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발견
‘장애인 근로자’라는
단어를
없애 버린 선진국들,
한국도 못할 이유 없다
글, 사진. 노선영
선천성 농인으로, 현재 노선영교육문화연구소 소장으로서 책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강연하고 있다.
저서로 <보이는 소리 들리는 마음>, <고요 속의 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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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근로자’라 불리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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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대기 시간이 지루할 때 ‘들리지 않아도 잘 보는 근로자’가 일하는 ‘섬섬옥수’에서 작은 행복과 힐링을 누려보는 게 어떨까?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공동 협력으로 설립된 이곳은 KTX 탑승권만 있으면 무료로 네일아트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섬섬옥수는 전국 11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KTX 역사 내에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 이뿐만 아니라 네일케어 외에도 영양제&광택, 마사지, 음료수 등 다양한 서비스로 힐링과 케어를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받은 섬섬옥수의 네일케어는 기대 이상이었다. 꼼꼼한 네일케어로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케어를 받은 손이 오래 가는 것이 느껴졌다. 섬섬옥수에 대한 후기에는 칭찬이 자자할 정도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은 ‘장애인 근로자’라고 쓰여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들리지 않아도 잘 볼 수 있고 섬세한 손기술을 가진 근로자’라고 불리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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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하는 것은 개인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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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급진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실제 다수의 선진국에서 그리하고 있다. 선진국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기 위해 ‘장애인 근로자’가 아닌 긍정적이고 포용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추세 중에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는 다양한 능력의 근로자(Diverse-ability Workers), 능력 있는 근로자(Ability Workers)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능력과 재능을 강조하고 있다. 스웨덴은 ‘personer med funktionsnedsättning’이라고 표현하는데 ‘기능 장애를 가진 개인’을 나타낸다. 이러한 표현은 장애를 가진 개인들을 기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더 나아가 해당 그룹을 그 특성으로만 정의할 수 있는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아닌 ‘장애가 있는 개인’이라고 표현해 개인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호주는 ‘disability(장애)’를 강조하는 대신 개인의 능력과 가능성에 주목하는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를 사용하고 있으며 노르웨이는 ‘Funksjonshemmede’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용어를 직역하면 ‘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언어 사용은 사회적으로 장애를 가진 개인들을 다양한 능력과 경험을 가진 일원으로 인식하며, 고정관념이나 차별적인 태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장애인 근로자’라는 용어를 쓰며 ‘근로자’가 아닌 별도의 범주로 인식하고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여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구분은 사회적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생각의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장애인 근로자가 비장애인 근로자들과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회적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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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만들어 내는 인식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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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회적인 태도와 가치관을 반영하며, 비의도적이거나 의도적으로 차별을 일으킬 수 있다. 선택된 용어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상황과 사회적 맥락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개인들의 능력과 가능성을 중시하는 긍정적인 언어 사용은 장애를 가진 개인들을 다양한 능력을 가진 일원으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구분보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능력과 기여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긍정적이고 포용적인 언어 사용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와 인식의 전환이 중요한 이유다.