굉장히 외롭죠.”
그렇지만 환경은 점점 개선될 것이라고 말하는 그다. 그가 있고, 또 함께 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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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면에서 활약하며 대중의 새로운 자극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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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재 ENA에서 방영하는 국내 최초 크리에이터 오디션 프로그램 <구독왕>에 출연 중이다. 구독자를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프로그램으로 최종 우승을 위해 계속해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 여념이 없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크리에이터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에게 <구독왕>은 즐거움이다.
“본선에 진출한 장애인 크리에이터는 저밖에 없었고, 이는 대중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특히 TV 주 시청층이 중장년층으로 옮겨갔는데, 여전히 그분들은 장애인을 가엾어 하시거든요. 저만의 유쾌한 모습이 그런 편견을 없애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죠.”
이는 그가 크리에이터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블랙 코미디’ 중심의 콘텐츠를 제작하기에 대표성을 띨까 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하지만, 장애 인식 개선 효과는 분명히 있다.
“이전에 사회복지사가 되어서 장애인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이는 모델과 크리에이터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관심 받는 걸 좋아해요.(웃음)”
여전히 장애인고용은 사회적 문제이고, 이들의 직업군은 한정적이다. ‘휠체어 모델’은 김종욱 씨가 최초인데, 아직까지도 혼자다. 그러나 장애인 크리에이터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으며 그 영역이 넓어질수록 사회적 니즈도 증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김종욱 씨는 만일 모델이나 크리에이터 혹은 누군가 가지 않은 길을 꿈꾸는 이가 있다면 “도전해 보라”고 말한다. “도전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아요. 그리고 어떤 분야든 자신이 파면 팔수록 마법처럼 구멍이 넓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요즘은 ‘N잡러’가 대세인데, 그는 방송사 모니터링 업무도 맡고 있다. 첫 방송에 대한 의견을 전하는 것으로 특히 장애 감수성이 낮아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 등을 꼼꼼하게 정리한다. 구멍이 넓어질수록 그것은 구멍이 아닌 평지가 된다. 김종욱 씨가 계속해서 세상의 구멍을 넓히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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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애를 잘 활용하고 있어요.
제가 휠체어 사용자이기에 이 희소성이 주목받았다고 생각해요. 흔히 장애인의 도전에 대해 ‘장애를 딛고 일어섰다’거나 ‘장애를 극복하고 맞섰다’라고 표현하는데, 제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닌 무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